[국보법 보도비평31] 조·중·동 "국보법폐지 서두르지 말라"

등록 2004.12.30 18:55수정 2004.12.3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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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논쟁과 관련,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돕고자 '국가보안법 보도비평'을 연재합니다. 연재는 5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언론대책팀' 소속 대책위원이 맡습니다. 서른한번째 비평은 김진 변호사가 작성했습니다.... 편집자 주


30일자 신문 지면은, 아시아 지진 현장에 대한 보도와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몇 개의 법률, 그리고 법사위에서 통과되지 못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개정안 등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분주하다. 대신 국가보안법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국보법 관련 보도는 주로 국회 법사위의 국가보안법 상정을 위한 여야 의원들의 마이크 쟁탈전 이야기나 4대개혁 법안을 둘러싼 국회 파행과 국회의장의 처신에 관한 것들이다. 신문 대부분은 이같은 국회의 모습을, 대통령의 말까지 어겨가며 직권 상정을 주장하는 '여당 소장파' 탓으로 돌리고 있다.

여당 소장파 비판에 열중

조선일보는 여당 소장파가 '지도부를 압박'한다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차근차근 하라는 말에도 끄떡없이 속전속결 강공을 주문하고 있다"고 썼다(조선일보 A6 「막판 국회…4개법 여야 내부 '진통'」).

동아일보는 "중진 의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회 농성장에 외부인사들을 계속 끌어들이고 있"는 386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최근 국회 밖에서 국보법 폐지 주장을 하는 40여명을 일괄 의사당에 입장시켜 농성에 참여토록 했다"고 했다(동아일보 A8 「여당 내부 감정의 골 깊어져 균열 조짐」).

중앙일보는 여당의 최재천, 선병렬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부각시키고 있다(중앙일보 6면 「국회 품위 끝없는 추락」).

또한 며칠째 대통령 칭찬을 계속하고 '달라진 노무현'을 격려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연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지난 23일 노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를 만나 국가보안법 문제 등을 둘러싼 여야 협상에 대해 차근차근 해결을 주문했지만, 국보법 연내 처리를 주장하며 국회에서 농성 중이던 여당 강경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친노 세력이다, 이들은 국회를 운동권 농성장처럼 만들었다”고 폐지 주장 의원들을 비난한다 (조선일보 A6 「'달라진' 노 대통령 … '안 달라진' 친노(親盧)」).

이와 함께 이해찬 총리가 시사저널과 기자회견 도중 다음 대선에 관해 했다는 이야기와 언론재단 이사장 문제를 함께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조선일보 A6 「여 "다음 대선 자신만만" 뭘 믿기에 …」).

중앙일보는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보안법 폐지' 천명 이후 20%로 떨어졌다는 그래프를 1면에 배치하고 (1면 「발언 따라 출렁거린 노 대통령 지지도」), 사설에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세상을 바꿔 나가기를 다수의 국민이 바라고 있다"면서 "부드러운 말 한 마디에 지지율의 변화가 눈에 보일 정도라는데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위안 받겠는가"라고 다시 다짐받으려 하였다 (중앙일보 26면 사설 「'포용' 한 마디에 지지율 오른다는데…」).

'국보법 폐지 서두르는 것' 잘못

이들 신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노 대통령 말처럼" 국보법 폐지는 서두를 일이 아니므로, 이를 서두르는 것은 잘못이고, 따라서 국회의 파행은 "대통령 말에도 끄떡 없이" 당론에 따른 의안을 상정하려고 하는 여당 의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몇 달 전 대통령의 폐지 발언 이후에는 '리모콘 정당'이라고 비판하더니 이제는 또 '대통령 말에도 끄떡없는 것'을 뭐라 한다, 여기에 대통령이 최근에 한 발언들이 안성맞춤의 계기를 제공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방향은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 의안을 상정하여 토론하고 표결에 붙이겠다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고, 상임위 위원장이 자기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의안 상정 자체를 거부할 때 국회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국회 의장이 상정하라고 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펜 끝은 반대로 국회법이 부여한 권능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국회의장과 의회민주주의 본질을 부정하는 국회의원들을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당론을 정하고도 이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공식적 대안을 내놓지도 않으면서 합리적 이유 없이 '저지'가 유일한 의견인 당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신문은 국가보안법 폐지가 단순히 정치권 내부의 강-온 대립의 대상이나 대통령 말을 듣고 안듣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완수하고 인권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한 역사적 소명을, 그리고 그것을 바라는 역사의 부름에 귀를 막고, 독자들의 눈마저 가리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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