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울엄마>, <거침없이 하이킥>과 달라야 산다

[김종휘의 TV 안과 밖] <최강 울엄마>의 딜레마

등록 2007.04.13 07:40수정 2007.04.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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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울엄마>는 '가족성장드라마'라고 밝히고 있다. ⓒ KBS

TV에는 아직도 '청소년 드라마'가 따로 있다. MBC와 SBS는 그마저도 없앴지만 공영방송 KBS에는 여전히 있다. 알다시피 청소년의 TV 시청 패턴은 개그, 가요, 스포츠, 교양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는다. 드라마로 국한해도 어른들이 보는 모든 것을 골라본다.

청소년의 생활과 문화를 보건대, TV 시청에서 성인과 청소년을 구분하는 것은 인위적이다. 아무리 15세나 19세 등급을 매겨도 볼 청소년은 다 본다. 막을 길이 없다. 휴대폰과 인터넷 등 개인 미디어 시대에 어찌 막겠는가. 요컨대 청소년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인식할 것인가, 이 점이 '청소년 프로그램'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된다.

간단히 짚어보자. 청소년은 누군가의 자녀이다. 소비자이다. 네티즌이다. 시민이다. 학생이다. 한 마디로 청소년은 이 모든 관계의 정체성을 넘나든다. 청소년을 겨냥한 TV 드라마는 이제까지 그렇게 다양한 정체성 중에서 '학생'만 상대했다.

KBS의 <고교생 일기>, <학교> 시리즈, <반올림> 시리즈가 전부 '학생 청소년'을 묘사했다. 학생-교실-선생-반 친구가 기본 구도다. 물론 그 안에서도 일정한 진화가 있었다. 반장뿐 아니라 뒷줄 아이들도 주목을 받고 우정뿐 아니라 사랑도 다루었다. 그러나 기억할 점은 '청소년 드라마'의 초점과 소재가 확장되어도 여전히 '학생 청소년'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청소년은 이미 학생의 신분을 넘어, 자녀-소비자-네티즌-시민 등 여러 정체성을 넘나드는데, 게다가 학생 정체성마저 전과 매우 달라졌는데(과거의 학생 정체성이 두터웠다면 지금은 매우 얇아졌다), 오직 '학생 청소년'만을 다루면서 그것이 바로 청소년에 대한 '청소년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억지스러운가.

그럼에도 '청소년 드라마'가 따로 있다면, 그것이 청소년을 위한 어른들의 호의와 배려라고 해도, 정작 청소년 시청자와 이루어질 피드백은, 특히 '학생 청소년'에 초점을 고정하고 있다면, 매우 미약해질 것이다. '청소년 드라마'를 만드는 KBS 제작진의 첫 번째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학생 청소년'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엄마-자녀 관계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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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들의 분투기' <최강 울엄마> ⓒ KBS

이 점에서 <반올림> 시리즈를 만든 PD들이 선보인 <최강 울엄마>는 매우 시사적이다. 지금까지 '청소년 드라마'에는 '학생 청소년'만 등장했는데, <최강 울엄마>에는 엄마가 전면에 등장했다. 엄마라고 다 같은 엄마가 아니고 자녀 역시 다 같을 수가 없다. 그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청소년 드라마'가 엄마-자녀 관계에 주목한 것을 시사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그 엄마가 예전의 엄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과거에 자녀는 엄마의 보호 아래 있다가 곧 독립할 존재였으나, 지금은 자녀가 서른을 넘어서도 아니 더 오랜 시간을 엄마의 품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새로운 생애 주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캥거루형 가족'이 출현하고 '헬리콥더형 부모'가 등장했다. 최근 한 외신은 미국의 주요 대학과 기업이 신입생과 사원을 선발할 때 엄마와 의논하는 현상을 전했다. 대졸자 청년이 자신의 장래와 진로를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는 대신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비판하든 수긍하든 청소년에게 엄마는 이미 친구나 애인보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삶의 파트너가 되어 있다. 이 파트너 엄마는 비유컨대 사령관이고 상담사이며 택시이고 백화점이고 호텔이다. 청소년을 이해하려면 그가 엄마와 맺는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가족심리학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학의 차원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최강 울엄마>는 엄마-자녀의 관계라는 이 시대의 뜨거운 사회학적 키워드를 통해서 '학생 청소년'의 울타리를 벗어난 셈이다. <최강 울엄마>는 기존 '청소년 드라마'가 매였던 컨셉의 한계를 넘었다. 해서 제작진이 '청소년 드라마'라기보다 '가족성장드라마'라고 부르고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들의 분투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면 타당하다.

등장인물과 관계 설정도 많이 진화했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자식과 지지고 볶는 악다구니형 엄마, 온갖 정보 다 갖고 각종 사교육 시키는 매니저형 강남 엄마, 그리고 자신의 연애와 자식 교육을 함께 고민하는 싱글맘까지 꽤 현실적이다.

<최강 울엄마>, <거침없이 하이킥>과 뭐가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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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청소년 드라마'는 '학생 청소년'이란 울타리의 한계에 머물렀다. 사진은 <최강 울엄마>의 한 장면. ⓒ KBS

그런데 KBS의 '청소년 드라마' 제작진은 두 번째 딜레마에 직면한다. '일요일 아침 8시55분' 방영. 일요일 아침에 늦잠 자거나 종교 활동으로 외출할 시간이다. 시청률 나오기 어렵다. 시청률은, 가구당 평균 시청률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방송사와 담당 PD에게는 성적표다. 그들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해서 제작진 바람대로 모처럼 가족 시청이 이루어져도, 일요일 아침 밥상머리에서 온 가족이 보자면, <최강 울엄마>는 해피엔딩이어야 하고 가벼워야 하며 웃겨야 하고 회마다 완결적인 스토리를 갖춰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지점까지 오고나면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시종일관 웃기는 <거침없이 하이킥>에도 청소년 자녀와 엄마가 있다. 심지어 삼촌이 학교 선생이다. 여기서도 '청소년 드라마'의 교훈을 못 찾을 이유는 없다. <최강 울엄마>가 '청소년 드라마'와 '가족성장드라마'로서 다르려면, <거침없이 하이킥>이 시트콤의 특성상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

<최강 울엄마>의 세 유형의 엄마-자녀가 결국 다 해피엔딩이고, 그 과정도 늘 가볍게 웃는 것이면, <거침없이 하이킥>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기 어려워진다. '가족성장드라마'의 변별성과 경쟁력을 갖추려면, 세 유형의 엄마-자녀의 삶이 갖는 서로 다른 고단함과 문제를 성찰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특성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설령 제작진이 <최강 울엄마>의 전략을 수정한다 쳐도, 편성 차원에서 2004년 11월 7일 이전의 <반올림> 방영 시간(토요일 저녁 5시50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일요일 아침 시간대에서 뭘 어찌 할 수 있을까 싶다.

해서 청소년 시청자와 그 엄마들은 <최강 울엄마>라는 진화된 컨셉의 '가족성장드라마'를 만났음에도,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낄법한 결함, 실패, 상처, 두려움 등의 삶의 여러 계기와 차분하게 만나기 어려워진다.

바라건대 <최강 울엄마>를 보는 청소년과 부모들이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야'와 같은 인생의 쌉사름한 의미를 맛보면 좋은데, 딜레마들이 겹겹으로 가로막는다.

해서 KBS의 '청소년 드라마' 제작진이 맞게 되는 마지막 딜레마는 '억울한 혐의'다. 청소년에 대한 어른들의 전형적인 관념을 역시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춘기, 질풍노도, 불완전, 미숙한, 미래의 가능성만 강조되는 판에 박힌 청소년관이 여전하다.

사춘기 때문이 아니라 모순적 욕망을 갖는 인간이라서, 질풍은커녕 맥이 쪽 빠진 무기력한 상태로서, 나름대로 성숙하고 완결적인 존재이자, 무엇보다 지금을 즐기고 힘겨워하는 현재의 주인으로서 청소년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는 '억울한 혐의'다.

<최강 울엄마>는 콘셉트가 뛰어났고 시도도 참신했으나, 참 여러 가지가 안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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