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이번에도 "아니면 말고~"로 손 터나

'지충호 정치권 연계설' 불 지핀 <조선><동아>... 판단력 잃은 보도

등록 2006.05.29 16:58수정 2006.05.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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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에 대한 보도에서 '∼카더라 통신'에 민감한 언론의 맹점이 또다시 드러났다.

피의자 지충호씨의 '정치권 연계설'은 지씨 주변인물들이 자기과시가 심한 지씨로부터 들은 말을 일부 언론이 여과없이 보도함으로써 비롯됐다.

사건이 터진 뒤 지씨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자 언론은 지씨 친구 등 주변인물들을 다각도로 접촉했다. 이들은 보도진에게 "지씨가 열린우리당 의원들으로터 20만∼30만원씩 받았다고 했다""국회의원이 지씨를 정수기 회사에 취직시켰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열린우리당 배후설'을 제기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여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이를 호재로 판단한 듯 기사를 키웠다.

동아는 "지씨가 의원들에게 20만∼30만원씩 용돈을 받았고, 200만원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는 지씨 지인들의 진술을 그대로 기사화 했고, 조선은 '지씨, 100만원 수표로 카드결제'라는 제목을 뽑아 생계능력이 없는 지씨가 마치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이는 모두 지인들이 지씨로부터 들은 얘기에 불과했다. 실제로 지씨가 열린우리당측과 연계된 구체적 정황을 설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씨 주변인물들은 대개 인천 학익동 집창촌을 배경으로 지씨와 인간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다.

보도 과정에서 중대한 과실은 지씨가 과장과 자기과시가 심한 사람이라는 점이 간과됐다는 점이다. 주변인물 가운데는 이같은 점을 강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언론은 검증하지 않고 이른바 '기사발' 먹히는 부분만 집중 보도했다.

인천의 한나라당 소속 구의원은 "지씨에게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소개로 취직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확인할 것을 요청했지만 일부 신문은 그대로 써댔다.

특히 직업이 없는 지씨가 과도하게 돈을 쓴 것을 '정치권 지원설'로 비화시킨 것은 단세포적 발상이다. 지씨가 갱생보호공단 생활관에 거주할 때 식당 아줌마에게조차 돈을 빌려 갚지 않는 등 지인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데 귀재였던 데다 오랜세월 수감생활을 하다 지난 3월에야 사회로 복귀해 정치권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던 점 등이 무시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잇따른다는 점이다. 지나친 취재경쟁 탓도 있지만, 특정 정파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의도가 앞서 스스로 냉철한 판단력을 잃기 때문이다.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일부 언론의 '분탕질'을 보면서 비애감마저 느끼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김학준 기자는 서울신문 지방자치뉴스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학준 기자는 서울신문 지방자치뉴스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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