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은 '모성'을 칭송하지 않았다?

기 베슈텔 <신의 네 여자>

등록 2005.12.31 18:32수정 2006.01.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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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네 여자>(여성신문사, 2004년)는 '그리스도교 기원 이래 가톨릭교회의 여성잔혹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기 베슈텔(Guy Bechtel)은 이 책에서 여성들에 대한 잔혹한 역사를 파헤치면서도 격렬한 논조를 전혀 쓰지 않는다. 분노할 만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분노하는 데에 쓸 에너지를, 여성잔혹사의 다양한 측면을 제대로 제시하는 데에 투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여자들을 태생에서부터 열등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어머니는 칭송받지 않았느냐고? 역사학자 베슈텔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가톨릭교회는 어머니, 즉 모성을 칭송한 적이 없다. 우리는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암브로시우스(340-397)는 "석녀(石女)들이여 행복할 지어다!"라고 하면서 처녀성을 옹호했다. 가톨릭교회는 공개적으로, 어머니 생활보다는 독신생활을 예찬했다. 성모 마리아 숭배? 모성 숭배 아니었다. 성모 마리아는 '아기를 낳고서도 처녀!'였다. 이 세상 그 어떤 어머니도 성모 마리아하고는 안 비슷하다.

"어머니는 천국에 이르기 가장 어려운 존재로 취급되었다. 처녀도 수녀도 성녀도 될 수 없었던 까닭에 여자는 어머니가 되었던 것이다."(35쪽)

교회는 여자들을 네 종류의 여자들로 분류하였다. 이리하여, 이른바 '신의 네 여자'가 구상되었다. 창녀, 마녀, 성녀, 그리고 바보.

교회는 창녀를, 너무 음란하다며 드러내놓고 싫어했다. 여기서 창녀는 굳이 직업적 매춘여성만이 아니었다. 모든 여성이 창녀로 취급되었다. 가톨릭 신부들은 고해성사를 통해서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동시에 죄의식을 조장했다. 그렇게 성을 지나치게 백안시하다가 급기야는 출산율이 뚝 떨어지는 사태를 불러오기까지 하였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은 외설적인 괴물로 취급되어왔다. "타락한 여자의 집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말은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모든 여자들이 타락한 여자들과 동일시되었다(175쪽).

교회는 마녀도 싫어했다. '악마가 여자를 선호한다'는 해괴한 신념이 팽배했는데, 그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은 제대로 된 재판조차 거치지 못한 채 죽어갔다. 잔인한 마녀사냥은 그리스도교가 생활 전반을 지배했던 중세시대가 아니라 16세기와 17세기 동안에 주로 행해졌다.

교회에 자주 가지 않는 여자들은 자주 가지 않는다고, 교회에 너무 자주 드나드는 여자는 너무 자주 드나든다고 마녀로 의심받았다. 특별히 과부가 많이 살해되었다. 형리들은 말하였다. "자백을 하라. 아니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고문할 것이다." 자백을 하면 마녀로 죽었고, 자백을 안 하면 고문당해서 죽었다.

집안에 남자가 없는 까닭에 성적 욕구 불만으로 신랄해진 과부는, 유혹에 빠진 사람이 경험하는 쾌락 즉 수많은 신학자들을 몽상에 빠지게 했던 과거의 희열을 되씹어 추억한다고 여겨졌고 따라서 과부는 사회불안요소가 되었던 것이다.(219쪽)

그렇다면 교회는 세 번째 여자, 성녀는 존경하였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신과 교섭하는 여성은 매번 의심을 받았다. 수녀원은 거의 감옥이었으며,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한 번 들어가면 평생 그 안에 감금되어 살아야만 했다. 또한 남자 사제들은 신학을 공부할 수 있었지만, 수녀들에게는,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가톨릭교리나 신학을 가르치지 조차 않았다.

마지막으로 바보. 바로 이 바보를, 교회는 제일 좋아하였다. 일자무식에다가 못생겼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는 여성, 분명한 촌스러움에다가 충직하기 이를 데 없는 순박한 얼간이, 교회는 바로 이러한 여인을 사랑하였다. 베슈텔은 의미있게 지적한다. "못생긴 동정녀란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아름다운 여인들을 원하지는 않았다(337쪽)"고. 한편 교회는 여성들을 가르치려고 들지 않았다. 13세기 중반 필립 드 노바르는 이렇게 말했다.

"특별히 수녀를 양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여자에게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여자들이 읽기나 쓰기를 배움으로써 많은 해악이 생겼기 때문이다."(365쪽)

교회가 매우 끈질기게, 또 악랄하고 집요하게 여성들을 비하하고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이천 년 동안 여성들은 교회의 주요구성원으로서 지내왔다. 그러나 베슈텔은, 이제부터는 여성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여성들이 더는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잔혹한 행위에 대하여 여성들은,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용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신의 네 여자 - 그리스도 기원 이래 가톨릭교회의 여성 잔혹사

기 베슈텔 지음, 전혜정 옮김,
여성신문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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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 [해나(한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2022세종도서) 환경살림 80가지] 출간작가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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