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 열심히 삽시다!"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낸 판화가 이철수

등록 2005.01.17 16:27수정 2005.01.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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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수

‘이철수의 집’을 다녀왔습니다. 그이가 책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삼인)을 냈다고 해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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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여전히 분노와 슬픔이 살아 있다

그이가 책에서 권하는 대로 차를 놓고, 기차와 시외버스를 번갈아 타고 갔었습니다. 차를 가져갈까 말까. ‘1’자만 세 번 겹치던 1월 11일 아침 7시 반 그이네로 출장 가기 위해 아파트를 나섰지만 갈등은 여전했습니다.

새벽운동을 해본 이라면 매일 새벽 이부자리 속에서 일어날까 말까 갈등하면서 혹시 비라도 내려주지 않을까 하고 바란 적이 있을 겁니다. 그날 아침 제 손발이 꼭 그 꼴이었습니다. 적당한 핑계거리가 있으면 냉큼 핸들을 잡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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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에 사는 판화가 이철수. ⓒ 조성일

하마터면 용산역으로 갈 뻔했습니다. 그이와의 인터뷰가 성사되자 기차부터 예매하려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잘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화로 문의를 했죠. 기차를 타고 ‘제천’을 가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랬더니 전화기 저쪽 아가씨가 3시간 반 정도 걸리고 바로 가는 게 있다고 했습니다. 표는 많이 남아 있어 굳이 예매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면서 용산역에서 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인터넷으로 검색할 때 보았던 조치원역에서 ‘환승’이라고 쓰여진 글귀가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한참을 지나서 결국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업무시간이 끝나 받질 않더군요.

궁리 끝에 제천역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마도 ‘제천’을 ‘대천’으로 안내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중앙선을 타야한다고 했습니다.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로만 주고받는 말이 때로는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때도 있나봅니다. 제천역에서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저의 ‘이철수의 집’ 방문길은 남의 수고를 빌려 번거롭지 않게 하려던 애초의 명분은 간데없고 오히려 번잡스럽게 시작되었습니다.

기차여행이어서 뭔가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서 그이의 책을 폈습니다. 차창에 드리워진 햇살이 방해를 하더군요. 그래서 아예 책을 덮고 차창으로 미끄러지는 풍경에만 내내 눈길을 주며 제천까지 갔습니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제천역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몇 명 안 되는 승객을 태운 버스가 신나게 달리더니 금세 울고 넘는 박달재 앞에 다다르더군요. 그러나 버스는 박달재 문 아래로 뻥 뚫린 터널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이가 일러준 대로 박달재를 넘어 백운에서 내렸습니다. 백운성당 쪽으로 가다가 길을 물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 집이 어디냐고. 저만치에 우체부가 있었지만 그이의 책에 나오는 등교하는 아이일지도 모를 여나믄 살 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길을 모르기도 했지만 그이를 만났던 기자들이 그곳에 가서 ‘그림 그리는 사람’을 물으면 누구나 안다고 써놓았기에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짓궂은 심보도 조금 있었습니다. 기자들의 표현은 사실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킨 대로 백운성당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자립하는 농민 되자, 과학하는 농민 되자, 협동하는 농민 되자”라는 슬로건이 적힌 시간이 멈춘 듯한 농협창고를 지나서 주욱 올라갔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그이의 집 같아 보여 머뭇거리자 지나치던 사람이 뒤돌아보며 누굴 찾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철수의 집’ 안주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네 식구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문패를 단 ‘이철수의 집’에 당도했습니다.

당신이 보낸 엽서에 공감합니다!

그이는 붓으로 한지에 판화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동그라미 같은 것을 그렸는데, 궁금했지만 어떤 작품이냐고 묻진 않았습니다. 제가 인사를 끝내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여전히 밑그림을 그리며 그가 먼저 홈페이지와 이번에 낸 책 얘기부터 꺼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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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열중인 이철수 화백 ⓒ 조성일

“정말 책으로 묶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일을 마친 저녁 시간, 그날그날의 상념을 적은 엽서를, 1만여 명의 홈페이지 회원들에게 띄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책이 되다니…….”

그러면서 그이는, 판화집 중 유일하게 팔린다는 그이가 판화집을 내도 반응은 희미한데, 이번에 ‘엽서’를 묶었더니 여기저기서 인터뷰하자고 하고, 신문에도 서평이 실리고 법석을 피우는 것 같아 내놓은 판화집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고 했습니다.

“‘엽서’에 관해서는 조금 민망스럽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무덤덤하게 음미하기보다는 자극적이고 재미거리를 좇는 것 같아 뒷맛은 좀 씁쓸합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주제넘게 분위기를 띄울 요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무릎을 쳤다며, 이 같은 반응은 ‘공감의 미학’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이도 이 말에는 ‘공감’했습니다.

“제가 미술 하는 사람이지만 때로는 초월적 사유에 관심이 가고, 또 때로는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갑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함께 담기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주로 우리 주변에 있는 아주 흔한 작은 것, 일상적인 것을 엽서에 담아 띄우거나 작품에 담습니다.”

그이는 2003년 1월부터 거의 매일 엽서를 띄우고 있습니다. 때로는 판화 작품이 프린트된 엽서에, 때로는 하얀 도화지에 드로잉 하여, 등교하는 아이나 어쩌다 한번 자게 된 늦잠과 같은 일상에서부터 탄핵, 이라크 파병 같은 국가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과 반성, 자연과 더불어 얻어내는 선(禪)적인 체험들을 소재 삼은 작은 편린들을 담아 띄웁니다.

13일에 띄운 그이의 편지는 혹 저와 인터뷰할 때 나눴던, 작업실 햇볕이 참 따사롭다고 하던 그걸 소재로 삼은 듯 합니다. 그이가 띄운 엽서를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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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 화백이 1월 13일에 띄운 엽서. ⓒ 이철수

다시 그이와의 말 주고받음으로 옮기겠습니다.

그이는 공정하고 다툼이 적고 인간적 화해가 넘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함과 인간적 상식에 기초한 진보적 인간이 되자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하고 그이는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고 유기농으로 지어서 볼품없지만 먹을 만은 하다며 제주도 감귤을 권했습니다. 정말 껍질은 성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맛은 그이의 말대로 신 듯 하면서도 달았습니다.

“세상을 보면서 만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엽서에 담으려고 하는데, 저는 입으로 하는 얘기는 안 믿습니다. 몸으로 사는 얘기라야 믿을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육화된 삶의 이야기가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이는 작은 생명을 볼 때 경이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냥 누워있는 풀 한 포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우주적 질서가 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그이도 실수했습니다!

그이는 무척 바빴습니다. 으레 하는 겉치레 말이 아닙니다. 그이가 저에게 간곡하게 부탁할 정도로 그이는 바빴습니다. 그이가 작업을 하면서 인터뷰하는 것이 그냥 버릇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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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책 표지 ⓒ 삼인

옆에서 듣고 있던 그이의 아내가 그래서 사람들이 때로는 오해한다고 하더군요.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자, 그이가 그렇게 작업을 하는 것이 외려 저를 부담감에서 해방시켜주지 싶었습니다.

그이는 정말 이력이 난 사람 같았습니다. 얘기하면서도 조각도를 능숙하게 움직이더군요. 제가 마음속으로 이 장면에 감탄하고 있을 즈음 그이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지요. 그이가 제게 얘기는 안 했지만 눈치로 알았습니다. 아마 글씨까지 파낸 모양입니다. 열심히 뭔가를 찾더니만 그걸 원판에 대고 순간접착제로 붙이더군요.

아마도 이때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농사꾼이 아닙니다. 제 본업은 판화가입니다. 제 밥벌이는 판화입니다. 농사는 공부하기 위해 짓습니다. 저를 농사꾼이라고 하면 평생 농사로 잔뼈가 굵은 진짜 농사꾼들을 욕되게 합니다.”

그렇지만 그이가 이곳 제천에 내려온 지도 어느덧 19년이고, 짓고 있는 농토도 2500여 평에 달합니다. 그이 역시 농사철이 되면 무척 바쁘고 힘들다고 책 속에 실은 엽서에 적었습니다.

그이는 지금 큰 전시 2개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4월 1일부터 미국 시애틀에서 2년만에, 또 13일부터는 서울 가나아트에서 5년만에 각각 관람객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미국 전시회 때문에 3월 말 경에 그곳에 가야해서 그땐 엽서를 쉬어야겠지요? 아마도 이번 서울 전시회는 엽서를 받아보는 회원들과의 오프라인 모임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이는 전시회를 앞두고도 엽서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독자들도 쉬게 하세요!”라고 말했더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이는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글이 들어가지 않은 판화도 해볼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림에 글을 보태는 것이 반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술 자체가 스스로 신비화하고 논리적 설명을 회피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봅니다. 미술은 정직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이의 작품들은 그림과 글이 함께 어우러지며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왔는데, 글 없이 그림만 있으면 왠지 허전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림만으로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시도를 하기 위해서랍니다. 혹시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은 안하는 게 아닌가 하고 오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 역시 지금처럼 열심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이는 화가로서 욕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서 따뜻한 밥 한 그릇 정도의 역할이면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밥 한 그릇 역할이면 만족합니다!

그이는 ‘조심조심, 열심히’를 올해의 화두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문화방송 핸드백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어느 일이나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까 늘 조심조심, 천천히 챙겨보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심조심 열심히’는 어떤 경우이든 다 통한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도 그이가 엽서를 띄웠습니다. 엽서로 읽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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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 화백이 1월11일에 띄운 엽서. ⓒ 이철수

선한 행(行)은 드물고, 선한 말은 많기 마련이라며 그이는 늘 예쁜 말만 해서 그 말에 책임지가가 버겁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는 항의하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항의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이도 때로는 같이 분노하고, 화를 낸다고 했습니다. 탄핵 정국 시절 한 달 내내 탄핵 얘기만 하면서 성질을 부렸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이는 함부로 사는 잘난 사람들의 것을 흉내 내지 말자고 했습니다. 진정성을 가진 평범한 우리들에 의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믿자고 했습니다.

관념적이지 말고, 구체적 실천과 연대를 말하는 그이는 ‘마음 바로보기’를 하자고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그이는 놀 줄도 모릅니다. 수영팬티 속에 망사가 있다는 걸 얼마 전 처음 입어보고 알았답니다. 그이의 다정한 친구인 한 시인과 룸살롱엘 가자고 몇 년 전에 약속했는데, 여직 못 갔답니다. 알만 하지 않습니까?

그이는 인터뷰를 갈무리하면서 조명발 빼고 맨 얼굴로 만난 모습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마 대답은 했지만 난감합니다. 읽었다시피 저의 글재주가 여기까지거든요.

그날 그이는 불가피하게 배웠다는 서툰 운전솜씨로 저를 큰길까지 태워다주었습니다. 시외버스표까지 손수 끊어 저를 태워주고는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백운에서 다시 제천으로 가서,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아침에 내려오던 길을 되밟아 서울의 제 집으로 오려던 저는 시외버스를 타고 곧바로 서울로 왔습니다. 서울 오는 길은 또 있었습니다. 미처 제가 생각하지 못한 길이 또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철수의 집’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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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수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 개정판

이철수 지음,
삼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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