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보도비평 32 ] '파당적 주장'으로 마무리되는 2004년

등록 2004.12.31 21:09수정 2004.12.3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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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국가보안법 폐지논쟁과 관련,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돕고자 '국가보안법 보도비평'을 연재해왔습니다. 지난 9월 14일 「<조선>이야말로 대립갈등 부추기지 말라」를 시작으로 31일까지 모두 32편의 연재가 실렸습니다. 이번 연재에는 5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언론대책팀' 소속 대책위원들이 맡았습니다. 서른두번째 마지막 비평은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가 작성했습니다.... 편집자 주


역사의 사생아 국가보안법을 유물로 만들기 위해 올 한해 정말 많은 주체들이 노력했다.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다. 정치에서 타협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타협이 곧 정치는 아니다.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당들이 자당의 이해관계에 함몰되지 않고 정당한 정책에 합의해야 한다. 이것이 타협이다. 그렇지 못할 때 야합이라고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는 물론 국가보안법이 인권침해의 대표적 악법임을 잘 아는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1년을 보냈으나, 여야 야합으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 뻔했다.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야합으로 얼룩진 이름만 바꾼 국가보안법 대체입법은 언론들에 의해 ‘강경파’라고 딱지 지워진 여당의원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역시 한 해를 넘기고 말 것 같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국보법 폐지에 대한 '조중동'의 끝없는 거부감

국가보안법 폐지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민생경제’를 앞세워서 폐지의 시대적 의미를 희석시키려 했던 수구언론들은 여전히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에게 거부감을 드러내었다. 일단 국가보안법 폐지 대체입법이라는 여야 합의가 무산되었으니 국가보안법은 유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언론들이 법석을 떨 일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여야 합의안이 무산되었는가라는 과정을 기사를 통해 비교적 차분히 소개하였다. 여야 합의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여당 의총에서 어떤 반대가 있어서 통과되지 못했고, 그리고 이어서 한나라당의 내부 반대가 어떠했는지(동아, 조선 A3).

그러나 이들 기사의 제목은 다르다. 동아일보는 「강경파 큰 소리에 지도부 우물쭈물」이다. 합의 이행 무산은 맞지만, 강경파의 큰소리인지 옳은 소리인지, 지도부의 선택인지 우물쭈물인지는 동아일보의 과도한 주관적 견해가 아닐까.

이 점에서는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동아일보보다 더 하다. 「“여 강경파, 국보법 타협안 거부하고 ‘충돌코스’로”」이다. 강경파가 모든 것의 원죄를 뒤집어써야 할 듯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야합안을 거부하는 것도 무조건 돌진처럼 보아야 할지.

조선일보는 이러한 생각을 사설에서 확실하게 드러내었다. 또 다시 국민을 앞세워 여당 ‘강경파’들을 공격하였다. 여야의 합의가 국민의 뜻을 읽은 것인데 ‘국민의 뜻에 따라 마련한 지도부의 협상안조차 걷어차 버리는 여당 내 강경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사설)는 것이다.

국민의 뜻의 향배가 국가보안법 폐지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 그렇지 않다 해도 수십 년을 해온 언론이라면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의 현실이 어떻고, 국가보안법이 어떻게 악용되어 온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텐데, 국민의 뜻을 빙자해 자신들의 주장을 하는가? ‘대화와 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의회정치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협박한다. 타협이 무슨 뜻이어야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다시 말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일듯 싶다.

내년엔 수구언론 반성하고 국보법 폐지 지지하는 꿈꿀 수 있을까

다른 사설에서는 지난 한 해가 민생경제가 최악이었다고 서두를 꺼낸 뒤 정치를 싸잡아서 비난하였다. 즉 “오가는 말도 거칠고 상스럽고 험해졌다. ‘친미’ ‘수구꼴통’ ‘빨갱이’ 같은 낙인을 상대편 이마에 끊임없이 찍으며 1년을 보냈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바로 국가보안법을 자기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며 수십 년 동안 기득권을 유지해온 집단의 광기어린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때문이라는 원인은 모르는 모양이다. 여하튼 ‘정치 혐오증은 기득권층에게 유리하다’는 말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기사에서는 비교적 균형있게 보도한 중앙일보가 사설에서는 올 한해 혼란의 원죄를 뒤집어씌운다. “발전을 향한 과도기적 진통으로 치부하기엔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판쳤다. 이를 수습하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내년에도 국민의 궁핍한 삶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정치 투쟁과 이념 갈등이 또다시 우리 사회를 황폐화시킬 것이다”라고 올 한해를 진단한다. 하지만 이 역시 원인은 사라지고 결과에 대한 질타만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나아가서는 속내를 드러냈다. “변화하지 않는 야당도 문제지만 정치력 없는 여당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정의’에 따라 처리하지 못함을 책망하는 것인지, 한나라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음을 책망하는 것인지가 명확하지는 않다. 물론 후자이겠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여야 야합안이라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결국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국가보안법 폐지라면 ‘거사’가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결과가 나왔을 때 수구언론은 또 어떻게 반응할지 자못 궁금하다. 오늘 밤 ‘내년에는 수구언론이 반성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지한다는 꿈’을 꿀 수 있다면 꿈이라도 달콤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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