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사랑했던 6월의 그 거리

[나의 6월 이야기] 비루한 하루하루에도, 짝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등록 2007.03.26 11:46수정 2007.07.0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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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당시 모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나에게 6월은 짝사랑이다. 떨리는 눈길로 맴돌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한 채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청춘의 질풍노도 시기를 꿰뚫고 지나간 '민주'는 그렇게 언저리 짝사랑으로 나에게 남았다.

처음엔 사랑인 줄도 몰랐던 그 향기는, 암울했던 79년 재수생 시절에 다가왔다. 그때 나는 연일 계속되던 데모와 온 도시를 채워가던 최루탄 연기를 외면한 채 도서관에만 파묻혀있는 것이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억울했다.

침울하게 칼을 갈며 대학이란 문을 향해 달리던 10월의 어느 날, 아마 15일경이었으리라. '민주세상, 독재 타도를 위해 거리로 나가자. 언저리에서 분위기만 보고 스스로를 달래자.'

짝사랑은 그렇게 다가왔다.

맴돌다가 끝난 사랑, 그래도 마음 속에 있다

그날, 나는 나도 모르게 언저리를 떠나 한가운데서 세상의 한 젊은이가 되어 거리를 달렸다. 전경에게 쫓기고 외치며 달렸다. 그리고 도서관 마칠 시간에 최루탄에 젖은 온 몸을 툭툭 털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도시는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부산을 자랑스럽게 만든 10·16이었다. 머릿속 가득한 흥분에 가슴 두근거리며 조심조심 언저리 투쟁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나도 몰래 달렸다.

온 도시에 위수령이 내리고 서슬퍼런 군인들이 밀어 닥치자 소심한 재수생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언지 용암같은 불길을 가둔 채. 그리고 대학을 갔다. 그리고 '서울의 봄'.

'민주'의 향기로 캠퍼스를 채워가던 '80학번'의 시작은 어리둥절함 그 자체였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자유와 방종, 무절제, 시도 때도 없이 캠퍼스를 질주하던 데모의 물결, 그 속의 당당함, 오만, 독선, 균형을 잃은 우쭐함, 그 우쭐함을 포장해줄 언더서클과 동아리 생활…. 하루하루가 그렇게 자유롭고 소중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깨춤 추는 부끄러운 자화상이 빛바랜 채 남아 있다.



그렇게 흔들리며 나의 학창시절은 지나갔다. 어렴풋이 '민주'의 언저리에서 '민주'의 냄새를 즐기며 학창시절은 건방지게 끝났다. 나는 세상을 내려다본다는 건방진 착각에 빠진 채 차가운 현실에 내동이쳐졌다. 첫 직장, 첫 사회생활, 만족하지 못하던 내 자신의 초라함까지…. 87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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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마음만 살짝 보태는 거야.' 나는 최루탄 연기를 맡으러 몰래 거리로 나갔다." 6월 항쟁 당시 '넥타이부대'의 모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종철과도 거리를 두자, '종철아 잘 가그래이'하던 그의 아버지와도 거리를 두자. 4·13 호헌발표를 들으면서도 '참, 아직도 정이 안가는 대머리야' 애써 외면하며 세상을 살았다.

그래도 세상의 외침에 한쪽 귀를 열어둔 채 마음으로만 거리를 달렸다. 내가 근무하던 을지로에서 소리없는 종소리가 마음 속에 울리기 시작했다. '제도권 언론'이라지만 끊임없이 행간을 이해하려 애쓰려 신문을 읽었다. 저녁 술자리에서는 세상의 온갖 일들이 안주가 됐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민주'는 이제 점점 짙은 향기가 되었다.

'그래, 마음만 살짝 보태는 거야.' 나는 최루탄 연기를 맡으러 몰래 거리로 나갔다. 부끄러운 마음을 숨긴 채 명동성당에 갇힌 그들을 보러 이 골목 저 골목을 배회했고, 전경 너머 마음의 박수를 보내며 발끝을 돋우었다. 지리를 몰라 근처의 조계사도 못 찾고 온 종로 거리를 골목골목 누비다 지쳐 돌아온 날도 있었다.

그리고 이한열이 죽었다. 장례행렬을 만나러 시청 앞으로 나갔다. 터질 듯 가득 메운 인파에 묻혀, 어느 지하철역 입구에서 발 돋우고 마음을 담아 박수를 쳤다. 뜨겁게 치고 또 쳤다.

그래도 우리,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

세상은 바뀌었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길을 찾아 가고 또 갔다.

그래, 그 짝사랑의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잊혀졌다 싶으면 다시 살아나 고개를 내밀곤 했다. 애써 외면한 채 세상에 묻혀가야 한다고 밀어버리고 살았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부끄럽게, 비겁하게 살지는 말자' 몰래 다짐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보낸 20년, 지금 그 20년은 잊혀져 간다. 아니, 미워져 간다. 소수의 사람들이 민주화의 열매를 자기들만의 업적인 양 내세우다가 외면당하는 현실을 아니까.

그래도 우리는 민주의 공기, 민주의 향기에 몸을 맡긴 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숨쉬면 산다. 우리는 더 팍팍해지는 현실이 밀려와도 넘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조금 더 당당하게 살아간다. 당당해지려 살아간다. 언저리 짝사랑이 심어준 능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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