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읽어야 제맛이다!

이택광의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등록 2007.01.21 11:43수정 2007.01.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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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겉표지 ⓒ 아트북스

'마네의 그림 속에 노동계급이 있다!'면 다들 당황할 것이다. 마네, 하면 인상파를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택광은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에서 그런 일이 있다고 말한다. 언급한 것 중 하나를 보자. 그 유명한 마네의 '올랭피아'는 제도권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절 보들레르의 생각처럼 노동계급은 매음녀로 비유됐다. 매음녀가 몸 팔아 먹고 살 듯 노동계급도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 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나름 타당한 근거가 있는 비유인 셈이다. 그런데 마네는 파격적으로 이 매음녀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때까지 그림의 여주인공은 대부분 신화 속의 여신들이었다. 그런데 마네가 매음녀를 그림 속에 넣음으로써 기존의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 고고한 것을 세속적인 것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앞에서 이야기했듯 거센 비판이었지만, 지금 말할 수 있듯이 마네는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화가로 남았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다. 마네가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계급을 의도하고 그린 것일까? 마네에 관해 알려진 것 중에 '노동계급'과 관련된 것은 없다. 그저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는 정도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마네의 그림 속에는 노동계급의 흔적들이 나온다. 마네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속에는 노동계급의 존재가 그려지고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자신도 모르게 암시하기'라면 어떨까? 엉뚱한 해석일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먼저 그 시절을 생각해보자.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에서도 설명하고 있듯이, 당시는 미술계만 격동의 시기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분리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당시 유럽은 산업화의 힘을 얻어 자본주의가 등장했고, 그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본격화됐다. 또한 그 현장에는 마르크스가 있었다. 더불어 파리 코뮌이라는 역사적인 사건도 있었다. 어느 화가도, 그림만 몰두하고 살 수는 없던 시기였다. 당연히 인상파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사실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본다면 어떨까? 인상파의 그림은, 미술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 이상의 파격성을 지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 물론 파리 코뮌이 일어났을 때, 현실의 그들이 거의 대부분 도망치거나 휴양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그림에 노동계급의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기존의 사고에 반발하는 그들이었다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리라.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를 떠올려보자. 이 그림은 붉은 해가 떠오르는 그림이다. 그런데 멀리서 삐죽삐죽한 형상들이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울산 미포만의 새벽 풍경"을 떠올리면 알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부두에 웅장하게 서 있는 크레인, 즉 노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네가 이것까지 생각하고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그 전처럼 '자연'만 그린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림을 그리다보니 '노동'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도 자신도 모르게 암시하는 과정의 하나가 아닐까?

재밌는 사실은 이 이야기들은 물론이고,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에 풍성하게 담긴 그림들 모두는, 알고 봐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그림을 읽는다'고 하던가? 맞는 말이다. 그림을 보는 것에 머문다면, 이것들을 알 수 없다. 알고 읽어야만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모네의 '포플러'라는 그림은 보기만 한다면 단순한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포플러가 '인민의 나무'라는 뜻이 있다는 걸 안다면? 더욱이 모네가 공화국기를 풍경 속에 자주 넣었다는 것을 안다면? 그림을 받아들이는 의미는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드가의 '콩코르드 광장'이라는 그림을 떠올려보자. 인적 드문 광장에 부르주아가 눈에 띄는 그림이다. 그림만 본다면, 그 시절 풍경을 볼 뿐이다. 하지만 광장이라는 것이 우리와 달리 절대 권력과 국가 화합의 상징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드가가 훗날 왕정복고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 그림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림을 보기만 하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그림을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야 할까? 아니다.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와 같은 책으로 시작한다면, 신화를 풀어가는 기분으로 그림을 쳐다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택광이 글을 쉽고 재밌게 쓴 덕분에 그것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신선하면서도 유익한 것을 알려주는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오랜만에 그림 속에서 뛰어놀게 해주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그림으로 읽는 세상 '근대편'

이택광 지음,
아트북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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