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잉크로 쓰인 신화, 김민기와 '아침이슬'

6월항쟁 20년 축제의 시민합창곡 '아침이슬'에 대하여

등록 2007.03.21 14:02수정 2007.07.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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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20년사업추진위원회'와 <오마이뉴스>는 공동으로 6월항쟁 20년을 맞아 시민들과 함께 부르고 만드는 '함께 불러요 아침이슬' 축제마당을 펼칩니다. 4월과 5월을 거쳐 오는 6월 10일 광장에서 힘차게 울려 퍼질, 시민대합창곡 '아침이슬'의 역사적 의미를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의 원고를 통해 새겨봅니다. <편집자주>
김민기 작사ㆍ작곡의 '아침이슬'! 이 노래가 '역사적'이라고 한다면 그 역사에는 반드시 증언자들이 있을 터. 지난 30여 년의 세월 동안 이 노래를 속 깊이 불러온 모든 사람들이 증언자이겠으나 특별히 다음의 증언만으로도 이 노래의 역사성은 선명하게 입증된다.

장엄한 레퀴엠, 저항의 절정, 새로운 들음의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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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이 수록된 <김민기 1집> 음반은 박정희 시대에 판금 조처당했다가 87년 민주항쟁 직후 복원판으로 다시 발매되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장석주는 이렇게 기억한다. "'아침이슬'은 1975년 당국에 의해 금지곡이 되었다. 다른 금지곡들은 분명한 금지사유가 명시되었지만 이 노래에는 아무런 금지사유가 명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금지될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금지된 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70·80년대에 이 노래만큼 널리 불려지고 사랑받은 노래도 없다. 수많은 군중의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아침이슬'은 무서운 감동과 전율을 동반하는 장엄한 레퀴엠 같았다."

김민기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시인 김지하는 이렇게 증언한다. "그의 노랫말에는 죽음이 배어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들으면 부활의 기쁨이 느껴진다. 밑을 흐르는 세계와 삶에 대한 짙은 사랑과 잃어버린 유년의 고향으로 이끌어주는 듯한 강렬한 종교성은 죽음과 고문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저항이었고 대안이었다. 그 절정이 '아침이슬'이다."

작곡가 이건용의 증언은 김민기와 '아침이슬'의 문화적 지평을 알려준다. "그는 우리나라의 노래 상황을, 그리고 그 상황이 갖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였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들음의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 노래를 만들었다. 그의 노래가 전파됨에 의하여 그의 환경에 동참하는 소집단이 생겼고, 이는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힘과 대립되었다."

'아침이슬'에 관한 발언은 아니지만, 오늘의 김민기가 집중하고 있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는 이렇게 증언한다. "자신과 비슷한 영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드물고 대단한 체험이다. 나는 김민기와 같은 천재가 내 영혼을 받아준 데 대해 너무 행복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그를 벗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은 더더욱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루드비히의 말처럼, 이제 우리 모두가 김민기를 벗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까. 지난 현대사의 굽이굽이에서 불렸던 '아침이슬'이 6월항쟁 20년 축제의 시민적 합창곡으로 울려 퍼질 것을 상상해보니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해 우리 모두가 능동태로 대답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박정희 시대, 혁명적 낭만주의의 가장 드라마틱한 독립전쟁



돌이켜보건대 60년대 박정희의 시대에 이르러 한국 대중음악은 트로트와 스탠더드 팝이라는 주류의 지형도를 확정한다. 이미자와 패티김으로 요약되는 이 두 사단 진영에 긴장을 불어넣은 것은 록과 리듬앤부르스, 사이키델릭으로 무장한 신중현 사단이었다. 그러나 70년대가 개막하면서 거대한 폭풍이 대학가에 불어왔고 그 깃발은 통기타에 바탕을 둔 모던포크였다.

김민기와 양희은. 그리고 '아침이슬'은 이 혁명적 낭만주의의 가장 드라마틱한 독립전쟁이었다. 김민기의 영웅적 비극성을 담지한 텍스트와 단정무비한 통기타 연주는 대중음악이 역사에 개입할 수 있음을 열어놓았고, 양희은의 당당하고 또렷한 발상은 애상의 무의식을 일거에 전복시켰다.

예술에 대한 허위의식과 대중에 대한 아부를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 듯한 어린 대학생의 생목소리는 바로 혁명적 낭만주의로 불타오른 당시 신세대들의 표상으로 추인되었다.

양희은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그가 한국의 대중음악사에 걸쳐 여성 보컬리스트에 부여되었던 저열하기 그지없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분쇄해버린 데 있다. 양희은의 당당하고 또렷한 발성은 대중음악에 있어서 가사의 의미 전달을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범벅된 한국대중음악의 과잉된 습기를 단숨에 제거시켰다. 부탁하건대, 다시 한번 그 무렵의 '아침이슬', 다름 아닌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들어보라.

김민기, 전쟁의 유복자로 태어난 그가 1966년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기타를 손에 잡았을 때,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삼선개헌안을 밀어붙이던 1969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한 그가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라는 뜻)라는 이름의 듀오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나아가 '오적' 필화 사건과 평화시장의 노동자 전태일이 죽음으로 진실을 알리던 1970년의 어느 날 양희은을 만나 그의 음악적 동반자가 되었을 때, 그리하여 이듬해 마침내 그 자신의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72년 봄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 초대되어 노래 부르기를 지도하다 이튿날 새벽 동대문 경찰서로 연행되고 시중의 그의 음반이 전량 압수되었을 때, 이 모든 순간은 1926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와 더불어 열린 한국의 대중음악사가 건강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한 젊은 '도깨비'와 대면하는 자리가 되었다.

김민기와 '아침이슬'의 등장은 애상의 정조로 일관하던 우리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고, 유신을 치밀하게 획책하던 제3공화국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묶음으로써 그와 그의 노래를 영원한 신화로 만들었다.

대중음악의 정치적 무관심주의에 대한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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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의 3집 음반 ⓒ 나의승


이 역사적인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은 노래에 대한 반성적 사유이다. 그의 노래들이 해방 직후의 조선음악가동맹 작곡가들의 노력처럼 명백한 정치적 슬로건과 민족음악 언어의 수립이라는 대의적 명분을 표방한 것은 아니었지만 트로트와 전쟁 이후 범람하기 시작한 미국의 대중음악에 대한, 그리고 우리 대중음악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반격의 예광탄이 되었다.

이 반박의 대상에는 트윈 폴리오로 대표되는, 6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에 일기 시작한 통기타 현상과 양병집ㆍ서유석 등 밥 딜런 류의 비판적 대중음악을 일차적으로 본뜨던 사조까지 포함된다. 이 앨범과 그가 음악적 내용을 제공한 같은 해의 양희은의 데뷔 앨범이 있음으로써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와 남진의 '님과 함께'로 그어지던 한국 대중음악계는 또 하나의 문제의식을 포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앨범은 두 곡('바람과 나'와 '저 부는 바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는 또한 록 음악의 신중현과 함께 본격적인 대중음악가, 곧 자작곡 가수(싱어송라이터)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이 앨범이 발표된 지 16년 뒤인 1987년 민주항쟁 직후에 이 앨범은 비로소 복권되었고 곧 복원반이 나왔다.

김민기의 노래는, 특히 '아침이슬'은 입에서 입으로, 투박한 등사기법으로 복제된 가사 모음들을 통해 요원의 불길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지나갔다. 그것의 원동력은 탄압이 분만한 단순한 반작용 때문이 아니라 그의 노래 자체가 품고 있는 젊은 한국어와 그것의 음악적 울림 때문이다.

그리고 저 1987년 6월 10일, 한국 젊은이들의 이성을 하나로 묶어주고 모든 시민의 정치적 열망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였지만 그 모든 사람들의 뜨거운 심장을 고동치게 한 것은 '애국가'와 '아침이슬'이었다. '애국가'의 장엄함과 '아침이슬'의 영웅적인 비극성은 일체감이라는 강력한 주술을 수행하며 한국 현대사의 새 장을 기술하는 붉은 잉크가 되었다.

#김민기 #아침이슬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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