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한 어느 서양인의 '오만과 편견'

[서평] 한 외국인이 쓴 일본문화비판기 <닥쳐라 일본인>

등록 2007.03.27 13:56수정 2007.03.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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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사

'일본'이라는 주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뜨거운 감자임이 틀림없다. 꽤 오래 전 일본사회와 문화를 소재로 한 <일본은 없다>는 서적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후부터 '일본'을 다룬 서적은 그 자체만으로 독자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시쳇말로 우리에게 일본은 그 자체로 상품이 되는 것이다.

<닥쳐라 일본인>이라는 조금은 과격한 이 제목의 책은 그 제목만으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표지 우측에 기재된 부제목 '역사도 모르는 멍청한 민족'과 책 뒤표지에 실린 발문의 제목 '일본인이 가축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아는가'는 과격하다 못해 조금은 충격적이다.

본문을 읽다 보면 충격의 강도는 점점 그 수위를 더해간다. 처음에는 어느 외국인이 바라본 일본문화에 대한 건전한 비평서이겠거니 생각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채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읽다 보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저자는 도대체 이 책을 왜 쓴 것일까? 아니, 그나저나 이 사람은 일본을 왜 이다지도 싫어할까?

저자의 요점은 이렇다.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비판의 소리를 내고 있기에 그 요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한마디로 일본인은 수동적이고 타성적이고 노예근성이 있는 '가축집단'이라는 것이다.

일본인은 수직적인 상하관계를 엄격히 지킨다. 상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신경질을 내거나 잔소리를 하더라도 하급자는 "모두 제 잘못입니다. 반성하겠습니다"라며 무조건 굽신거려야만 한다. 그러다가도 한 시간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함께 술집으로 간다고 하니 이와 같은 너무나도 유치한 일본인의 정신구조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일본인의 정신 구조는 소나 돼지 같은 가축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17쪽)

저자는 이러한 일본인의 '가축근성'을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전반적인 곳에 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좋은 대학에 나와 고급공무원에 안주하려는 대학생들, 실무행정이 아닌 전시행정에 목숨 거는 공무원들, 자식교육에 목매는 일본의 주부들, 20대 철부지 문화가 판치는 일본 문화계 등 저자의 쓴소리는 가혹하기만 하다.

과격하다 못해 충격적인 내용과 문체들

물론 이지메 현상이나 역사왜곡과 같은 사회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바로 냉정한 시각과 객관적인 기준의 결여가 그것이다. 한 사회가 다른 한 사회를 비판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마치 건전한 담론 형성과 긍정적인 대안 마련을 위한 비판이 아닌, 오로지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비판하기 위한 비판'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일본에 대해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감정으로 주체할 수 없어서 얼굴이 빨개진 채 외쳐대는 지은이의 흥분된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본문 중에서 저자가 일본인을 가리켜 시종일관 사용하는 '가축', '멍청이', '바보' 등의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언어가 바로 그것이다. 생각이야 저자 개인의 자유라 하지만 그런 언어사용 자체가 글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다. 차라리 개인 블로그나 개인적인 메모에 딱 어울리는 수준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저자의 시각이 매우 왜곡되고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일본을 비판한 뒤에 이어서 미국이나 유럽의 현실과 비교해 놓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여기에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도 포함된 아시아 전체가 해당한다. 물론 선진국의 장점을 비교해서 배우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미국은 이렇지 않다 또는 일본이 우리 미국을 따라잡는 게 가당키냐 하냐는 등의 어투와 어조는 솔직히 유치하고 치졸하다.

저자가 내세우는 미국의 훌륭한 점, 예를 들어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다든지, 과거의 문제를 깨끗이 정리한다든지,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라는 등의 진술과 관련해서도 솔직히 의문스럽다. 미국이 정말 그러한 나라던가? 그것은 이 문제와는 별도로 따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긍정적인 면 무시한 채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일본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줄곧 부정적인 시각만 강요하고 있다. 부정적인 측면만 가지고 있는 사회는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이 가진 긍정적인 면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일본 사회에 긍정적인 면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배제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함께 다루고 이를 토대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정반합의 논리를 저자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자 '밥 해밀턴'은 어떤 사람일까? 읽는 내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저자와의 협의에 따라 약력은 밝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로 대신한 그의 약력이 그의 실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더불어 그가 말한 이 모든 사실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혹 '테러당하는 것을 두려워서인가'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난다.

그렇다고 내가 일본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을 좋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문화비평서가 견지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감정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저자의 왜곡 되고 비뚤어진 시각이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이 책은 굉장히 '위험한 책'이다.

그래도 일본의 그늘진 구석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 읽어보시라. 단, 저자의 흥분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일본 현실 대체적으로 근접"
편집자 김준균 팀장과의 전화인터뷰

사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저자와 인터뷰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지 못해 이 책을 낸 '지상사' 측의 의견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이 책을 기획한 김준균 팀장과의 짧은 인터뷰 내용.

- 책을 내게 된 동기는?
"본인이 일본에 있을 때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다소 지나친 점도 있지만 이 책은 현재 일본의 현실을 꽤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일본'하면 '매우 싫거나, 매우 좋아하는' 부류로 나뉘어있다. 일본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서적으로서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 내용과 표현이 과격하고 편향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물론 그런 측면이 적잖이 있다. 노골적으로 미국우월주의도 드러낸 부분이나 일본인들을 인신공격하는 부분은 유치하고 저속한 면도 있다. 그 점은 인정한다."

- 일본에서 먼저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의외다. 반응은 어땠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은 없었다. 발행한 출판사가 메이저급이 아니어서 홍보가 미미했을 수도 있었다. 출판사 내에서도 이렇다 할 큰 반발은 없었다."

- 지은이의 약력을 밝히지 않았는데?
"그것은 계약 당시 일본의 출판사에서부터 제안한 것이었다." / 안소민

덧붙이는 글 | 닥쳐라 일본인/ 밥 해밀턴 지음, 조정선 옮김/ 도서출판 지상사/ 9800원

덧붙이는 글 닥쳐라 일본인/ 밥 해밀턴 지음, 조정선 옮김/ 도서출판 지상사/ 9800원

닥쳐라 일본인 - 역사도 모르는 멍청한 민족

밥 해밀턴 지음, 조정선 옮김,
지상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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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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