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선물, 마음이 담긴 글은 어떨까요?

[인터뷰] 티켓 대신 책을 건네는 남자, 서성식씨

등록 2005.12.30 11:26수정 2005.12.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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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말연시 선물로 책을 만든 서성식씨. ⓒ 서성식

새해가 밝아오는 이 시점. 가까운 지인들이나 아끼는 이들에게 무언가 마음이 담긴 선물 하나 건네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뜻 깊은 선물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인연으로 얽힌 사회관계 속에서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혹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지 않을까'란 노파심 섞인 생각을 하며 지갑을 만지작거린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터. 그럴 때 자신이 직접 써 내려간 글을 모아 엮은 책 한 권을 건네는 것은 어떨까.

서성식(삼성생명 홍보팀 부장)씨는 얼마 전 회사가 아닌 집에서 아내와 장시간 회의를 가졌다. '안건'은 올 한해 틈틈이 자신이 써 두었던 글을 책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였다.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에 비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문제였지만 결론은 "해 보자"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누구보다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비싼 선물보다 제 마음이 담긴 글을 건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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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그의 삶에 가장 큰 의미라고. ⓒ 서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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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식씨가 만든 <2005 살며 사랑하며...> ⓒ 나영준

그의 책 <2005 살며 사랑하며...>는 지난 1월부터 12월까지 회사 직원들과 마음의 친구들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추려 만든 책으로 가족, 친구 그리고 삶에 대한 따스한 예찬들이 함께 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출간이라고 하기는 무엇 하고요(웃음).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직원들과 마음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이야기들입니다. 딱 200권만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만들 생각도 없기 때문에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할 책인 셈이죠(웃음)."

책 200권을 만드는 데 든 비용은 100만원. 권당 5천원인 셈이다. 한 번에 치르기에는 그리 만만치 않은 액수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구두 티켓 한 장을 선물해도 5만원"인 현실을 감안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출판보다는 한 중년의 직장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지인들과 뜻을 나누는 과정으로 봐주었으면 한다는 그의 말대로 책은 삶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이야기와 가족의 일부인 강아지의 일상 때로는 출장길에 느꼈던 자연과의 교감들.

하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녹록치 않은 글 솜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령의 어머니가 암 수술을 받는 병원에서 지새운 이틀 밤의 상념 속엔 삶의 회한보단 아름다움이 함께 하고 박지성보단 김병지를 좋아한다는 솔직한 고백에선 세상의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담백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몇 년째 계속 된 그의 '편지질'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해왔고 따스한 격려를 보내왔다고 한다. 답장을 보내오고 마음에 드는 글은 또 다른 친구에게 전달이 되고. 그런 주위의 응원 또한 적지 않은 힘이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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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아이와 강아지들의 작지만 따스한 일상이 담겨 있다. ⓒ 서성식

'...영혼이 맑은 아이로 이 세상에서 지키는 것이 아빠의 일이라 믿으며...
언젠가는 폴폴 날아서 혼자의 세상을 갈 때
가장 중요한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를,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심어줘야 할 것인가를...(본문 중)'


일반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받아든 순간 가지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 그 역시 책을 처음 본 순간의 가슴 떨림은 남달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큰 행복은 누구보다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 녀석은 3학년입니다. 너무 좋아하더군요. 이런 삶의 기록이 아이들이 커 나가는 과정에 있어 인생의 한 지침이 될 수 있다면 아빠로서 더 바랄 것이 있을까요(웃음)."

몰론 책 자체가 완전한 그의 창작은 아니다. 때때로 웹 서핑 중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작자미상'의 글을 모은 것도 10% 정도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출간'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것에는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건 책을 내겠다는 발원까지 세웠을 이라면 평소 인터넷을 통해 미니홈피나 블로그 활동에도 열심일 것 같지만 의외로 그 이외의 활동은 일절 없었다고 한다. 모르는 이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아는 이들에게라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저 역시 출판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인쇄소에 넘겨주니 알아서 해 주더군요. 권수가 늘어나면 좀 더 싸게 해 준다고는 하는데(웃음). 다른 분들도 한 번 해 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못해 건네는 선물은 이젠 식상하니까요."

주변의 호응에 내년에도 다시 한 번 책을 만들고 싶다는 서성식씨. 이야기 내내 쑥스러워했지만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꺼내며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떠올리라고 주문하자 이내 얼굴이 밝아온다.

TV를 켜면 멋지게 포장 된 고가의 선물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아무리 '마음의 선물'을 강조해도 때론 쪼그라든 한숨을 몰아쉬게 되는 현실. 그의 말과 행동처럼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는 자신만의 책 한 권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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