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자갈밭 밑에 학살당한 유골들이 겹겹이...

진짜 유골을 전시한 중국 난징대학살기념관

등록 2006.05.28 11:34수정 2006.05.2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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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밭 밑으로 유골들이 몇겹으로 층을 이루어 쌓여있다. ⓒ 유창하

중국 상하이로 침공하여 난징으로 진군한 일본군이 저지른 잔혹한 학살 현장이었던 난징대학살기념관(侵華日軍南京大屠殺同胞紀念館)을 갔다. 구멍 뚫린 유골들과 발굴 당시 여자들의 유품들을 보며 장예모 감독 영화 <붉은 수수밭>에서 보았던 일본군의 잔인한 살인 장면이 사실임을 절감한다.

이곳은 실제 유골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실물사료(實物史料)형 역사기념관으로, '인간성을 파괴하는 전쟁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되씹어 보며 평화를 갈망하는 생생한 역사교육의 장소이다.

이날 중국 젊은이들의 긴 참배 행렬과 그들의 숙연한 자세를 지켜보며 '젊은 중국인들은 일본이 저지른 학살 만행을 결코 잊지 않는다'라는 것을 문득 발견한다.

그러면서 중ㆍ일 양국간 역사적 의미와 '중국 여타 도시에 비해 난징에서 왜 이렇게 유독 대규모로 일본군의 민간인 대량학살극이 벌어졌는지?'라는 작은 의문점을 조금이나마 풀어보는 계기도 되었다.

난징 주변에서 30여만 명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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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이 진행된 기간인 1937.12.13~1938.1 이 십자가 탑에 적혀있다. ⓒ 유창하

난징대학살기념관은 1937년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난징 일대에서 30만여 명을 학살하는 참극을 벌였던 장소를 그대로 복원하여 만든 곳이다. 난징대학살기념관 조성 현장은 난징에서 일어난 학살 현장의 한 곳인 '쟝둥먼'이라 불리는 장강(長江)변으로 이곳에서만 무려 3만여 명이 학살되었다.

난징 기차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난징 중심지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기념관 입구에 다다르니 십자가 모양의 대형 장식건축물이 보이고 십자가에는 '1937.12.13~1938.1'이라고 난징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대학살 기간이 적혀있다.

일본군은 상하이를 침공한 지 60여일 만에 당시 국민당 정부 수도였던 난징을 공격해 수많은 중국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종전 후 전범재판 조사과정 자료에 따르면 살해된 인원이 30만여 명으로 보고되어 당시 학살 주범이었던 일본군사령관이 전범으로 사형되었다. 이후 진행된 중국 정부의 조사발표에서도 난징 주변에서 최소한 30만여 명이 살해되었다 한다.

특히 국민당 중국군이 퇴각하여 일본군이 난징을 완전점령하고 나서도 5~7만여명의 부녀자와 어린이, 노인, 비무장 군인들을 한곳에 집결시켜 놓고 기관총으로, 대검으로, 때로는 사람 몸에 기름을 부어 불을 질러서, 총검술 연습용으로, 어떤 경우에는 산채로 생매장하는 방법으로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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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현장 그대로 모습이 보존되어 있고 유골들이 누워있다. ⓒ 유창하

일본군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 포악한 방법'으로 학살을 자행하여 세계인들로 하여금 치를 떨게 하였다(나치 출신인 독일인 라베마저 히틀러에게 학살을 중지시켜 줄 것을 요청하는 서면을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이처럼 근대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게 대량살인극을 벌인 이유는 '수도를 버리고 퇴각하는 국민당 중국군이 끝까지 항전의지를 버리지 않자 중국군 사기를 꺾고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행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지친 일본군의 담력을 키우기 위한 조치였다'라고 말한다(중국은 땅이 넓어 비록 수도를 점령해도 항복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 국민당 정부는 일본군을 피해 내륙 깊숙한 중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공산당과의 전쟁에서는 퇴각하여 대만으로 수도를 옮긴다. 중국 본토를 침략한 일본군도 장기간 전쟁으로 지쳐있었다).

'평화의 종'에 적힌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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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깃발을 들고 단체로 참관오는 중국인들. ⓒ 유창하

기념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0여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긴 행렬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중국에서는 드물게 이곳은 무료입장). 관광깃발을 든 안내자의 인솔에 따라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관광버스 30여대가 광장과 도로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택시 기사에 물어보니 휴일에는 1만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관람객이 많다고 한다.

이곳 기념관이 참사 70주년을 맞이하는 2007년을 맞이하여 현재의 기념관 면적 2만5천 평을 7만 평으로 확장하기로 하여 조성공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학살기념관을 역사교훈 장소로 더욱 확대하고 학살현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참혹한 실상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막고자 세계문화유산 등록저지 로비를 벌이고 있다.

수도배관으로 만든, 미로 같이 굽어진 '배관통로'를 왔다 갔다 3차례 왕복한 끝에 입구 문을 통과하니 멀리 커다랗게 '300,000'이라는 '죽은 자의 숫자'가 새겨진 벽면이 보이고 앞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의 커다란 '평화의 종'이 나온다. 종 몸통에는 일본어로도 글들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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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들이 학살장으로 끌려들어간 노인들의 발자국을 따라 들어가고 있다. ⓒ 유창하

30만이란 숫자가 기록된 벽면에는 민간인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고 벽면 밑에는 목이 잘려나간 머리 조각상이 있다. 전시관으로 걸어가는 발밑에는 당시 학살현장으로 끌려들어 간 노인들의 이름과 발자국을 동판 조각해 관람객이 학살된 노인들과 같이 걸어가는 느낌이 들도록 조성해 놓았다.

2007년 확장공사 조성계획 공모에 당선된 중국인 설계사 도면에 따르면 관람자가 전시관 들어가는 길목의 모래를 밟으면 학살당한 어린이, 부녀자, 노인들의 신음소리가 가늘게 귓가에 들리도록 하여 그 고통을 같이 하도록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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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헌화하는 중국 대학생들. ⓒ 유창하

끌려간 노인들의 발자국이 멈추는 곳에 다다르니 추모식을 거행하는 식장이 나온다. 젊은이 30여명이 헌화를 하고 추모음악에 맞추어 묵념을 하고 있다. 헌화한 조화를 보니 한 대학 서클에서 단체로 찾아와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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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단체 참배객들을 위해 참배식순이 아예 간판으로 깔끔하게 제작되어 있다. ⓒ 유창하

옆을 자세히 보니 추모식 양식을 나타내는 식순 현판이 보인다. 기념관 관리인의 안내에 따라 추모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식순까지 현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추모식을 하는 모양이다. 학생들의 표정이 숙연하고 진지하다.

학살당한 유골들이 층을 이루고

조화가 여러 개 걸려있는 분향소를 지나 다시 바깥으로 나온다. 학살은 난징 함락 이후 장강변 여러 곳에서 진행되었다. 마당에는 개별 학살현장을 알리는 비석이 각각 세워져 있고 개별 비석에는 당시의 참상 기록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넓은 평지에 자갈이 잔잔하게 깔려있다. 자갈밭 밑이 바로 집단 참살당해 유골들이 여러 겹으로 묻혀있는 현장이다.

학살을 자행한 후 사체를 묻고 또다시 그 위에 시체를 묻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묻어 유골들이 단층처럼 층을 이루어 묻혀있는 곳이다. 유골전시관에 들어가니 한쪽에서는 유골들이 층을 이루어 섞여 묻혀 있고. 한쪽에서는 발굴 당시 그대로 넓은 평지에 가지런히 많은 유골들이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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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발굴 유골들. 유골에 총탄 구멍이 뚫여 있다. ⓒ 유창하

유골 전시관은 단층으로 발굴되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떤 유골은 총에 맞아 구멍이 뚫린 유골이 있는가 하면, 어린이 유골, 노인 유골, 대못이 박혀있는 유골도 있다. 다른 한편에는 발굴 현장에서 발굴한 부녀자의 머리핀, 부식된 기관총알, 학살에 사용된 기관총, 소총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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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학을 연결하여 만든 추모물이 놓여있다. 일본학생들의 추모 종이학도 있다. ⓒ 유창하

많은 단체방문객들이 "종이학을 엮어 만든 추모물"을 걸어놓았다. 종이학 추모물은 중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 학생들도 이곳을 방문하여 남겨놓았다. 통로를 따라 밖에 다시 나오니 '일본 사회당이 1992년 이곳을 방문하여 기념식수를 했다'는 표식이 된 비석과 함께 기념수가 있다.

일본 우익인사들의 망언은 과거를 되풀이한다

대표적 일본 우익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지사는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난징학살은 사실이 아니다. 중국이 꾸며낸 거짓말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우익인사들은 일본 학생들에게 난징학살기념관을 단체방문하지 못하도록 회유한다. 일본의 보수우경화는 소수자의 목소리가 아니고 대다수 정치인들의 의사를 대변하며 이끈다.

중국은 공산당 집권 초기부터 난징대학살을 부끄러운 과거로 치부하며 국민당 정부와의 싸움이라 크게 다루지 않았고, 이후에도 신중하게 중ㆍ일 양국간 해소해야 할 과거문제로 조심스럽게 다루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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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을 집결시켜 놓고 집단살해한 기관총과 소총 ⓒ 유창하

하지만 수년 전부터 조어도(센카쿠열도) 영토분쟁과 일본교과서 역사왜곡 문제가 일어나고 급기야 작년에는 중국인들의 대규모 반일시위가 베이징과 상하이에서까지 일어났다.

최근 들어 중국은 난징대학살 당시 난징 거주 중국인들을 피신시켜 구한 독일인 라베의 버려진 저택을 기념물로 조성한다든지, 미국 국적 중국인 2세인 저널리스트 겸 사학가인,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힘> 작가 아이리스 장의 동상을 세우려는 등 난징대학살을 크게 다루고 있다.

일본 우익인사들의 협박에 시달리다 자동차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이리스 장은 그의 저서에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라고 일본에 대해 경고했다.

난징학살기념관 벽에는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자"는 글자가 적혀있다. 일본에 대한 경계의 고리를 풀지 말고 앞길을 나아가자, 라고 방문하는 젊은이들에게 역사의식을 일깨운다.

독도영토 주장, 독도 해로 탐사선 파견 등 일본 우익들의 망언ㆍ망동에 대처해야 할 우리로서도 중국의 난징대학살기념관 운영에서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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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 기간 오마이뉴스에서 쉬었네요. 힘겨운 혼돈 세상,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일상을 새로운 기사로 독자들께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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