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개 동창생들이 만드는 지팡이 '두레'

또 다른 노후대책, 이런 동창회 어떻습니까?

등록 2007.01.13 17:05수정 2007.07.0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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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어울리고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고향 언덕배기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서로에게 지팡이가 될 '24두레'를 만들었습니다. ⓒ 임윤수


노후에 지팡이가 될 '24두레'를 시작하며...

초동(樵童)의 순진무구하기만 했던 초등학교 재학시절에서 어언 3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중년의 가장으로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성실한 사회인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기에 가끔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향수처럼 밀려온다.

@BRI@살다보니 어느덧 50 나이가 멀지 않았고, 해 놓은 건 없는데 할일만 태산 같다. 언젠가는 선산으로 모셔야 할 부모님이 계시고, 머지않아 시집장가를 보내야 할 자식들도 있다.

떵떵거릴 만큼 커다란 부자라면, 나는 새도 떨어트릴만한 권력가라면 애사나 혼사쯤 별것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다. 돈과 아랫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설사 부자이고 권력가라 해도 그렇게 살 수만은 없는 게 인간사다.

살다보면 현실적으로 체면이라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다른 형제나 가족들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은 수두룩한데, 자신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은 겨우 손으로 꼽을 정도이거나 거의 없다면 쑥스럽기도 하고 자신 스스로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다.

그러기에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십시일반, 동고동락 뭐 그런 고상하고 거창한 말들을 들먹이지 않아도 힘들 때 서로 돕고, 기쁠 때 서로 축하할 수 있다면 힘들고 외로운 삶에 여정이 조금은 괜찮아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에, 현실을 직시하며 중년으로서의 고독감과 가장으로서의 중압감을 지혜롭게 함께 나누고, 우리 모두의 후세들에게 풍요롭고 정의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터전에 주춧돌을 마련하고자 한다. 나아가 우리들이 공통분모처럼 가슴에 묻고 있는 고향 발전에 일익을 도모하기 위해 외사초등학교 제24회 동창생들이 동창회를 바탕으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24두레'를 구성한다.


초등학교 동창회를 지팡이 같은 '두레'로

지난 모임에서 개정한 초등학교 동창회칙 취지문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하여 선후배들이 부러워할 만큼 무탈하게 운영되던 초등학교동창회를 '계' 성격이 강조된 '24두레'로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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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나면 땔감을 하기 위해 지개를 져야 했던 60여명의 코흘리개 졸업생들이 이젠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 임윤수

은빛 노후를 떠들썩하게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만은 없는 게 노후며 가장이나 부모로서의 역할입니다. 피해 갈 수 없는 노후며 역할이기에 함께 준비하고 더불어 나누고자, 어렸을 때 뒷동산에 올라가 소꿉놀이를 하듯 갈퀴나무를 하던 초동의 친구들이 지팡이 하나씩을 마련하고, 서로에게 지팡이 노릇을 한다는 마음을 모은 것입니다.

'늙으면 지팡이 하나가 열 효자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 티격태격 싸우며 자랐고, 알게 모르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동창들이기에 점차 다가오는 늘그막한 그 시절에 서로에게 지팡이가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도 동창회칙이 있었지만 내용들이 너무 형식적이며 두루뭉술했습니다. 동창중 누군가가 애경사를 당하였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일을 당하였을 때는 연락을 하고, 누가 일을 당하였을 때는 연락을 빠트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이번에 그 기준을 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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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며 꼿꼿했던 허리만 구부러지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역할과 도리에 마음조차도 구부정해집니다. ⓒ 임윤수

동창이라면 누구에게든 열려있지만 회원으로 가입을 하여 다른 친구가 애경사를 당했을 때 동창으로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어른이 되었으니 품앗이를 하듯 자신이 한 행동만큼 대접받고 대우받아야 한다는 현실에 합의한 것입니다.

동창생이 큰일을 당하면 심정적으로야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응당 찾아가 도와주고 축하해 줘야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평소엔 아무런 연락이 없던 동창, 동창회에 얼굴 한 번 보이지 않던 친구가 무슨 일을 당했다고 느닷없이 연락을 해오면 얄밉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도 여간 성가시거나 곤란한 게 아닙니다.

친구들에게 연락을 한답시고 전화통화를 하면서 동창의 얌체 같은 행동을 힐난하거나, 이기주의자나 기회주의자로 몰아가며 도와주지 않음을 당연시하거나 정당화시키려는 상황도 벌어지기 일쑤입니다. 동창이고, 고향친구라고 하며 너무 야박한 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연락을 받았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을 만큼 소원해져 있거나, 못들은 척 외면하자니 마음 한구석이 찝찝해지는 경우가 나이를 먹으며 생기기에 동창들 스스로가 지팡이 노릇을 하고, 필요할 때 지팡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상부상조를 회칙에 담았습니다.

회비는 계좌자동이체로만 가능

누구나 동창회도 있고 계모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모임이나 단체를 원활하게 운영해 나가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뒷받침은 전제되어야 합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계나 동창회의 경제적 뒷받침은 결국 회원들이 납부하는 회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래서 '24두레'에서는 실현 가능하면서도 적극적인 그런 방법으로 회비 갹출을 모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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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지팡이 하나가 열 효자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 마음을 의지 할 수 있는 고향친구들과 가까이 한다는 건 마음의 지팡이가 될 것입니다. ⓒ 임윤수

월 회비는 매달 1만 원으로 결정했습니다. 매달 1만원이라는 회비가 입장에 따라서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버거울 만큼 큰돈도 아닐 겁니다. 버거울 정도가 아니라면 회비를 내고 안냄은 의지와 성의 그리고 관심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바쁜 세상을 살다보면 다달이 납부하기로 한 동창회비쯤 깜빡하고 잊어버리거나, 생각이 나더라도 귀찮다는 마음에 다음으로 미뤄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렇게 깜빡 잊거나 뒤로 미루는 일이 한두 번 누적되다 보면 대수롭지 않던 회비가 목돈으로 커지게 되니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회원의 자격에 '동창 중 회비납부를 계좌자동이체로 연결해 놓은 자'로 정의했습니다. 자동이체를 신청하려면 한번정도는 금융기관을 찾아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어야하지만, 그 한 번의 수고스러움이 회비가 밀려 목돈의 늪이 되거나, 회원자격을 정지 또는 박탈시키는 올무가 되는 것을 미리 막아 줄 수 있기에 개개인에게 최소한의 성의이며 역할로 요구한 것입니다.

엄마 초등학교 동창들이, 막내 사위 고향친구들이....

휴대폰 없이 신선처럼 생활하는 친구들에겐 별도의 방법이나 수단으로 연락을 취해야겠지만, 모든 연락사항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기에 바뀌거나 변경되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동창회 총무가 알게 하는 것도 개개인의 책임으로 규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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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는 강물이 흐르고 뒤쪽으로는 산그늘이 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어느덧 30여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비록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들은 아니지만 공통분모처럼 외사초등학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고향친구들의 모임입니다. ⓒ 임윤수

누구에게나 역할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책임이 부과되지만 정말 서로에게 편안한 지팡이 같은 모임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가 마음만 내면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세부적인 사항까지 세세히 회칙에 담았습니다.

하다못해 조화나 화환을 보낼 때도 보는 이들이 알 리가 없는 단체명을 쓰는 게 아니라 '엄마(아빠)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막내사위(며느리)의 고향친구들이...'로 씀으로써 엄마나 아빠 또는 막내사위나 며느리가 고향친구들과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람임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연락이 닿는 동창들 중 과반은 이미 계좌자동이체를 신청하였다는 연락이 있었으니 처음으로 회비가 입금되는 25일 쯤엔 훨씬 많은 동창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전체 졸업생 60여명이 다 함께했으면 좋겠지만 40여명 정도만 모여도 다가오는 노후가 외롭거나 서글프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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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는 새치라고 박박 우기지만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지는 친구들도 있으니 이쯤에서 노후를 준비하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이런 동창회 어떻습니까. ⓒ 임윤수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하며 놀던 고향친구들이 이젠 더불어 살아나가는데 서로를 보듬어 주거나 지탱해 주는 지팡이가 되고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열 자식보다 낫다는 마음의 지팡이가 40여 개쯤 마련될 거라고 생각하니 은빛 노후는 아닐지라도 외롭고 까마득한 노후도 아닐 거란 안도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개인적인 노후대책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지팡이처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이런 노후대책용 동창회는 어떻습니까?

덧붙이는 글 | 초동, 지개를 지고 나무를 하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시골아이들, 한반으로 졸업을 할 만큼 작은 시골초등학교 동창들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초동, 지개를 지고 나무를 하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시골아이들, 한반으로 졸업을 할 만큼 작은 시골초등학교 동창들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두레 #지팡이 #동창 #외사초등학교 #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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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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