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빼앗긴 내 시간

퇴근할 시간이라며 내일 다시오라는 중국의 한 은행

등록 2007.05.16 14:39수정 2007.05.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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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생활비를 조금씩 모으기로 했습니다. 결혼한 지 2년차, 중국에서 일을 하는 남편 때문에 결혼 후 바로 온 중국은 참 만만해 보였습니다. 돈의 가치가 한국하고는 달라 중국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요.

한국에서 받는 월급은 통장으로 입금이 되었지만 중국에서 받는 생활비는 현금으로 바로 받아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환율로 생각해보면 무시할 수 없는 돈의 가치를 중국에는 몇 백원(한국의 만원 돈 가량) 하니까 우스워 보였던 게 큰 실수였지요.

생각 없이 쓰던 생활비는 매달 지나지 않아 적자가 되었지요. 씀씀이를 줄여야 했습니다. 액수가 크든 작든 절약한 생활비를 은행에 통장을 하나 만들어 저금하기로 결심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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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통장 ⓒ 박병순

결심과 동시에 모은 돈으로 가까운 곳에 가족여행을 가는 작은 꿈도 생겼지요. 그래서 선택된 은행은 바로 집 앞에 가까이 있는 중국의 한 공상은행이었습니다. 외국인이라도 여권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더라고요.

처음엔 통장에 잔고가 쌓이는 재미에 은행 출입 잦아졌습니다. 물론 이 재미에 씀씀이도 많이 줄었지요. 하지만 아들 돌잔치며 여러 지출할 일들이 생기면서 한동안 은행가는 일이 뜸해졌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은행에 갈 일이 생겼었습니다. 마침 옆 동네 한국인 언니가 집에 놀러 와 한참을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그래도 '은행이 오후 5시까지 하니까 시간상 충분하겠다'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도착한 은행 안에는 4∼5명이 먼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VIP 창구 1개, 일반 창구 2개가 있는 크지 않은 은행이지요. 그 중 사람의 수가 더 적은 창구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밖에 나오면 항상 좋아하는 아들 때문에 줄을 서 있어도 왔다 갔다 하였지요.

맨 앞의 사람은 새 통장을 만들어서인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기다린 지 10분이 되어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5분 정도 더 지나서야 맨 앞에 사람의 일이 끝났지요.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 다음이니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 은행직원의 말이 들렸습니다.

"워먼 씨아반, 밍티엔 짜이 라이(우리 퇴근시간입니다. 내일 다시 오세요)."

처음엔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습니다. 긴 시간을 기다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은행 안에서 기다렸었는데 참 황당했었죠. 순간 어안이 벙벙해서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상 오전에만 은행에 왔던 터라 퇴근시간이 되면 이렇게 기다렸던 사람들 상관없이 문을 닫는 줄 전혀 몰랐었습니다. 저의 생각으론 당연히 오후 5시 전에, 은행 문 닫기 전에 들어온 사람들의 일 처리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늘 이런 식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중국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되돌아갔다는 거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웠지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른다'고 했듯이 이곳에 살면 이곳의 방식에 맞혀야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국적은 달라도 은행을 이용하는 한 고객으로서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있어 조심스레 건의를 해서 바뀔 수 있도록 한다면 그 또한 보람있는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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