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마지막 조선인일까?

이문구의 <관촌수필>

등록 2004.12.30 21:24수정 2004.12.3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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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구는 고어투에 능합니다. 이문구의 소설을 읽다보면 제 자신이 조선시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듭니다. 어쩌면 이문구는 조선시대 언어를 완벽하게 복원해낸 최초의 소설가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동네 할아버지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르신들은 예의 한문투로 제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르신들의 말은 매우 느렸지만 그 속에는 어떤 위엄이 깔려 있었습니다.

어린 저로서는 대부분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그후 40여년이 흐른 지금 저는 어르신들의 음성을 다시 듣고 있습니다. 소설가 이문구를 통해서입니다. 놀랍게도 이문구는 동네 어르신들의 말을 완벽하게 복원해 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게 신기했습니다. 아니 신기함을 넘어 신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여하튼 이문구는 걸출한 소설가임에 틀림없습니다. 빼어난 문장력을 자랑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문장만이 아닙니다. 시대의 아픔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의식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문구는 연작소설 <우리동네>에서 껍데기 밖에 남아있지 않은 우리네 농촌을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로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에서도 시대의 아웃사이더인 김시습의 천재성과 기행을 멋들어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런 그를 저는 <관촌수필>에서 만났습니다.

이문구는 <관촌수필>에서 고단했던 자신의 유년기를 꾸밈없이 토해냅니다. 할아버지의 엄한 교육과 아버지의 월북, 그리고 한 가계의 몰락을 그는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관촌수필>은 모두 8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입니다. 일락서산, 화무십일, 행운유수, 녹수청수, 공산토월, 관산추정, 여요주서, 월곡후야 등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모두 작가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내용들입니다.

특히 어쩔 수 없이 '조선인'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회상들이 작품 여기저기에서 애틋하게 배어 나옵니다. 어디 이문구의 할아버지뿐이겠습니까. 이문구 역시 영락없는 '조선인'이었습니다.

<관촌수필>은 '일락서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일락서산'에서는 할아버지와 가문의 몰락을, '화무십일'에는 6·25의 비극을, '행운유수'에서는 옹점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녹수청산'에서는 어린 친구 대복이를, '공산토월'에는 아름다운 석공을, '관산추정'에는 고향에서의 여우사냥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문구는 사람 좋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그 이름만큼이나 그는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 중 <관촌수필>은 이문구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의 대표작임에 틀림없습니다.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관촌수필

이문구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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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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