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소식 듣는 순간 '참담'했어요"

[인터뷰] '2005 올해의 뉴스게릴라' 뉴스부문 수상자 김명곤

등록 2005.12.30 10:51수정 2005.12.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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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성탄절은 대단히 심심하다. 성탄전날 저녁이면 모든 상점은 일찌감치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만찬을 준비한다. 무수히 많은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성탄은 거리에서 활보하는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 집 안에서 성탄을 보내는 사람에게 동정의 눈길을 던지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성탄에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변변한 가족도 없는 측은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 심심한 날에 플로리다의 김명곤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 위스콘신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지만, 그곳에서는 꽃이 떨어지고 있을 터였다. 필자가 김명곤 기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미국 통신원으로 함께 활동하면서부터였다. '함께 활동했다'고는 하나,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도, 목소리를 들어 본 적도 없다. 같은 미국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 최북단에 자리 잡은 위스콘신과 최남단에 자리 잡은 플로리다는 기후도, 환경도, 문화도 다를 뿐 아니라, 대학도시에서 학생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필자와 미국 커뮤니티 및 교포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김명곤 기자의 눈에는 전혀 다른 미국의 모습이 투영될 것이다.

미국 '저 편'에서 들려오는 김명곤 기자의 미국 이야기는 때로는 섬세한 감수성으로, 때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들려오기도 했지만 언제나 필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디 그뿐인가. '글이 길다'고 항상 편집부의 꾸중을 듣는 필자로서는 나보다 훨씬 긴 글을 겁 없이 올리는 김명곤 기자가 큰 위안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2005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뉴스부문 공동수상자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전화인터뷰는 그런 이유로 시작됐다.

수상 소식 들었을 때 어땠냐고 물으니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기자로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갖추기 전에 상을 받게 되어 부끄럽다는 겸손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그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 만족치 않고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진실을 알리는 '장돌뱅이 언론인'이 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수상 소식 듣는 순간 '참담'해 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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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기자. ⓒ 김명곤

- 안녕하세요? '올해의 뉴스게릴라' 뉴스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지난해 정신없이 미국대선기사를 마구 쏟아냈는데, 2월22일상을 주시더라고요. 갓 시작한 신참이라서 그런 상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부끄러웠어요. '극미'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일단 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인 사실(fact)'로서 알아내는 일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는 상황을 면밀히 관찰, 분석, 평가함으로써 진실(truth)을 알리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진실을 알리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는 출중한 분들이 많은데 여전히 부끄럽습니다."

- 김 기자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김명곤 개인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명곤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한국에서 대학 연구소에 있다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나름의 뜻을 갖고 유학을 왔지요. 미시간 주립대학과 플로리다 대학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박사과정 마칠 즈음 시간이 좀 있어서 교민신문 몇 군데에 칼럼을 쓰게 되었는데, 이게 저를 완전히 신문일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플로리다에서 한인신문 편집을 맡고 있어요."

- <오마이뉴스>에 첫 글을 쓰신 게 2003년이던데요. 특별히 <오마이뉴스>를 글쓰기의 터전으로 삼은 이유가 있었나요?
"광주항쟁 이후로 저는 제도권 언론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언론이 겉으로 드러난 '팩트'만을 전하면서 책임을 다한 양 위장하고 스스로를 속여 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역사가, 문학가, 인류학자들이 지나쳐 버리고 무시한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진실을 밝히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욕구불만 해소를 위한 배설창구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곧 익숙해지더군요. 난상토론을 하다보면 종종 어느 구석에선가 '진실'의 음성이 피부깊이 전해져 오는 것을 종종 발견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장돌뱅이' 아시지요? 저는 종종 생각해 봤습니다. 장돌뱅이들이 보는 세상, 장돌뱅이들이 평가하고 분석하는 미디어 세상 말입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장돌뱅이들이 한 곳에 모여 각지의 소식을 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뉴스를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민들 위에 군림하는 거대한 제도권 언론은 서민들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리얼리티를 왜곡시켜 왔습니다. 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전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했지요. 이 목소리를 찾아준 것이 <오마이뉴스>였고, 저는 이 터전에서 한 명의 '장돌뱅이'로 삶의 리얼리티를 전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대한 첫 느낌이요?"

-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되셨는데 <오마이뉴스>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오마이뉴스>에 대한 첫 느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오래전에 어느 기자가 노근리 사건을 취재한 글을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자의 이름이 '오아무개'라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세상이 온 뒤, 재미 삼아 여기 저기 뒤적거리다 '오마이뉴스'라는 곳에 들어가 보게 됐어요. 관심이 깊어지면서 더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오래전 노근리 사건을 다루었던 그 기자가 바로 <오마이뉴스>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 이 양반이 자신의 성을 따서 '오마이뉴스'라고 했나보다'라고 생각했지요.

첫 느낌이요? 온라인 신문이 오프라인 신문에 비해 선정성이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상대적으로 다른 온라인 신문에 비해 균형이 잡혀 있고 건전하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지난해 미국 대선기사와 이라크 전 관련 기사를 쓰면서 종종 다른 온라인 매체의 기사를 보았는데 그때도 그걸 느낄 수 있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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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기자의 기사는 대부분 그의 일터인 한인신문 <코리아위클리 플로리다> 사무실에서 쓰여졌다. 김 기자는 한인신문에 실었던 글도 오마이뉴스에 맞게 재가공했으며, 오마이뉴스만을 위한 별도의 현장취재하는 열의를 보였다. ⓒ 김명곤

- 앞에서 '주류언론이 서민의 삶을 왜곡한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건 어떤 의미인가요? 단순히 시민 자신이 글을 쓴다는 것 이외에 <오마이뉴스>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도권 언론은 현실을 제대로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비단 한국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주류언론을 통해서 전달되는 뉴스는 수많은 환경의 제약에 의해 걸러진 결과물입니다. 한국 언론, 특히 신문은 일단 터뜨려 놓고 나서 그 다음에 수습을 하는 이상한 습관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지난 8월말 9월초의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지난해 이라크 포로학대 사건 등등에서도 잘 드러났지요. 원인과 과정 등 앞뒤 정황에 대한 묘사는 대충 얼버무려지거나 생략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것을 '상업언론의 특성'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상업언론'이라는 말이 반성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론인은 단순한 '사실'이 아닌 '진실'을 알려줘야 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어떤 형태로든 왜곡되어 나타나는 수가 많지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는 게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지요. 종종 언론인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양심과 역사를 속이지 않았습니까. 물론 우리 한국사회가 계량적 사고를 하도록 유도해 왔고, 기자들도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탓이기도 하지요. 진실은 제도 언론이 다루지 않는 것, 사소한 듯 보이는 것, 작은 움직임들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보다 진실 알리는 '장돌뱅이 언론인' 되고파

-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고 계시지만 특히 재난이나 이민, 전쟁, 장애 등 어려움에 놓인 개인의 상처와 아픔에 관심을 많이 쏟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장애 입양아를 다룬 "두 다리가 없는 은수가 '날아'다녀요"를 가장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쓰기에 반영된 신념이나 철학에 대해 얘기 좀 해주시지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현재의 미디어는 공중파이든 인쇄매체든 너무 가진 자들의 아귀다툼이나 화려한 세상만 비추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 신문도 부시 대통령과 의회가 이라크전과 관련하여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토의했는가에 관심이 훨씬 많고 이라크 민중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고통을 당하고 있나에 대해서는 '양념' 정도로만 다루고 있지요.

저는 '사는 이야기'를 자주 읽는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까지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으로부터 눈을 돌리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그 부분도 분명히 우리 현실의 일부 아닙니까? 저는 일부러라도 사회의 그늘진 곳까지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독자들이 사회를 균형 잡힌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김 기자님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도 미국 사회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거죠. 종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기사거리도 눈여겨보게 되었고, 여러 신문의 논조를 관찰하는 습관도 생겼어요."

- 앞으로 글쓰기와 관련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꼭 써 보고 싶으셨던 기사나 앞으로 다루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신 게 있는지요?
"사실 저는 분석하고 평가하는 글쓰기를 선호하는 편입니다만, 한동안 이 부분에 치중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미국사회는 물론 남북 화해문제나 요즘 말썽 많은 교회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써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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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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