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큼 땅만큼 멋진 아버지들

[아줌마, TV를 말하다 ⑦] KBS 일일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

등록 2007.03.26 17:41수정 2007.03.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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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일일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 ⓒ KBS

KBS 1TV 일일연속극 <하늘만큼 땅만큼>이 주간시청률 27.9%, 일일 시청률 29.5%(2월 22일, TNS 집계)를 기록하며 화제의 인기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주간 19.0%, 일간 22.5%)을 훌쩍 뛰어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방송 초만 해도 전작 <열아홉 순정>과 같은 성공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게 아줌마들의 일반적인 평이었다. 낳은 정 기른 정, 부자며느리와 가난한 사위, 신세대 며느리와 구식 시어머니 등 소재와 스토리가 그 나물에 그 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에도 불구 <하늘만큼 땅만큼>은 방송 두 달여 만에 장년과 노년은 물론, 청년층까지 고른 팬층을 확보하며 드라마의 지존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가면서 드라마 마니아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세 명의 아버지 즉, 은주 아버지 윤재두(정동환), 무영이 아버지 김태식(정한용), 지수 아버지 석종훈(홍요섭)에 대한 인기투표도 한창이다.

"나는 젠틀하고 지적인 은주아버지가 좋더라."
"지수아버지는? 홀아비가 저 정도면 정말 처녀들도 연애하고 싶어 질거야."
"뭐니 뭐니 해도 무영이 아버지가 최고야. 착하고 푸근하고 겸손한 사람이잖아. 빚도 지고 능력도 없지만 아내나 자식들에게는 가장 인정받고 존경받는 가장이잖아."
"그런데 그런 아버지나 남편들이 있긴 할까? 있으니까 연속극에 나오는 거겠지?"
"난 연속극에서 버럭 거리는 남편들을 안 보니까 좋더라. 내 남편 버럭 거리는 것도 지겨운데 연속극에서까지 그러는 걸 보면 욕이 절로 나온다니까."


<하늘만큼 땅만큼>은 무영(박해진), 지수(한효주), 은주(강정화) 세 가족의 사는 모습을 통해 행복한 가족의 조건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드라마다.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사랑과 신뢰로 양자를 입양하는 무영이 가족, 남부러울 것 없는 지위와 경제력을 가졌지만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이 상실된 은주 가족, 재혼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극복하게 되는 지수 가족 등. 이혼, 가출, 재혼 등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가족들이기에 뒤에서 보이지 않게 중심을 잡아가는 든든한 아버지들에게 아줌마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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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무영이 아버지 김태식(정한용), 은주 아버지 윤재두(정동환), 지수 아버지 석종훈(홍요섭) ⓒ KBS

이혼을 결심한 아들에게 호통을 치기는커녕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이라며 아들과 함께 눈물 흘려주는 무영이 아버지. 딸이 고민하고 있는 이성친구 문제에 대해 아버지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남자로, 인간으로 딸의 아픔과 어려움을 이해하려는 지수 아버지. 강하고 완벽한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딸들을 위해 기꺼이 조정자의 역할을 담당해주는 은주 아버지까지….

이렇게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들만 있다면 엄마들의 자식 걱정도 반으로 줄지 않을까?

15년 전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캐릭터는 다소의 과장이 있긴 했지만 그 시대 가장의 모습을 대변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랑이 뭐길래>의 인기비결 중 하나는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던 가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가부장적 권위에 눌려 살던 여성들에게는 아내와 며느리에 의해 조금씩 권위를 내려놓고 변화해 가는 대발이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큰 재미이며 위안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대발이 아버지' 이후 15년. 드라마 속 아버지의 모습은 얼마나 변화했을까?

MBC 주말 드라마 <문희>에서는 아직도 남자와 여자를 차별,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곁에서 식사 수발까지 들게 하는 가부장적 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야동 순재'는 아내는 물론 손자, 아들, 며느리에게까지 격이 없이 지나치게 장난을 하는 등 위엄이나 권위라고는 전혀 없는 장난스러운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때로 드라마에서 보이는 권위를 내려놓은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일부 남성 시청자들은 날로 드세지는 여성들의 입김을 의식한 나머지 인위적으로 남성상의 약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상하고 친절한 아버지는 시대를 막론하고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시대는 가고 민주적이며 가정적인 아버지의 시대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을 대표할만한 캐릭터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얼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전원일기>의 '김회장',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 드라마 속 아버지는 많지만 정작 모델이 될만한 아버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하늘만큼 땅만큼>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점이다. 기준이 되거나 모델이 될만한 바람직한 아버지상을 찾기 힘든 지금 각기 다른 세 가정의 아버지를 등장시켜 닮고 싶은 아버지, 배우고 싶은 아버지, 바람직한 아버지의 모습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방송 횟수가 늘어가며 드라마 속 아버지들에 대한 아줌마들의 인기투표 열기도 점점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하나같이 멋지고 따뜻하며 자상하고 착한 아버지.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기왕에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면 아무 생각 없이 틀어 놓은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에 넋을 놓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즐길 준비를 해보자. <하늘만큼 땅만큼>을 보면서 좋아하는 아버지 캐릭터의 점수를 매겨 순위놀이를 해 보거나 자신과 가장 어울리는 아버지는 어떤 모습인지 상상해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티뷰기자단 기사

덧붙이는 글 티뷰기자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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