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의 덫'에 빠진 사회

김병준 교육부총리 사퇴를 보면서

등록 2006.08.03 14:37수정 2006.08.0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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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취임 13일만에 낙마함으로써 자녀국적 문제 등으로 5일만에 사퇴한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에 이어 2번째 단명 교육부총리가 됐다.

김 부총리의 낙마에 대해서는 상반된 시각이 있는 것 같다. 학자의 생명과도 같은 논문을 표절한 것 등은 심각한 결격 사유여서 도덕성을 추구하는 교육을 총관장하기에는 적합치 않다는 의견이 지금까지 대세를 이뤄왔다.

반면 논문 표절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학계의 관행이었던 측면이 있는 만큼 사퇴를 강요할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관점도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김 부총리 사퇴에 대해 명백한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참여정부 들어 고위 공직자의 치부가 언론에 의해 폭로되면 사퇴가 거역할 수 없는 수순처럼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결과적 필연성이 얼마나 강력한지 마치 블랙홀에 빠져드는 것을 연상시킨다. "항우 장사라도 견뎌내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일부 사례는 사퇴가 당연할 정도로 도덕적 결함이 심각했지만 사안이 별것 아님에도 언론이나 야당의 정략적 공세에 의해 무너진 경우도 다수 있었다.

지인에게 영종도 개발정보를 알린 것이 문제가 돼 지난해 3월 사퇴한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여기에 해당된다.강 전 장관이 알려준 정보는 일반인들에게도 1990년대 중반부터 널리 알려져 비밀이 아니라는 것이 현지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하지만 강 전 장관은 언론과 야당의 공세에 해명 한번 제대로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무차별 '폭로'로 물러난 역대 장관들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또한 2003년 9월 한총련의 미군부대 진입과 관련, 국회 해임건의안 의결로 사퇴했다. 야당에 의해 제기된 사유는 장관이 그만둘 만한 직접적인 사안이 아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외에 2003년 10월과 11월 각각 그만둔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도 아쉬움이 많았다는 평가다.

이같은 현상은 공인에 대한 국민들의 도덕적 잣대가 높아진 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논리를 뒷받침하고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언론간의 치열한 경쟁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실관계의 정확성이나 도덕적 결함의 심각성 여부에 대한 심도있는 검증이 이뤄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간의 괴리도 고려되지 않는다. 어느새 조건없이 공직자와 지고지선(至高至善)을 결부시키지 않으면 언론 스스로 성이 차지 않는 형국이 된 것이다.

김병준 부총리는 "교수 사회에서 털면 안 걸릴 사람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 정형화된 '공직관'은 조그만 빈틈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일련의 사태가 공인의 도덕성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가 '폭로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옥석을 구별하지 않고 문제가 여론화됐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의 연속성을 책임져야 하는 공직자가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가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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