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제1호 법률이 도량형법?

당시 법령체계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

등록 2007.03.06 09:48수정 2007.07.0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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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제1호, 원조, 시초, 첫…. 이런 말들은 그 자체로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제 아무리 세상살이에 무던한 사람이라하더라도 이런 수식어가 앞에 붙어있으면 자연스레 한번쯤 눈길을 주고 마는 법이다.

이것과 비슷한 것으로 '최고'라는 말이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빗나간 '1등 지상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많이 닮았을지라도, 이 둘의 속성은 처음부터 다르다. '최고'라는 말의 주인은 하룻밤 사이에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것이지만, '최초'라는 말의 대상물은 아무리 세월이 흐르더라도 고정불변인 것이 기본속성인 까닭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는 이 '최초'라는 말의 대상물이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리는 경우를 자주 구경하게 된다. 우리 나라 최초의 무엇이 누구 또는 무엇이라고 하면 다들 그런가보다 하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그게 아니라는 반박자료가 제기되면 여지없이 그 최초라는 자리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대상물로 넘어가게 되는 일을 우리는 언론매체를 통해 심심찮게 접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만큼 명쾌하지 못한 자료고증을 통해 섣불리 '최초'라거나 '제1호'라거나 하는 주장이 남발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이다. 최초나 최고라는 말에는 그에 따르는 영예도 함께 주어지는 만큼, 엄밀한 사실관계의 확인을 통해 그러한 명칭이 주어져야 함은 물론일 것이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주는 무게

그리고 최근에도 이러한 사례가 하나 있었다. 지난 해 말(2006.12.4일)에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 제320호로 관보고시한 '국가표준근대도량형기'에 관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재청에서는 2006년 11월 8일자로 "근대기(1902-1945) '국가표준 도량형기' 문화재로 등록예고, 대한제국 법률 제1호로 탄생된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그 가운데 이러한 구절이 보인다.

"그러나 과거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도량형이 지역마다 달랐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도량형을 정비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항 이후 근대적인 도량형을 도입하기 위하여 1902년(광무 6년)에 평식원(平式院)이라는 담당 관청을 설립하여 서양식 도량형제(미터법)를 일부 채택하고 1905년 3월 21일(광무 9년)에 이것을 바탕으로 대한제국 최초의 법률 제1호로 도량형법을 정하였다. 이처럼 당시 고종은 법률 제1호로 도량형법을 제정할 정도로 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으나 새로운 도량형이 정착되기까지는 그 후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미돌법(米突法)을 아시나요?"라는 별도의 첨부자료를 통해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당시 사회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에서는 1905년(광무 9년) 3월에 법률 제1호로 도량형법을 정하고 농상공부에서 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 법은 1902년에 발표되었던 도량형법과 내용은 같으나 법률 제1호로 공표할 정도로 도량형 개정에 대하여 당시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아울러 이 도량형기를 직접 관리하고 있는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측에서도 2006년 11월 7일자로 "'근대 도량형기' 문화재 등록된다, 대한제국 법률 제1호 시행의 증거물이 문화재로 인정 받아"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그 내용은 앞서 인용한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와 대동소이하다.

근대적 도량형 제도의 도입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어서 도량형법이 당시 법률 제1호였다는 사실에 기대어 그 의의를 더욱 확대해석하고 있는 부분이 확연히 눈에 띈다. "이처럼 당시 고종은 법률 제1호로 도량형법을 제정할 정도로 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고도 하였고, 보도자료의 제목에도 "대한제국 법률 제1호 시행의 증거물이 문화재로 인정 받아"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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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관보> 1905년 3월 29일자(부록)에 게재된 법률 제1호 도량형법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법률 제1호'라는 표기가 들어 있으나 이것을 일컬어 '대한제국의 법률 제1호'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오해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률 제1호라는 것은 해당연도(즉 1905년)의 법률제정순위가 가장 앞선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로 '도량형법'이 대한제국의 법률 제1호가 맞는 것일까?

<대한제국 관보> 1905년 3월 29일자(부록)에는 도량형법(度量衡法)에 관한 내용이 게재되어 있다. 여기에는 분명히 '법률 제1호'라는 표시가 들어 있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도량형법이 법률 제1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대한제국 시절의 최초 법률로 인식하는 것은 곤란하다. 도량형법에 법률 제1호라는 타이틀이 붙었다고 해서, 그것을 대한제국 최초의 법률로 생각하는 것은 그 당시의 법령체계를 잘못 인식한데서 빚어진 오해이다.

그 당시의 법률체계를 살펴보면, 법률의 순서를 부여하는 방법은 지금처럼 축차적으로 번호가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연도별로 제1호부터 번호를 새로 붙여나가는 형태를 취했다. 이러한 방식은 요즘 각 행정관청에서 관보고시를 할 때에 역대고시내역을 누적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연도로 따로 번호를 붙여나가는 것(예를 들어 문화재청 고시 제2007-1호)과 동일하다.

그러니까 도량형법이 법률 제1호라고 하는 것은 대한제국이 첫 법률로 이것을 제정했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연도, 즉 1905년도에 반포된 법률로서 그 순서가 가장 빠르다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 아닌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출범한 것이 1897년인데 무려 8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법률 제1호가 제정되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돌이켜보면 근대적인 법률체계가 도입된 것은 갑오경장 이후의 일이었다. 아래는 갑오경장 이후 제정반포된 각연도별 법률 제1호 연혁(법률반포일 기준)을 옮겨온 것이다.

개국 504년(1895년) 3월 25일 법률 제1호 재판소구성법(裁判所構成法)
건양 원년(1896년) 1월 18일 법률 제1호, 포사규칙(포肆規則)
건양 2년(1897년) 7월 13일 법률 제1호 우체사항범죄인처단례(郵遞事項犯罪人處斷例)
광무 2년(1898년) 11월 2일 법률 제1호 전당포규칙(典當鋪規則)
광무 3년(1899년) 2월 6일 법률 제1호 전당포규칙중개정건(典當鋪規則中改正件)
광무 4년(1900년) 1월 11일 법률 제1호 적도처단례중개정건(賊盜處斷例中改正件)
광무 5년(1901년) 2월 12일 법률 제1호 육군치죄규정(陸軍治罪規程)
광무 6년(1902년) [해당없음]
광무 7년(1903년) [해당없음]
광무 8년(1904년) 1월 13일 법률 제1호 평리원관제중개정건(平理院官制中改正件)
광무 9년(1905년) 3월 21일 법률 제1호 도량형법(度量衡法)
광무 10년(1906년) 2월 2일 법률 제1호 형법대전중개정건(刑法大典中改正件)
광무 11년(1907년) 6월 27일 법률 제1호 민사형사의 소송에 관한 건(民事刑事의 訴訟에 關한 件)
광무 11년(1907년) 7월 24일 법률 제1호 신문지법(新聞紙法)
융희 2년(1908년) 1월 21일 법률 제1호 삼림법(森林法)
융희 3년(1909년) 2월 4일 법률 제1호 재판소설치법중개정건(裁判所設置法中改正件)
융희 4년(1910년) 3월 12일 법률 제1호 선박법(船舶法)


도량형법이 대한민국 최초 법률이 아닌 이유

위의 목록을 살펴보면, 법률 제1호는 도량형법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최소한 15개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907년의 경우에는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 퇴위가 있었으므로, 법률 제1호가 둘씩이나 존재한다. 보아 하니 자유당 정권 말기에 언론탄압을 위해 동원되었던 '광무 신문지법'이란 것도 1907년도의 법률 제1호였다.

그렇다면 정말로 대한제국 시절의 최초 법률은 무엇일까?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은 어렵다. 1897년에 대조선국이 대한제국으로 전환되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법률체계와 법률번호는 그대로 승계되었으므로 여기에서 구태여 대한제국 부분만 잘라내어 최초의 법률이 무엇인지는 가려내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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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관보> 1904년 1월 21일자에 수록된 법률 제1호 평리원관제중개정건이다. 여길 보면 이 법률 역시 '제1호'는 표기가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법률 내용 가운데 '법률 제3호'라고만 하지않고 '광무3년 법률 제3호'라고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음도 엿볼 수 있다. 거의 해마다 법률 제1호와 제2호 등이 있었던 탓에 이를 따로 구분하여 부르는 것이 필요했던 탓이다.

그럼, 각각의 법률 제1호가 중복되어 등장하는 경우에 이는 어떻게 구분하여 불렀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명쾌하다. 그다지 법률의 종류도 많지 않았으므로 특별하게 연도를 표시하지 않고 그냥 법률 제몇호 무엇무엇이라고 해도 무방했고, 특별하게 구분이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연도(연호 포함)를 법률번호 앞에 붙이는 방식으로 혼동을 피했다. 예를 들어, 1895년의 법률 제1호 재판소구성법은 "개국 504년 법률 제1호"라고 하면 되고, 1905년의 법률 제1호 도량형법은 "광무 9년 법률 제1호"라고 표시하면 되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대한제국 시절에는 '거의 해마다' 법률 제1호가 있었다. 그러므로 설령 근대적 도량형 제도의 도입과 정착이 매우 중요한 정책과제였다고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도량형법을 법률 제1호로 삼을 만큼 고종황제까지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지나친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요컨대 도량형법은 결코 대한제국의 최초 법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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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와 문화재관련 자료의 발굴에 심취하여 왔던 바 이제는 이를 단순히 취미생활로만 삼아 머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알리고 싶은 얘기, 알려야 할 자료들이 자꾸자꾸 생겨납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얘기이고 그것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 세상에 거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에 관한 얘기들을 찾아내고 다듬고 엮어 독자들을 만나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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