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월이니 섭섭해서 우째요"

안산시 '노인 일자리 사업단' 참가자들의 하루

등록 2006.09.13 19:25수정 2006.09.14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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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수고 많으십니다. 요즘 날씨는 일하기 참 좋죠?
"예, 그럼요. 요새는 참말로 살만하제~"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에서 다시 달려 나와 어르신들이 일하는 현장에 왔습니다. 땀을 팥죽처럼 흘려야하던 여름과 달리 아침저녁 쌀쌀하기까지 한 요즘. 어르신들은 땀띠가 안 나니 일하기 너무 좋다며 쾌활하게 인사를 받습니다.

조끼에 모자 명찰까지 갖추어 안산시 노인일자리사업단임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작업장갑을 벗을 겨를도 없이 제 손을 잡고 반가워하십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앞역 광장. 넓은 공영주차장에다 마을버스 정류장, 헌혈컨테이너, 매점, 한양대학교 셔틀버스 정류장, 그리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까지. 어르신들의 작업을 몇 발짝 동행하노라니, 그야말로 이 곳들은 쓰레기 천지입니다. 불법광고물이며 바닥에 흩어진 쓰레기들로 어르신들의 비닐봉투는 금방 배가 불룩해집니다.

지난 3월부터 이 지역 청소를 맡은 공익형 노인일자리 제4팀 10명의 어르신들. 매일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이동 일대 버스정류장과 공영주차장을 청소합니다. 그 구역은 한양대앞역 광장에서 상록수역 뒤편 공영주차장까지. 중간에 농수산물시장이 있는 그야말로 방대한 구역입니다. 어르신들 10명이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마다 걸어갑니다. 10명 한 팀이 도로 양쪽으로 나누어져 훑어가면 거리와 버스정류장이 깨끗해집니다.

주 4일 근무하여 어르신들이 한 달 받는 인건비는 20만원. 상록구 관내에는 이런 공익형 일자리 사업에서 어르신들 6개 팀 59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5명의 어르신들이 교체됐으니 총 동참한 어르신 수는 64명인 셈입니다.

지난 2월 접수할 때 신청자가 167명이었던 것을 보면 아직도 일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어르신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일하는 즐거움과 수입이 함께 필요한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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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형 노인일자리사업 참여 어르신들의 일하는 모습 ⓒ 김화숙

4팀장 ㄱ어르신은(70) 과거 직장생활의 경험을 살려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팀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ㄱ어르신이 일자리를 찾아 취업지원센터에 등록한 지가 이미 2년이 됩니다. 작년 한 해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지쳐하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 모습이 훨씬 활기차고 즐거워 보여 기분이 좋습니다.

일자리사업 참여 어르신들은 일하는 즐거움과 수입이 함께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팀원 ㅁ어르신은(75) 몇 달 전 오래 앓던 부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셨습니다. 홀로 생활하셔야 하는 적적함과 생활의 부담으로 어려운 시기에 일자리사업에 매일 출근하는 것이 큰 버팀목이 되었다 합니다.

팀원들과의 유대관계와 할 일이 있는 일상이 아침에 힘을 내어 일어나게 한 것이지요.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할 일과 역할을 상실하기 쉬운 노인들에게 일자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안산시 노인일자리사업은 국비와 지방비를 반씩 부담하여 60세 이상 어르신들께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업입니다. 참여정부의 노인 일자리창출 사업은 아주 중요한 약속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올해 안산시의 경우 총 예산 3억5400여만원으로 상록구와 단원구 어르신 220여명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노인회 상록구지회와 단원구지회가 공익형일자리를 위탁운영하고 상록구노인복지회관과 단원구노인복지회관이 교육형, 복지형, 인력파견형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2월에 준비해서 3월부터 10월까지 7개월 동안만 이뤄집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아쉬워합니다. 물론 내년에 또 다시 접수해서 인원을 선발하게 됩니다. 겨울철 추위에 어르신들이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지만 예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공익형은 65세 이상 어르신들로서 바깥에서만 하는 일인데도 희망자 수와 일자리 수의 차이가 큽니다. 일정한 수입원으로서 일자리를 계속 갖고 싶은데 곧 그만하게 될 게 섭섭해서 어르신들이 힘주어 외칩니다.

"그나저나 벌써 9월이니 섭섭해서 우째요!"
"그러게요... 팀장 모임에서 뵐께요~"


계속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끊기는 게 싫다는 어르신들의 외침입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팀장 모임에서 뵙자고 말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한 달 20만원씩 들어오던 수입이 끊기게 되는 게 큰 문제입니다. 공익형 노인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은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는 차상위계층이 대상입니다.

9월이 오는 게 싫은 어르신들

내년에 다시 공개접수와 선발을 하게 되면 올해 참여하신 분들이 다시 될 기회는 적어집니다. 59명의 어르신들의 평균연령은 70세를 훌쩍 넘었기 때문에 달리 다른 일자리를 얻을 기회 역시 적습니다. 때문에 9월이 오고 10월이 오는 게 어르신들은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어쩌면 가장 안쓰러운 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일흔이 넘고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은 특별히 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 빼고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어지럽고 힘든 시대를 사신 분들입니다.

가난과 식민지 시대,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못 먹고 못 입고 그야말로 허리띠 졸라매며 사신 세대입니다. 젊은 시절, 자식들 키우고 교육시키는데 '올인'했지만 정작 당신들의 노후를 위한 준비는 미처 하지 못하셨습니다.

연금도 보험도 소수의 복 받은 노인들에게 해당되는 일입니다. 모든 걸 다 드려 키운 자식들이 노부모의 노후대책이 되는 게 아님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토록 땀 흘려 이룬 오늘의 우리나라가 이분들의 노후를 책임져주는 것도 역시 아닙니다.

그나마 퇴직금을 받고 퇴직한 경우에도 자식들이 '웬수'라서 사업자금이다 뭐다 가져가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혹은 경험 없이 사업에 투자했다가 빈손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들은 노년이라고 한가하게 여행하고 취미생활 하시는 분들이 아닙니다. 당신들의 용돈이든 생활비든 얼마라도 벌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분들은 힘이 있는 한 직접 일하고 벌어 쓰는 것을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예산을 드려 노인일자리사업을 마련해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합니다.

제 5팀을 향해 돌아서는데 내 귀에 쟁쟁하는 울림으로 들리는 듯합니다.

"일할 능력도 있고 의욕도 있응께, 우리 노인들도 벌어 쓰게 일자리 좀 주시라고요!"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늙어서 가난한 걸 어쩌란 말입니까? 일자리를 주시라고요!"

덧붙이는 글 | 김화숙 기자는 노인회 취업지원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화숙 기자는 노인회 취업지원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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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운동하고, 보고 듣고, 웃고, 분노하고, 춤추고, 감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읽고, 쓰고 싶은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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