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변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정욱식 칼럼] 갑작스런 '변신'과 MD, 그리고 동맹

등록 2007.03.10 09:26수정 2007.07.0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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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1일 미국 하원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 뒤로 대표적인 네오콘 세력인 체니 부통령(왼쪽)이 서 있다. ⓒ 백악관 홈페이지

9.19 공동성명의 초기 이행 조치에 합의한 2.13 합의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이다. 작년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을 계기로 대북강경파들은 '이제 북한을 무너뜨릴 기회가 왔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전격 수용하고 북한의 핵포기 대가로 관계정상화에 나서기로 함으로써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다. 당황한 네오콘들은 '부시 각하 그러시면 안됩니다'며 만류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는 뒤늦은 자신의 변신에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BRI@부시의 변신에 당황하기는 대북온건파들 역시 만찬가지이다. 2.13 합의가 나오기 전에 필자가 만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부시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포기할 순 없다"는 필자의 '당위적인' 말에는 동의하면서도, 부시의 임기동안에는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이들은 필자에게 "핵보유국 북한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라는 충고도 해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 역시 빗나갔다.

'부시 쇼크'는 태평양 건너 한국과 일본의 대북강경파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이 미국도 믿을 나라가 못된다며 이제 우리의 살길을 스스로 도모해야 한다며 반미(?)의 기치를 높게 들고 나선 것은 한국의 냉전수구세력의 당혹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미동맹을 지고지순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은 '그럼 한미동맹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동맹의 미래를 걱정하기에 급급하다.

부시와 찰떡궁합을 이루면서 대북강경책을 통해 톡톡히 재미를 봤던 일본의 아베 정권 역시 부시의 변신에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앞세워 부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다.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동맹 강화의 한길로 나섰던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놓고는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임기 종착점에 다다르고 있는 부시가 업적(legacy)을 중시하고 있는 반면에, 이제 막 총리에 오른 아베는 대북강경책을 정권 유지·강화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의 불일치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부시가 변했다면 그 이유는?

그렇다면 부시는 정말 변한 것일까? 필자는 적어도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본다. 잘 알려진 것처럼 2.13 합의의 모태는 지난 1월 베를린 북미 양자회담에 있다. 그런데 부시는 줄곧 북한과의 직접대화는 클린턴의 방식이라며 이를 거부했었다. 북한의 달러화 위조 및 돈세탁 혐의로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우려 대상으로 지목해 북한에 가한 금융제재도 북한과의 실무회담을 거쳐 해제 수순을 밟고 있다. 이전까지 이 문제는 법집행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며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었다.

또한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의 핵시설 폐쇄 및 불능화 조치에 맞춰 미국도 중유 등 대북경제지원에 참가하기로 했다. "악행을 보상하지 않겠다"던 과거의 태도에 비춰보면 확연한 변화다. 3월 초순 북미관계 정상화 회담을 위해 미국을 찾은 김계관 부상 일행에게 외국 국가원수에 준하는 경호와 의전을 해주었다.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쯤 되면 부시의 변화를 일시적인 제스처로 보기에는 변화의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부시가 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뜻대로 되지 않는 이라크와 중동의 강자로 등장하고 있는 이란, 그리고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힘을 회복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에 힘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가장 커 보인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도 '현상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부시 행정부에게 인식시켜주었을 것이다.

폴 월포위츠, 존 볼튼, 도날드 럼스펠드 등 핵심적인 네오콘들이 부시의 외교 무대에서 퇴장한 것 역시 주효했다. 중간선거에서의 참패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또한 '임기는 끝나 가는데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다'는 조바심도 발동했을 것이다. 1기 때에는 재선이 우선이지만, 2기 때에는 업적(legacy)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미국 대통령의 정책수행 메커니즘이 작동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들은 필자를 포함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내놓은 것들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 더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요인인데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1년, 부시가 대북강경책을 선택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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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MD 시스템. ⓒ Reuters

시계 바늘을 6년 전으로 돌려보자. 당시 부시 행정부가 수교 직전까지 갔던 클린턴 행정부 때의 업적과 김대중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초강경 대북정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이를 되묻는 것은 오늘날 부시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부시 행정부 초기의 관심사는 단연 미사일방어체제(MD)였다. MD를 통해 적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최소화하면서 선제공격 능력을 확보하고 우주를 군사적으로 선점하며, 옛 시절의 라이벌이었던 러시아와 떠오르는 경쟁자인 중국에 대해 확고한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후원세력인 군산복합체에 막대한 이윤도 보장해줄 수 있다.

부시가 '미사일 강대국'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아니라 적대 관계 강화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MD 구축을 위해 북한만큼 좋은 명분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위협론'의 부활은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공동의 위협' 인식을 환기시키면서 부시 행정부가 원하는 형태로 동맹을 재편하는데 유력한 근거가 된다. 이와 같은 '북한위협론'을 앞세운 MD 구축과 동맹 재편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 봉쇄에 있음은 물론이다.

부시가 최근 대북정책을 수정한 데에는 이와 같은 '북한위협론'에 매달릴 이유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6년간 부시 행정부는 북한위협을 근거로 미사일방어체제(MD)를 상당 부분 궤도에 올려놓았다.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를 한국과 일본에 배치했고, 이지스함에 MD 기능을 장착하는 것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알래스카와 미국 본토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는 요격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부시의 외교안보정책에서 MD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었다. 9.11 테러 및 이라크 수렁의 여파 때문이다. MD가 상당부분 진척되었고 그 비중이 줄었다면, MD를 위해 북한위협론에 매달릴 동기 역시 줄어들었다는 가정을 세워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미·미일 동맹 재편도 상당 부분 마무리되었다는 점도 북한위협론의 활용가치가 떨어진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맹 재편을 통해 미국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항구적인 주둔 체제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MD가 '구상' 단계에 있었다면 부시는 결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판단이 우선했다면, 부시는 북한에 대해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했을 것이다. MD와 동맹은 부시를 포함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작년 11월 럼스펠드의 퇴장이 큰 분수령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럼스펠드는 MD 구축과 한미·미일동맹 재편을 통해 중국을 봉쇄함으로써 미국 단일패권주의를 공고히 하려고 했던 인물이다. 그에게 북핵 문제의 해결은 MD 구축이나 동맹 재편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럼스펠드의 퇴장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비롯한 부시 행정부의 실용적인 대북정책 채택의 반대 세력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후임자인 로버트 게이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이라크'이다. 대북정책 결정에 개입할 처지도 아니고, 그럴 동기도 거의 없는 것이다.

MD와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에 주목해야 할 이유

한반도는 분명 역사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북미·북일 관계가 정상화 문턱에 도달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지금까지 참아온 의문을 내놓게 될 것이다.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 마당에 MD와 한미·미일동맹이 왜 존재해야 하냐고….

이러한 질문의 예고편은 이미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 및 미국이 폴란드와 체코에 MD를 배치하는 것에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유럽의 MD는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러시아를 달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바보는 없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동맹체제 및 MD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할 핵심적인 요소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들은 군사 분야를 포함해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자체적으로 핵과 미사일 전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 1월 탄도미사일을 이용해 위성 파괴 실험을 했는데, 이는 미국의 군사위성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MD 체제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또한 올해 국방비도 작년보다 약 18% 늘린다는 방침이다.

미일동맹과 중러 협력관계 사이의 신냉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인정 등 한미동맹 재편을 통해 한국도 미국 주도의 대중 봉쇄 동맹에 한발 걸쳐놓을 위기에 있다.

지난 역사가 잘 보여주듯,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 사이의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그 피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지역이다. 우리가 한반도의 냉전해체 못지않게 동북아 신냉전의 출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 3월 9일자에 기고한 것을 보강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겨레 3월 9일자에 기고한 것을 보강한 것입니다.
#네오콘 #부시 #대북정책 #2.13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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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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