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부진과 함께 역할 끝났다고 판단했다"

33권으로 종간한 강준만 저널룩 <인물과 사상> 장의덕 발행인

등록 2005.01.20 19:22수정 2005.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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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의 저널룩 <인물과 사상>을 발행해 온 도서출판 개마고원 장의덕 대표. ⓒ 조성일

1, 2, 3…… 31, 32, 그리고 33.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기호학적 상징으로 통하는 <인물과 사상>이 '33'에서 책 나이 더하기를 멈췄다. 종간한 것이다.

'10' '20' '30' 등 의미 부여하기 좋을 십진법 고개를 세번이나 잘 넘긴 상태에서 종간이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돼 독자들을 비롯 애정을 갖고 지켜보던 이들에게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인물과 사상>의 발행인인 장의덕 도서출판 개마고원 대표를 만나 종간 속사정을 들어 봤다.

- 아쉽다. 8년여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해 온 성과를 생각할 때 무엇보다도 <인물과 사상>의 열렬 독자들의 상실감이 클 것 같은데, 종간 결정에 대한 심정은?
"우선 발행인으로서 독자들께 머리 숙여 감사와 사과를 드린다.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이 있었기에 서른세권이나 만들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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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마지막 33권 표지. ⓒ 개마고원

- 종간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컸을 것 같은데…….
"정말 참 많이 고민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고 강준만 교수나 저나 늘 <인물과 사상>이 닥친 한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터여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를 놓고 많은 생각을 나눴다. 저로선 계속 더 끌고 나가자니 부담이 크고, 그렇다고 접자니 그것 또한 부담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였다."

- 종간 뉴스를 전한 신문들은 강 교수가 인터넷에 굴복한 것처럼 썼던데…….
"그건 아니다. 강 교수가 쓴 마지막 33권 머리글이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인데, 인터넷 매체에 대해 언급한 그 글 속에서 독자들에게 안녕을 고해 기자들이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다. 종간하기로 결정하기까지는 인터넷 매체의 활성화 탓도 일부 있을 테고, 어쨌든 독자 수가 계속 줄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그건 <인물과 사상>이 지금까지 해 왔던 흔하지 않은 문제 제기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이기도 하고, 또 문제 제기에 대한 독자들의 공감도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출판 저널리즘'을 모토로 시장에서 독자와 직접 만나 '저널리즘'을 실천하겠다는 매체가 독자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접을 때가 된 것 아니겠는가?"

장의덕 발행인은 종간 결정 배경에는 판매 부진이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1997년 1월에 나온 제1권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5만부가 나갔고, 좋은 시절엔 매 권마다 1만부 정도의 판매는 무난했는데, 최근에는 매권 3000부 판매도 버거웠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면서 장씨는 이같은 결정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위험 부담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과학 출판사로서 대표 브랜드가 없어지는데, 출판사 자체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을 것 같고, 또 잘 나오고 있는 월간 <인물과 사상>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을 것 같고, 해서 부담스럽고 망설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좋은 책으로 그 공백을 대체하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용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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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1권 표지 ⓒ 개마고원

- 말꼬리 잡기 식의 질문은 아니다. 단행본 시리즈라면 종간보다는 완간이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고, 잡지라면 폐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인물과 사상>은 잡지적 단행본, 즉 강준만 교수가 용어를 만들었듯 '저널룩'(Journalism + Book)이어서 연속적으로 발행되는 정기간행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시작할 때 몇 권으로 완간하겠다고 정한 것이 아니라 계속 발행해 온 것이어서 그럴 것이다. '완간'이든 '종간'이든, 그간 일정한 성과도 있었지만 이제 사회의 변화된 지형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던 거라고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접는 것이 조금은 무책임한 것은 아닌가.
"어떤 아쉬움 때문에 나오는 말이겠지만, 그간 부딪친 한계를 돌파해보려고 변화도 모색해 봤다. 25권까지는 강 교수 1인 저널룩으로 해왔지만 26권부터 고종석, 김진석 두 편집위원이 합세한 편집위원제식으로 운영해 온 것이 대표적인 변화의 예다. 각 편집위원들이 돌아가며 책임 편집을 맡는 식으로 운영했다. 그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걸로 해소될 사안이 아니었던 것 같다."

- 변화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감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글쎄, 짐작해 보면 <인물과 사상>에서 정치 얘기를 많이 다루는데, 정치 얘기에 궁금해 하는 독자들은 이제는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욕구를 해소하는 것 같다. 또 하나 지적하면 독자의 요구나 기대와 <인물과 사상>의 의제 설정 사이에 갭이 생긴 탓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 경향이 심화되면서 중간 지대의 입장이 설자리가 없어진 것 아닌가도 싶다."

- <인물과 사상>의 성과를 자평한다면.
"현존하는 인물에 대한 실명 비판으로 소위 성역과 금기에 도전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지식인들의 '매명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옴으로써 우리 사회에 도토리도 키를 재어 주자는 '정당한 평가' 문화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켰다고 본다. 온갖 차별 문화에 대한 거부,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와 같은 언론 비판, 그리고 소위 개혁 진영의 '내부 비판'으로서의 역할도 일정 정도 있었다.

33권까지 그래도 장수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인물과 사상>의 이러한 시도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강준만이라는 특출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또 이런 성깔 있는 매체로 인한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며 노력해 주신 두 편집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강 교수와 편집위원께도 감사드린다."

<인물과 사상>은 그동안 숱한 화제를 몰고 왔다. 비판의 대상이 된 인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는가 하면 온갖 논쟁이 일어나는, 말 그대로 뜨거운 논쟁의 도가니였다. 그동안 다룬 인물만도 170여명에 이른다.

- 책을 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초창기에는 책 론칭이 가장 어려웠다. 단행본도 아니고, 잡지도 아니고, 서점 담당자들이 헷갈려 했다. 하지만 그런 문제보다는, '실명비판'과 '인신공격'을 구분해 주지 않는 풍토가 제일 어려웠다. 때때로 비판의 대상이 된 인물과 관련해 욕설 전화가 계속 걸려오기도 했다. 아마도 당사자의 지인들일 것 같은데, 그런 반응을 접하고 나면 몹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출판사가 이러니 집필자는 어땠을까 싶다. 개인적으론 소위 성향상 우군이라 할 수 있는 분들과 논쟁이 벌어질 때 심적인 부담이 좀 생기기도 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33권 '사고'에서도 밝혔지만 우리 시대 주요 인물에 대한 비판적 조명이 시도되었고, 사회적 요구와 필요에 부응하는 어젠더가 제출되기도 하면서 작으나마 그러한 나름의 역할과 소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독자들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제 역할과 소임을 다하고 퇴장하는 <인물과 사상>의 빈자리를 채워줄 제2, 제3의 <인물과 사상>들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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