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 살 된 박종철 열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부활하다

[현장]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식

등록 2007.01.14 18:56수정 2007.07.0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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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박종철 열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번엔 87년 당시와 같은 죽음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박 열사의 모습이 담긴 현수막이 내던진 '부활'의 그림자였다. 박 열사를 숨지게 한 이곳이 그를 애도하는 공간으로 20년만에 탈바꿈했다.

'박종철 열사 20주년 추모식 및 6월민주항쟁 20년사업 선포식'이 14일 오후 서울 남영동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6월민주항쟁20주년사업추진위원회(공동대표 김병오외 7명) 주최로 열렸다.

박 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재학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다 10시간에 걸친 경찰의 물고문 끝에 숨졌다. 그러나 그의 희생으로 촉발된 연이은 항쟁은 독재정권을 쓰러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거짓 사인을 발표해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이날 행사엔 박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물결이 대공분실 앞마당을 가득 메웠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78)씨를 비롯해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 함세웅 신부, 당시 사건을 맨처음 보도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 고문치사 사건담당 검사였던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등 정치권, 종교계, 시민단체 각계 인사들과 일반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본관 앞마당에서 추모식을 연 뒤, 박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진 509호에서 헌화식을 가졌다. 이어 7층 세미나실에서 6월민주항쟁 20년사업 선포식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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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14일 오후 서울 남영동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옛 대공분실)에서 열린 고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식에서 고인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아들의 대형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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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살인의 현장 20년전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 도중 사망 509호실에는 고문에 사용된 욕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민주화의 희생자 아닌, 주인공으로 거듭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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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이 자행된 조사실이 위치한 5층에는 다른 곳과 달리 작은 창문이 설치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행사 전, 남영동 대공분실 7층 건물 대부분은 까만 천막으로 덮여 있었다. 추모식이 시작되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며 까만 천막 아래로 박종철 열사의 환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얼굴 옆에는 '그 눈동자 별빛 속에 빛나네'란 글귀가 쓰여 있었다.

이어 박 열사를 위한 추모시가 낭독되는 가운데 묵념의 시간이 진행됐다. 묵념이 끝난 뒤 박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흐르는 콧물을 닦아내야 했다.

민족민주열사 희생자추모 단체연대회의 박중기 의장은 '박종철 열사 20주기에 부쳐'라는 제목의 추모사를 힘찬 목소리로 읽어 나갔다.

"박종철 동지! 나는 당신 앞에 오늘 추도나 추모하러 온 것이 아니다. 사죄하러 왔다. 20년 전 오늘 우주의 무게보다 더 크다는 한 인간의 생명을 '탁 치니, 억 하더라'는 거짓과 역대 인간 도살자들에 의해 희생된 당신의 죽음으로 27년 철옹성만 같던 군부독재의 아성이 무너지고 마침내 6·10 항쟁으로 군정의 종말을 고하게 했다."

박 의장은 이어 "이 땅의 민중들이 주인이 되어 참민주가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86년 박 열사의 편지 구절을 소개한 뒤 "그는 민중의 참민주를 위해서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정권의 고문에 싸웠다"고 박 열사를 추모했다.

이해인 수녀는 자작 추모시 '기도편지-고 박종철님 20주기에'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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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가 박종철 열사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중략) 몸은 죽었지만 정신과 혼은 살아있는 그대
살아있으면서도 자주 죽어있는 우리를
겨울바람처럼 흔들어 깨우며
맑고 깊은 말을 건네주니 고마워요(중략)"


추모시 낭독 뒤엔 박정기씨가 연단에 섰다. 그는 "그(열사)는 이미 20년 전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 이후 온 민중의 함성이 안방, 거리 할 것 없이 노도와 같이 일어나 하나의 깃발이 됐다"면서 "오늘은 그 깃발을 이곳 대공분실에 꽂는 날이다"며 목청을 높였다. 이어 "온 세상이 평온하게 사는, 고문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토로했다.

박 열사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인 김치하(43)씨는 추모식 뒤 인터뷰에서 "아직 6월 항쟁은 완성되지 않았다"면서 "종철이가 '민주화의 희생자'가 아니라 '민주화의 주인공'이 되는 그날까지, 통일을 비롯한 그가 바라던 꿈들이 실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열사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내 거처를 밝히지 않았던 박종운(한나라당 부천 오정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씨는 "모 일간지 1면 보도를 통해 그의 죽음을 접했다, 놀라고 분개했다"고 87년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더 열심히 싸워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그는 "6월 항쟁, 민주화 이후 아직도 미진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국민의 선택을 무시하고 가로막는 반민주주의를 타파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에 휩싸이지 말고 '날마다의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이곳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사라졌지만 이 사회의 대공분실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면서 "산 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죽음으로 말한 것"이라고 박 열사의 희생에 의미를 부여했다.

'509호' 등 일부 '박종철 기념관' 설립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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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를 든 추모객들이 고 박종철 열사가 조사실로 올라갔을 때 사용한 피의자 호송용 철 계단을 이용해서 509호실로 올라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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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를 든 추모객들이 509호실 앞에서 헌화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추모식 뒤 2부 행사에서는 본관 뒤편 피의자 호송용 철 계단을 올라 고문치사 사건의 현장인 509호에서 헌화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박 열사가 올랐던 차디찬 계단의 벽면엔 그의 뜨거웠던 젊은 날의 흔적들이 소개됐다.

"내일은 모두 취직이 되기를 빌면서 헤어졌다"
"공장 활동의 첫걸음이 나를 몹시 불안하게도 했다"
"동시에 의복부터 철저하게 위장을 해야하는"
"불퇴전의 의지로 꿋꿋이 전진할 것 - 84년의 마지막 날에 종철"


계단이 설치된 통로는 반경이 채 1m로 되지 않는 협소한 원통형이었다. 계단은 나선형으로 오를 수 있게 돼 있었다. 외부를 바라볼 수 있는 창문도, 2~4층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도 없이 곧장 5층으로 연결돼 있었다.

박종운씨는 계단을 오르면서 "이런 폐쇄적 구조는 피의자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1~4층에 드나드는 어떤 인물도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욕조와 수도꼭지 등 당시 물고문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4평 남짓한 509호 조사실에서 헌화했다. 20년 전 잔인했던 공권력의 만행을 상기하며 다시는 이같은 비극이 일어나질 않길 기원했다.

7층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6월민주항쟁20주년사업 선포식에서는 ▲국가기념일 제정 ▲민주주의 시민축제 ▲릴레이87투데이 ▲함께하는 유월햇살 ▲디지털 민주세상 ▲한국민주화 운동자료집 제작 ▲한국민주화 운동의 국제화 등 추진위가 진행할 7대 핵심사업이 발표돼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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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 도중 사망한 509호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편, '박종철기념사업회'는 박 열사 사망 20주기를 맞아 509호 조사실 등 남영동 대공분실 일부에 '박종철 기념관'을 짓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기념관에 박씨의 안경, 노트, 메모지, 상장, 목도리 등의 유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76년 대공 수사를 위해 세워졌으나 민주화 인사에 대한 고문 장소로 사용됐다. 경찰은 2005년 대공분실을 사용하던 보안3과를 이전한 뒤 3000평에 이르는 건물을 '인권기념관'(가칭)으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본관 6층만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박종철 #고문 #대공분실 #남영동 #인권보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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