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어른들이 읽는 동화

등록 2004.12.31 21:16수정 2005.01.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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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이브의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시내 좁은 골목에 있는 아이의 집은 언제나 분주한 약속이 있는 사람들을 지납니다.

오늘도 힘들게 거리를 쏘다녔습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두루마리 천이며, 옷 보따리를 매고 시내를 온종일 돌아다녔습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시내 거리와 성탄 캐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그렇게 고단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손이 시려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보지만 그래도 손은 차갑습니다. 아이는 거리의 붕어빵을 파는 노점 안으로 들어갑니다. 항상 짐을 지고 다니던 길목의 점박이 아저씨는 팔리지 않은 붕어빵 한 개를 아이에게 내밉니다. 미안한 마음에 주머니 속의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개를 세어보지만 오늘도 선뜻 내놓지 못합니다. 언 발과 손이 비로소 따뜻해지고 졸음이 몰려옵니다.

‘빨리 집으로 가야 하는데…….’

아이는 이곳을 나가기 싫습니다. 그냥 조금만 더 서 있고 싶을 뿐입니다. 방학을 한 후 하루가 너무 고단합니다. 학교에서는 항상 따뜻한 교실과 점심이 있었습니다. 친구도 있었고 웃으며 어리광부려도 받아주시는 선생님의 손길도 있었습니다. 이제 두어 달간은 힘든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문득 할머니 생각에 졸음이 쏟아지는 눈을 크게 뜨면서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거리를 나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연탄 몇 장을 사서 가야 합니다. 새로 생긴 동네 작은 연탄가게는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아빠가 장사를 합니다. 항상 코를 훌쩍거리는 그 친구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렇게 많은 연탄을 쌓아놓고 마음대로 연탄을 땔 수 있는 게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는 공중전화를 찾습니다. 얼마 전 동사무소에서 비상용으로 만들어준 전화입니다. 붕어빵 한쪽의 행복을 맛본 아이는 집에 있는 할머니에게 미안해 전화를 합니다. 할머니가 언제부터인가 무척 단 것을 좋아하십니다. 단팥빵도 좋아하시고, 사탕도 좋아하시고, 붕어빵도 좋아하시고 아무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단 것은 안 드시고 전부 아이에게 주시던 할머니가 요 근래에는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오늘은 성탄절 이브니만큼 언제나 입이 심심하실 할머니께 사탕 한 봉지를 사서 가려 합니다.

전화를 끊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을 나섭니다. 시내 거리는 언제 걸어도 신기합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상표의 옷가게도 있고 햄버거 가게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종업원 누나의 옷차림도 깨끗해서 보기 좋습니다. 원숭이 인형을 이용해 만든 목도리는 참 신기합니다.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 중 대부분이 목에 두르고 학교에 나왔을 때 참 웃기기도 하고 신기했습니다. 저렇게 긴 원숭이의 팔이 친구의 목을 휘감고 있는 모양은 가끔 생각해도 재미있습니다.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보던 물건은 성탄절이 가까워 올수록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연탄가게 집 친구와 가끔 내기도 합니다. 스키는 무엇으로 만들까. 아이는 플라스틱으로 만든다고 하고, 그 친구는 나무로 만든다고 끝까지 우깁니다. 하지만, 누가 이겼는지 아직 승부가 난 적은 없습니다. 둘 다 한 번도 만져 본 적은 없으니까요.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은 참 따뜻해 보입니다. 두꺼운 외투에 원숭이나 아기공룡 둘리 목도리를 매고 다니니까요. 저 앞에 잘 생긴 형과 누나는 손을 꼭 잡고 걸어갑니다. 아이는 문득 누군가와 같이 다닌다면 춥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말 한마디 안 하고 다니는 것은 정말 힘이 듭니다. 가끔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과 짐 주인을 빼면 별로 말을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지금 기분이 좋습니다. 일을 할 때 보는 사람들 중에는 웃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이렇게 저녁 늦게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언제나 눈가에 즐거운 웃음을 하고 있으니까요.

큰 사거리 앞을 나옵니다. 오늘도 방학하기 전 학교에서 배운 착한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불우이웃을 돕자며 노래를 하는 형과 누나들도 있고, 돈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는 하얀 상자를 내게 내미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이때 아이는 잠시 멈칫합니다. 그리고는 바지 주머니에 있는 손으로 지폐와 동전을 세어 봅니다. 넣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하얀 상자는 아이 옆의 아줌마에게로 넘어갑니다. 아줌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급히 가던 길을 걸어갑니다.

아이는 늦은 후회를 해 봅니다.

‘그냥 500원짜리 동전 하나라도 넣을 것을.’

미안한 마음에 앞서 걸어가는 하얀 상자를 든 할머니의 뒷모습만을 바라봅니다.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눈이 오자 아이는 작은 미소를 짓습니다. 분주히 걸어가는 사람들도 모두 즐거워하는 것 같습니다. 같이 걸어가는 옆 사람과 손을 내밀어 내리는 눈을 받기도 하고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아이는 집에 있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려고 공중전화를 찾습니다. 작은 편의점 옆에 있는 전화기를 들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합니다.

“할머니. 지금 눈이 와요. 밖에 한 번 나와 보세요. 지금 막 눈 오기 시작했다니까요.”

아이는 그러고 나서 할머니의 목소리를 조용히 듣습니다. 할머니가 무슨 말을 아이에게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아까 지나온 큰 사거리로 바쁘게 걸어갑니다.

어떤 사람들이 연탄을 50장이나 집에 쌓아 놓고 갔습니다. 이것이 성탄절 선물인가 봅니다. 온종일 손을 비비며 짐을 나르면서 오늘은 연탄을 몇 장이나 사서 집에 갈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붕어빵 한 개 값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문득 자기가 부자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가 사야 할 연탄을 누군가 대신 준비 해준 덕분에 주머니 속의 지폐 몇 장은 이제 아이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큰 사거리로 나온 아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빨간 냄비 앞으로 걸어갑니다. 주머니 속에서 지폐 한 장만을 걸러낸 채 손에 잡힌 모든 것을 빨간 냄비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오늘은 아이에게 기분 좋은 밤입니다. 선물을 주고받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가만히 생각합니다.

‘오늘은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을 누군가 대신 짊어졌구나!’

아이는 주머니 속의 남은 지폐 한 장을 만지작거립니다. 할머니를 위한 선물로 좋아하시는 사탕 한 봉지를 사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눈 오는 날은 다른 날과 달리 기분 좋은 일이 생깁니다. 아이는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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