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 '석호필'이 될 수 있을까

[TV리뷰] <히트> 장점, 한국드라마 한계 뛰어넘게 만들어

등록 2007.04.02 14:41수정 2007.04.0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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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히트> ⓒ iMBC

석호필이 왔다갔다.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단 한 편의 드라마로 국내 팬을 사로잡은 웬트워스 밀러라는 배우가 방한했던 것이다. 그의 극중 이름인 스코필드를 한국식으로 바꾼 애칭, '석호필'이 생길 정도니, 그의 인기는 가히 대단하다.

그가 이렇게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매력적인 눈, 부드러운 저음 목소리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완벽한 드라마의 힘 덕분인 듯하다.

최근 들어 국내 시청자들은 케이블 방송과 온라인 매체를 통해서 <프리즌 브레이크>같은 미국 드라마를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미드족'이라고 불리는 미국드라마 마니아까지 생겨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드라마는 국내 타 방송사 드라마와의 전쟁만이 아닌, 세계의 드라마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한 편에 총 10여명의 작가가 투입되고, 제작비는 금액의 자릿수부터 차이 나는 미국드라마와 국내드라마의 이 전쟁은 이미 승자가 정해져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착실하게 공식에 따라 진행하는 지금의 한국드라마로는 이 전쟁에서 더욱 처참하게 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삭제하고 '원인과 결과' 넣은 <히트>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MBC 월화미니시리즈 <히트>는 어떻게 해야 다매체시대에 국내 드라마가 지금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고, 외국 드라마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존 한국 드라마에선 인과라는 것이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우연히'라는 말만 있으면 모든 사건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우연히' 재벌 2세 앞에서 넘어지고, '우연히' 길에서 만나고, '우연히' 불륜을 목격한다는 내용은 시청자를 재핑족(zapping : 리모컨으로 화면을 계속 돌려보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히트>는 그 '우연히'를 삭제하고, 그 자리에 원인과 결과를 넣었다.

차수경(고현정) 경위는 여성이지만 오랫동안 여성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그녀는 형사의 삶, 특히 연쇄살인을 쫓는 일에 열중하는 인생을 택했다. 그녀가 이 삶을 택한 것은 '우연히', '어쩌다보니'가 아니다. 과거에 애인이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뒤, 그 범인을 잡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과거와 차수경 그리고 현재의 사건이라는 3각의 구조가 차수경의 답답한 행동에 '이유'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녀가 연쇄살인에 집착하고 그것이 언론에 흘러가 'HIT(히트)'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도 안돼"라는 말을 하며 리모컨을 건드릴 횟수를 현저히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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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히트>의 한 장면 ⓒ iMBC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드라마에는 이것이 없었기에, 드라마가 판타지라고 불린 것이다. 하지만 <히트>는 이 판타지를 버리기 위해, '우연히'를 삭제했고, 이는 현실감 있는 드라마로 탄생한 것이다.

이야기가 단조롭고 뻔하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보여줄 소재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 이 단점을 감추기 위해서, 여주인공 친척과 남주인공의 친척이 사랑을 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이 얼마나 작은 땅이기에 이것이 가능할까? 드라마를 보면, 대한민국에는 단지 두 가정만 있는 듯하다.

그러나 <히트>에서의 한국은 그렇게 작은 땅이 아니어도 된다. 왜냐하면 충분한 소재를 제공해주는 HIT 구성원이 있기 때문이다.

경위가 되고 싶은 심종금(김정태) 경사, 딸이 가출한 만년 경사 장용화(최일화)와 관련된 얘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구성원이 가진 다양한 이야기 덕분에 꽤 많은 시간을 한 사건이 차지했음에도 지루함이 덜했다.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시청자들은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고, 그것이 <히트>의 장점이 된 것이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뻔하지 않은 드라마, <히트>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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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히트> ⓒ iMBC

미국드라마가 국내 팬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엄청난 규모다. 병원에서의 이야기(그레이 아나토미), 교도소에서의 이야기(프리즌 브레이크), 대통령과 정치이야기(커맨더 인 치프, 24) 등 그동안 우리가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큰 규모의 이야기가 미국드라마에는 있었다.

<히트>도 이런 규모에서 뒤지지 않는다. 우선 경찰청과 검찰청 내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집단 사이의 미세한 경쟁과 대립이 조금씩 비치고 있으며, 경찰청 내부의 모습은 HIT팀이 생기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실제 현장의 규모도 대단하다. 4회 방영분에서는 1회 때의 어설픈 가짜 헬기는 날려버리고, 진짜 헬기가 등장했다. 또 범인의 밀항을 막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실제 선박에서 촬영을 했다. 특히 이 장면을 위해 많은 엑스트라가 투입됐고, 그들과 함께 고현정이 등장하는 장면은 오랜만에 보는 명장면이었다.

MBC 드라마 <주몽>이 엄청난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영당시 허술한 전투신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은 것을 생각할 때, <히트>가 보여주는 규모는 대단한 발전임이 틀림없다. 정말 실감나는 이 장면들은 시청자를 사로잡을 것이다. 기다려온 것일 테니까 말이다.

한국 드라마를 자주 접하는 외국인들이 시한부인생을 사는 주인공들을 보고, '한국 사람들을 약하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드라마는 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미국드라마, 일본드라마로 시청자들이 옮겨가는 것을 당연하게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히트>라는 드라마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국드라마가 가진 여러 가지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많은 박수를 주고 싶다.

<히트>를 보고 있으면, 오랜만에 내용을 예측하기도 하고, 그 규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이런 드라마를 오랫동안 기다렸기에 한 회, 한 회 소중하다. 연쇄살인범을 잡은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기대된다.

이런 기대감, 뻔하지 않는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이 기대감, 우리가 <히트>를 아끼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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