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본존불 왼손-오른손 어느 것이 클까?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석굴암의 신비

등록 2005.02.08 04:05수정 2005.02.0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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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아름답다.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뛰어난 아름다움이 짙게 배어나오는 세계적인 문화 유산이다. 석굴암이 꽃이라면 당대의 종교와 과학 그리고 신라인의 예술성은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자양분을 공급하는 뿌리인 셈이다. 그래서 석굴암은 종교와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 이뤄낸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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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본존불 뒤로 연꽃 광배가 있고 제각기 다른 표정의 부조들이 있다. ⓒ 신라역사과학관

돌덩이로 만든 조각상에도 생명이 흐르는 듯하다.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무생물도 생명이 있단 말인가? 신라 사람들이 영혼을 쏟아 넣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돌덩이 조각상은 더 이상 차가운 돌이 아니라 사람 냄새 배어나는 친근한 이웃으로 다가온다.

온화함과 엄숙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본존불의 손끝 발끝을 보자. 맥박이 뛰고 숨을 쉬는 인간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지 않았는가? 석굴에 있는 40개 조각상들은 모양은 각각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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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 진행한 석굴암 수리 모습. 일본 관리 복장을 한 사람이 보인다. ⓒ 신라역사과학관

1200년을 유지해 온 석굴은 1913년에 일제에 의한 보수공사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해체되는 오욕을 겪게 된다. 한일합방을 전후로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 가던 일제는 석굴암 보수를 기점으로 문화재를 직접 관리하는 체제로 만든다. 그들의 내심은 이러했으리라.

'너희는 위대한 문화유산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민족이다. 이제는 황국의 보호를 받아라! 최신 설비로 말끔히 보수한 것을 똑똑히 보라.'

부당한 권력일수록 문화재 보수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법. 일제는 신라 사람들의 과학과 종교, 예술을 제대로 연구하려는 노력은 뒷전에 두고 최신식 설비와 콘크리트로 석굴암의 외형을 깔끔하게 단장한다. 이 때의 공사는 석굴암의 원형을 엄청나게 파괴했고 석굴 보존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대표적인 과시용 공사는 석굴 외벽에 콘크리트를 발라 버린 것이다. 무생물인 석굴을 숨쉬는 생명체로 만들었던 신라인들의 기본 정신을 훼손해 버린 것이다. 콘크리트 외벽은 석굴을 '숨막힌 공간'으로 만들어 버려 석굴암에 끊임없이 생기는 습기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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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현재 2중 콘크리트 돔으로 덮여 있다. 일제에 의해 한겹이 발라졌고 박정희 정권 때 또 한겹이 쌓였다. 신라역사과학관에서 제작한 모형 해부도. ⓒ 신라역사과학관

이러한 일제의 석굴암 파손 행위는 박정희 정권 때 또 다시 반복된다. 한겹이던 콘크리트 벽은 두겹으로 늘었다. 석굴암은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산소 호흡기로 목숨을 연명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시멘트에서 나오는 탄산가스와 칼슘이 석굴 보존에 치명상을 준다고 한다. 결국 파손된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관리하는 임무는 후세대인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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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들은 10개의 감실 외벽에 틈을 만들어 자연 환기구 역할을 했다. 본존불 어깨 위치와 비슷한 높이에 있다. ⓒ 신라역사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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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든 천개석을 밑에 작은 석재를 일정한 간격으로 끼웠다. 이 틈이 정체된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기구이다 ⓒ 신라역사과학관

석굴에는 자연 통풍구가 있었다. 본존불 어깨 높이에 있는 10개의 감실 외벽과 천장의 천개석 둘레가 환기구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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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돌은 돔 형식의 천장이 돌의 하중을 이길 수 있도록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고안한 건축 기술이다. 못 머리 형태를 안쪽에 두고 바깥은 돌의 버팀 현상에 의해 하중이 분산되고 아래쪽 평판석도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신라역사과학관이 만든 해부도. ⓒ 신라역사과학관

신라의 놀라운 석조 건축 기술은 석굴 천장을 돔 형식으로 만들어 냈다. 또 여기에 '팔뚝돌'이라는 버팀돌을 사용한 것은 세계 최초의 건축 공법이었다고 한다. 돔 형식은 돌의 무게 때문에 중력에 의한 하중을 많이 받게 되는데, 신라인들은 돌로 만든 팔뚝돌을 사용했다. 팔뚝돌은 지렛대의 원리처럼 하중을 밖으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바깥쪽으로 빙 둘러가며 비녀를 꽂듯이 수평으로 끼워 아래쪽 평판석을 눌러줘 역학적인 균형을 이루는 원리를 1300년 전 신라인들은 이미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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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는 전실을 지키는 문지기이다. 손을 펴고 입은 다물고 있다(좌). 금강역사. 주먹을 쥐고 입은 벌리고 있다(우). ⓒ 신라역사과학관

석굴 전실에는 관람객을 마주하며 눈을 부릅뜨고 있는 문지기가 있다. 금강역사라 부른다('금강'은 최고란 뜻). 입을 벌린 금강역사는 주먹을 쥐고 있고, 입을 다문 금강역사는 손을 펴고 있다. 음양의 조화를 고려한 신라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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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에 있는 부조 문양. 신발 디자인이 현대와 비슷할 만큼 세련됐다. ⓒ 신라역사과학관

석재에 새겨진 부조의 신발을 보라! 현대의 신발인 샌들과 디자인이 같다. 그 세심함과 조형미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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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의 왼손과 오른손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클까? ⓒ 신라역사과학관

본존불은 주실 중앙보다 조금 뒤에 위치한다. 이는 '빛에 의한 착시 현상'이 있는 사람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배치다. 본존불 왼손과 오른손 가운데 어느 것이 클까? 왼손을 2cm 더 크게 만들었다. 역시, 인간의 착시 현상까지 고려한 신라인의 건축 기술이 낳은 신비한 현상이다. 이처럼 석굴 여기저기에는 신라인들의 지혜가 살아 있다.

덧붙이는 글 | 1. 석굴 보존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후속 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 석굴암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신라역사과학관(관장 석우일)에서 제공했습니다. 석굴암 관람 전후에 꼭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석굴암 모형이 있어 제2석굴암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민간이 운영하는 곳으로 보문단지에서 불국사 가는 중간쯤에 있습니다. 신라역사과학관 연락처: (054) 745-4998

덧붙이는 글 1. 석굴 보존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후속 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 석굴암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신라역사과학관(관장 석우일)에서 제공했습니다. 석굴암 관람 전후에 꼭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석굴암 모형이 있어 제2석굴암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민간이 운영하는 곳으로 보문단지에서 불국사 가는 중간쯤에 있습니다. 신라역사과학관 연락처: (054) 745-4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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