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아픔을 먹고 자란다

집 짓는 일만 30년, 잠실 시영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두 노동자를 만나다

등록 2007.01.30 01:50수정 2007.07.0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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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건설현장으로 향하는 노동자들. ⓒ 홍성희

"어이구 춥다, 추워."

23일 새벽 6시, 서울지하철 2호선 성내역. 새벽공기가 싸늘하다. 제기동에서 온 이모(52)씨가 추위에 몸을 떨며 담배를 문다. 이씨의 어깨에는 낡은 등산 가방이 메여 있다. 이씨는 건설현장의 일일 잡부다. 이씨는 매일 첫차를 타고 이곳에 온다.

@BRI@아직 어둠이 짙다. 이씨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줄지어 빠르게 걸어간다. 열의 아홉은 남자. 그것도 대부분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늙수그레한 얼굴에 주름이 많다. 흩날리는 담배 연기가 그들의 뒷모습을 처량하게 감싸준다.

성내역이 있는 신천동 17번지 일대에선 잠실 시영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 중인 아파트가 잿빛의 알몸을 드러내고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현장입구로 가는 길목에는 온통 아파트 광고가 가득했다. '당신의 이름이 됩니다, 삼성 래미안', 광고모델이 지나가는 노동자들을 향해 웃고 있었다. 맞은편 가로등에는 '신천인력, 잡부모집, 016-xxx-xxxx'라고 쓰인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현장 입구로 들어가는 장모(50)씨에게 출근 시간을 물어봤다. 장씨는 "보통 오전 7시까지 출근해서 '함바'(공사장 내부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일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퇴근시간은 겨울철이라 오후 6시라고 했다. 사실 건설현장에는 정해진 퇴근시간이 없다. 작업반장이 '이제 그만할까' 할 때에야 비로소 하루의 작업이 끝난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시대. 입주자들은 다 지어진 멋들어진 아파트만 본다. 아파트에는 건설회사의 이름이나 '래미안', 'e-편한세상' 같은 아파트 브랜드만이 큼지막하게 새겨진다. 아파트는 점점 고급화하고 있지만, 건설노동자들은 여전히 저임금과 잦은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노가다'라고 부른다.

오후 6시 반, 성내역 뒤편의 한 호프집. 건설현장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는 박모(58)씨, 조모(50)씨와 소주를 한 잔 하게 됐다. 그들은 소주 한 병을 금세 비우고 나서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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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조회를 마치고 체조하는 모습. ⓒ 홍성희

광주시민군이던 조씨, 삼청교육대 거쳐 건설 현장으로

집 짓는 일만 30년째 하고 있다는 박씨는 현대건설이 짓고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대건설의 직원은 아니다. 전기설비를 전문으로 하는 하청업체 소속이다. 박씨는 "절반 이상이 협력업체에서 파견 나와 일을 한다"며 "인력시장에서 오는 잡부들은 하루 일하고 해고당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일당은 7만원. 그나마 전기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없는 '잡부'는 일당 5만원. 게다가 인력회사의 '오야지'(소개인)에게 소개비용으로 10%를 떼 주고 나면 일당은 4만원대로 떨어진다. 박씨는 "5년째 임금이 그대로야, 물가는 오르는데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 아니야?" 하고 술잔을 들었다.

박씨와 조씨에게는 퇴직금이 없다. 주5일제도 어림없는 얘기다. 일요일에 쉬면 그만큼 돈을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1주일에 하루 이상의 유급휴가를 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법이 적용되는 현장은 거의 없다. 조씨는 "일요일만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으면 좋겠다"며 "몸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박씨는 조씨를 가리키며 건설현장은 사연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고 했다. 광주가 고향인 조씨는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약했다. 계엄군의 진압과 함께 체포된 조씨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6개월을 살고 형 집행이 정지됐지만, 조씨는 '삼청교육대'로 보내졌다.

"여 봐, 그때 맞아서 생긴 피멍이 아직도 있어. 내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이게 지금 내 몸이 아니여. '노가다'는 몸이 젤로 중요한데, 지금 손이 떨려 일을 못 혀."

조씨가 소매를 걷어 파란 멍울을 보여줬다. 조씨는 몇 년 후 삼청교육대에서 나왔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항시 검문 당했다. 결국 아내와도 이혼해야 했다.

92년, 조씨는 서울로 올라와 장사도 해 보고 밤무대에서 기타도 쳤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건설현장은 아픔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라는 조씨는 떨어져 사는 아들을 생각하며 매일 아침 일터로 나선다.

박씨는 20대에 학원에서 전기기술을 배워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착실하게 돈을 모아 작은 전기설비업체를 세웠지만, IMF가 불어 닥치면서 회사가 망했다. 박씨는 그때부터 다시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박씨는 "심장 수술하고 6개월 만에 현장에 나온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하고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 사는 아파트 다 우리가 지은 건데, 우리가 지어놓으면 돈 있는 저들끼리 싸우는 거 아녀. 우리가 임금을 얼마 받든지 말든지 아무도 신경 안 써."

박씨는 분한 듯했다. 강남 아파트값이 한 달에 몇 억원씩 오르는데, 집 짓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몇 년째 제자리라는 것. 박씨는 "어려운 일을 하면 어려운 만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밤 9시를 넘어서자 박씨의 핸드폰이 연이어 울리기 시작했다. 부인인 듯했다.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곧 "미안합니다"를 반복하는 박씨.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있다는 얘기에 오죽이나 애가 탔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서둘러 지하철로 향했다.

하청의 하청에 또 재하청... 저임금마저 체불돼 고통 받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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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부'는 매일 아침 인력시장에서 팔려간다. ⓒ 홍성희

박씨의 경우와 같이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몇 년째 제자리다. 특히 아파트 공사현장은 임금이 더 박한 편이다.

이승무 서울건설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병폐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존재하는 한, 건설노동자의 임금은 오르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발주사->시공사(하청1)->전문건설업체(하청2)->이사(하청3)->현장소장(하청4)->팀장(하청5)->노동자(원청회사는 토목, 전기, 설비, 철근, 골조 등 건설현장의 각 분야를 하청업체에 맡긴다).

이 위원장은 이 같은 표를 그리고 "각 단계마다 업체에서 이윤을 챙기면 결국 공사비가 부족해지고 부실공사가 되기 쉽다"며 "마지막에 있는 노동자만 저임금으로 고통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실제로 시공능력도 없으면서 하청을 받아 임금을 떼먹는 팀장들이 숱하다"며 "종합건설회사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면 아파트값이 반은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산하 건설연맹(위원장 남궁현)은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하게 된 원인으로 시공참여자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건설교통부에서 시공참여자제도 폐지안을 작년 11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건설노동자들은 노조 조직률이 1%도 채 안 된다"며 "노조를 통해 건설노동자들의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박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씨는 "나 오늘 일 못 나갔다"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미안한 마음에 말문이 막혔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가 지은 집은 그 자리에 있는데, 임금은 어디로 갔나?"
임금체불에 고통 받는 목수 김경수씨의 사연

작년 12월까지 경기도 남양주시 가운지구 아파트 공사장에서 목수로 일했던 김경수(40)씨와 김씨의 동료 200여명은 작년 11월, 12월 두 달치 임금을 아직도 받지 못했다. 체불된 임금이 8억여원에 이른다고 한다.

가운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의 발주사는 주택공사다. 주택공사는 종합건설회사인 (주)양우건설(대표이사 고삼상)에 아파트 1, 2 단지 공사를 하청 줬고, 양우건설은 (주)서원건설(사장 김한규)에 골조분야 재하청을 줬다. 서원건설의 최모 이사가 현장소장에게 3차 하청을 줬고 현장소장이 김씨가 속한 목수팀에 4차 하청을 주면서 긴 하도급 구조가 끝나게 된다.

문제는 작년 12월 서원건설 사장인 김모씨가 양우건설에서 받은 공사대금을 가지고 잠적한 데서 비롯됐다.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상위업체인 양우건설에 임금지불을 요청했다.

그러나 양우건설은 이미 임금을 서원건설 측에 지불했기 때문에 더 이상 책임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양우건설 법무 부서 관계자는 29일 통화에서 "우리도 서원건설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김씨는 답답한 마음에 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를 찾았지만, 발주사인 주택공사 역시 개입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씨는 "우리가 지은 집은 그 자리에 있는데, 임금은 어디에도 없다"며 "나는 실업급여라도 받지만 주변동료들은 그마저도 받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를 비롯한 피해노동자들은 서울건설산업노조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건설노동자 #잡부 #아파트 #인력시장 #건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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