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미술의 실체를 느끼다

베이징 따산즈와 지우창 예술지구 방문기

등록 2005.12.30 20:28수정 2006.01.03 18:56
0
원고료로 응원
a

아라리오 메인갤러리 입구 ⓒ 임재광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의 어수선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중국 북경에 다녀왔다. 여행의 공적인 목적은 아라리오 베이징의 오프닝 참관이었지만 판자 위엔 주말벼룩시장에서 오래된 사진들을 구하는 일과 따산쯔 예술지구를 둘러보는 개인적인 용무도 있었다.

공항에 픽업 나온 아라리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예약된 호텔에 짐을 풀고 갤러리 오픈행사까지 남는 3시간 정도의 여유 있는 시간을 이용하여 뒷골목을 다니며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북경에 체제하고 있는 한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중국은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3세기가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며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고 사는 오지의 삶이 있는가 하면 눈부시게 발전하는 개방된 도시에서 초현대적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수도인 북경의 뒷골목에도 두 세기가 공존한다. 초현대적 빌딩의 뒤편 골목으로 들어가자 전면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현재의 시점에서 발생하는 과거와 미래의 급격한 시각적 대비는 충격적이었다.

지구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빈부의 격차지만 중국은 특히 심한 것 같다. 아라리오의 전속작가 한 사람은 비싸기로 소문난 시가를 연신 피워대고 있었고 또 다른 작가는 재규어를 몰고 나타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철거대상 무허가 건물에서 어렵게 작업하는 작가들이 있다. 우리가 방문한 한 작가의 작업실은 무허가라는 이유로 160여명의 입주 작가가 있는 스튜디오를 포크레인으로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그도 이제는 다른 곳을 찾아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a

아라리오의 정문이자 지우창의 관문 ⓒ 임재광


새로운 예술지구 지우창에 문을 연 아라리오 갤러리

아라리오 베이징은 충남 천안에 근거를 둔 아라리오 갤러리가 북경에 낸 지점이다.

아라리오는 왕광이, 위에민준, 샤오강, 류지엔화, 수지엔구어, 팡리준, 쩡하오 등 중국작가 7명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한국 언론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싹쓸이 했다"고 흥분했을 만큼 이들은 이미 국제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미술계의 스타들이다.

서구의 메이저 갤러리에서도 탐을 내는 중국의 대표적인 미술가들을 전속으로 확보함으로써 국제 미술시장 진출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세계 미술시장에서 이들의 작품을 사거나 전시회를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라리오를 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a

제 3 갤러리 ⓒ 임재광

북경의 지우창 예술지구는 작가 스튜디오와 갤러리 100여 곳이 들어서게 될 예정이며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따산즈에 이어서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곳이다. 몇몇 갤러리만 문을 연 상태로 아직은 썰렁한 편이지만 아라리오가 입주하면서 돌연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

아라리오 베이징은 우선 규모에서 압도적이다. 3000㎡에 달하는 면적으로 술 제조공장이었던 건물 다섯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 개의 갤러리와 사무실 그리고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 미술관이 아닌 사설 갤러리로서는 세계 최대규모일 것이다.

a

제 2 갤러리 입구 ⓒ 임재광

아라리오는 북경에 이어서 뉴욕에도 화랑을 열 예정이다. 중국에 거점을 마련하여 아시아 미술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미술시장의 가장 큰 장터인 뉴욕을 공략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천안의 아라리오 본점을 기점으로 동서미술의 중심지에 양 날개를 펼치는 형국이다. 한국미술계도 바야흐로 글로벌 경영이 시작된 것으로 보아 매우 고무적이다.

a

오프닝 리셉션 ⓒ 임재광

아라리오 화랑의 해외 진출은 세계화시대의 축복이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속성상 화랑이 서울이 아닌 지방의 중소도시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악조건이다.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세계무대로 진출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소통과 유통이 전지구화가 된 시대적 환경이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a

홍콩 국적의 갤러리 내부 ⓒ 임재광

실제로 베이징의 전시장에 설치된 CCTV 화면을 천안의 갤러리 본부에서 직접 보면서 원격 통제한다. 물리적인 거리와 공간을 뛰어넘어 첨단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는 놀라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 중심 또는 중앙집권적 사고는 이제 과감히 버려도 된다는 모델을 아라리오가 보여주었다. 세계의 변방에 불과한 한국의, 그것도 서울이 아닌 천안이라는 중소도시에서 세계를 대상으로 직접 교류하고 유통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주고 있다.

아라리오 베이징의 오프닝 세레머니는 600명이 넘는 국내외 미술계 인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성대히 치러졌다. 중국 미술계는 물론 멀리 한국과 유럽에서부터 온 갤러리스트, 평론가, 딜러, 저널리스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인공인 CI KIM 즉 김창일 회장은 인상적인 이벤트로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a

따산즈의 798지구 군수공장을 개조한 갤러리 내부 ⓒ 임재광

중국의 미술중심, 따산즈 예술지구

다음날 우리는 중국거주 작가의 안내로 따산즈 예술지구를 돌아보았다. 따산즈 예술지구는 원래 798이라는 공장지대였으나 지금은 갤러리, 공방, 카페들이 구석구석에 들어서 있는 예술특구가 되었다.

따산즈에 가면 중국 현대미술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 90년대 말에 뉴욕에 머물면서 무시로 접했던 중국미술을 '신선한 충격' 정도로 받아들였던 나로서는 중국미술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막강한 힘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a

반대편 모습 ⓒ 임재광

따산쯔 예술지구는 뉴욕의 화랑가가 형성된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버려진 공장지대에 미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면 뒤따라서 갤러리가 열리고 이어서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선다.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독창적이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사람들이 몰리면 상업적인 기능이 살아나 건물의 임대료가 올라가며 여전히 가난한 예술가들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들이 밀려간 그곳에 새로운 예술지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a

공산주의 시대의 구호가 그대로 있다. ⓒ 임재광

뉴욕의 소호가 버려진 공장지대에서 화랑가로 살아났다가 지금은 패션스토어와 카페가 즐비한 상업지구로 변했고 거기에서 밀려난 미술가들의 정착에 의해 첼시 지역이 새롭게 형성된 화랑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또한 첼시지역에서도 밀려난 작가들은 부룩클린의 윌리암스버그로 옮겨가면서 그 지역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따산즈에 생긴 최초의 한국 갤러리인 이음갤러리에 들러 그곳의 젊은 큐레이터들로부터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가지고 진취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곳에 진출해 있는 유럽과 일본의 거대 화랑들 틈에서 기죽지 말고 잘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a

왕광이 작품이 있는 따산즈 거리 풍경 ⓒ 임재광

따산즈의 전반적인 느낌은 뉴욕 첼시지역의 화랑가와 비슷하였다. 갤러리들은 오래된 건물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의 인테리어만 바꾸었으나 전시에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두고 있다. 전시되는 작품들도 현대미술의 다양한 경향을 포괄하여 실험적인 작품부터 상업성 있는 작품들까지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산즈와 지우창의 예술지구를 보며 중국미술의 거대한 동력을 다시금 확인하였고 아울러 한국미술의 상대적 빈곤감을 절감하게 한 북경미술기행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