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 20년 지났지만 극락왕생하시오"

20년 전 약식 추모제에서 대형 행사로 발전한 박종철 열사 49재

등록 2007.03.03 19:07수정 2007.03.21 11:41
0
원고료로 응원
a

3일 오후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박종철 열사 49재 20주년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박 열사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천도재와 살풀이 공연 등이 열렸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20년 전 한 젊은이가 이 땅을 떠났습니다. 그의 주위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그가 떠난 20년 후인 오늘 그의 정신과 형체를 다시 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를 만들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78)씨는 300여명의 관중 앞에서 떨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BRI@그는 "불자 여러분과 각 종교계 대표들이 이 자리에서 6월항쟁 20주년 기념행사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며 "앞으로 이 나라 민중이 상생의 힘으로 미래를 여는 데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말하자 관객석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부친은 22살 꽃다운 나이의 아들을 잃었지만, 대신 20년이 지났어도 아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는 수많은 시민을 얻은 셈이다. 행사가 열린 대웅전 앞에는 "박종철 열사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등의 추모사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서 있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지난 1987년 고문 피해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 49재의 20주년을 맞아 추모 행사가 열렸다. 49재란 사람이 죽은지 49일째에 치르는 불교행사로, 이날 추모식은 '6월민주항쟁 20년사업 불교추진위원회'(이하 불교추진위)가 주최했다.

부친 박정기씨의 씩씩한 모습과는 달리 모친 정차순씨는 행사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도 손사래를 치며 "몸이 아파서"라고 말을 줄였다.

죽은 아들을 위한 살풀이가 무대에서 펼쳐지던 중 "잘 가시오"라는 구음이 또렷하게 들리자 정씨는 손수건을 꺼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이날 추모식에는 재의식과 살풀이 등 천도재(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불교의식)가 한 시간 동안 열렸다.

87년 약식 49재, 20년 지나 대형 추모제로

박 열사의 49재는 1987년 3월 3일 같은 장소인 조계사에서 열렸다. 하지만 당시 행사는 "사회 불순세력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는 경찰쪽 주장에 의해 예정된 49재는 원천봉쇄됐고, 대신 모친이 다니던 부산 사리암에서 약식으로 치러졌다.

여익구 불교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조계종 총무원장이 49재를 조계사에서 지내기로 했지만, 애석하게도 조계사 앞마당이 아닌 부산 사리암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며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조계사에 들어오기 위해 애썼지만 경찰 병력이 막고 있었다"고 말했다.

여 대표는 인사말에서 "박 열사는 민주화의 화신이요, 이제는 평화와 번영, 통일의 화신으로 승화됐다"며 "비록 그 분은 살아 돌아오지 못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a

박종철 열사 49재 20년 추모행사에는 박 열사의 부모 박정기씨와 정차순씨가 참석했다. 모친인 정씨는 죽은 아들을 위한 천도재를 보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박종철 열사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

청화 스님(불교추진위 상임고문)은 추모사에서 "박 열사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며 "보다 힘있고, 가열찬 저항이 시작됐고 그의 죽음 위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쓸 수 있었다, 독재가 백기를 들고 무릎을 꿇은 6월 29일이 왔다"고 6·29선언을 언급했다.

6·29선언은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직선제 개헌요구 등을 받아들인 것으로, 그 해 6월 10일부터 전국적으로 학생과 시민들의 대규모 가두집회가 계속되자 정부는 공권력 투입 대신 이들의 요구에 굴복했다. 박 열사의 죽음이 6·29선언을 이끌어낸 셈이다.

청화 스님은 "우리는 지금도 87년 죽음들 위에 민주주의를 쓰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써야 한다"면서 "박 열사와 더불어 모든 민주열사들의 천도를 발원하며 이 나라의 역사가 다시는 후퇴하는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당시 '국민운동본부'를 이끌었던 오충일 목사(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장)도 "최루탄 앞에서 가스를 마시며 힘든 일이 있을 때 박종철 군의 모습을 항상 떠올렸다"며 "생명을 던진 박 열사의 영혼이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박 열사의 혼과 뜻을 유지한다면 상생과 희망의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 1부는 천도재와 추모사 등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이어가다 2부에서는 노래패 꽃다지와 대한불교소년소녀합창단, 가수 안치환씨 등이 무대에 올라 문화제가 열렸다.

한편 이날 추모식에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천정배 의원,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등이 참석했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