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손자가 기억하는 해부학자 '폴 브로카'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철학과 과학의 만남

등록 2007.05.16 19:33수정 2007.05.1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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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일은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내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굳이 증명하지 않고도 나임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 아이와 함께 공원을 산책한 나'와 '오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가 '나'라는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 이유는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들, 예컨대 행복하거나 상처가 되는 기억, 가족들이나 지인들에 대한 기억, 혹은 익히고 배운 지식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 나는 현재라는 순간 속에 영원히 갇혀 버릴 것이다. 현재만 존재하는 삶, 보는 이에겐 연옥같은 삶일테고, 겪는 이에겐 기억할 수 없는 찰나의 삶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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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브로카>·필립 모노-브로카·뷔베르 출판사·2005년 ⓒ 최미숙

기억은 오랫동안 철학의 중요한 주제였다. 플라톤 이래 많은 철학자들은 기억을 불멸하는 영혼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 혹은 영혼(정신)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겼다. 철학의 탐구 주제였던 기억이 뇌과학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기까지는 해부학의 공이 크다. 특히 19세기 해부학자들은 "기억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아주 오래된 철학적 물음을 두뇌 해부학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당시 프랑스 해부학자들 가운데 폴 브로카(1824~1880)는 단연 빛나는 이름이다. 외과 의사이면서 해부학자, 신경학자, 생물학자, 인류학자였던 브로카는 잘 알려진대로 뇌의 좌반구 전두엽 아래쪽에 있는 '브로카 영역'을 발견했고, 그것은 두뇌 영역 이론의 출발점이 된다.

오늘날, 두뇌 탐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폴 브로카에 대한 연구서들은 넘쳐나지만, <폴 브로카>라는 책만큼 사적인 기억들로 가득 덮인 책은 없다.

저자는 필립 모노-브로카, 이름만으로도 그의 직업을 짐작할 수 있다. 모노와 브로카는 19세기 이래 프랑스 외과 의학계에서 잊혀질 수 없는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필립 모노-브로카 역시 외과 의사로 현재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의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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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브로카 ⓒ 뷔베르 출판사

가문의 영광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폴 브로카는 필립의 외증조부이다. 필립이 증조부를 직접 알았을 리는 없지만, 어려서부터 그의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은 분명하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는 속담을 실천한 필립은 시골뜨기 폴 브로카가 파리에서 대학을 다니며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들부터, 연구할 때 사용했던 현미경이며, 출판한 책들, 심지어 그의 사망 신고서까지 차곡차곡 챙겨 보관하고 있다.

증손자 필립은 가문의 기억 속에 우뚝 서 있을 폴 브로카의 생애와 연구들을 자랑스럽고 살가운 마음으로 복원해 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카의 업적들은 더욱 실감이 난다. 그의 책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의학사에서 단 몇 줄로 처리될 "브로카 영역"이라는 단어에 살이 붙고 피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9세기의 향연이 시작된다.

두뇌는 다른 신체 기관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여전히 비밀에 쌓여 있다. 두뇌 연구의 초기였던 19세기에는 뇌손상 장애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오늘날에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통해서, 베일에 쌓인 뇌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어쨌든, 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뉘어 있고, 각 부분에는 전두엽, 후두엽, 측두엽, 두정엽이 있다. 전두엽에는 사유 작용이나 개념을 수립하는 기능, 감정을 통제하는 기능이 있다. 후두엽에는 시각을 담당하는 기능이 있으며, 측두엽에는 소리나 언어를 해독하는 기능(베르니케 영역)과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있다. 두정엽은 움직임, 방향 감각, 계산 혹은 재인식을 담당한다. 브로카 영역은 그림에서 보다시피 전두엽 아래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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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 지도 ⓒ 최미숙

1861년은 두뇌 연구의 역사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이다. 이 해에 파리 비세트르 병원의 주임 의사였던 브로카는 실어증 환자 르보흔, 일명 탄(Tan)을 만난다. 탄은 자기 생각을 단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모든 질문에 대해 여러가지 몸짓을 하면서 '탄'이라고 대답했다. 탄이 사망하자 브로카는 그의 뇌를 해부해서, 좌반구의 전두엽 아래 부분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브로카는 같은 해 8월에 '실어증 관찰에 따른 분절 언어 기능의 영역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탄의 임상 부검 결과를 보고하고 좌반구 전두엽 아래 부분의 손상이 실어증의 원인이며, 이 영역이 언어 기능을 담당한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 가설은 두뇌 영역 이론에 힘을 실어 주었고, 뇌의 각 영역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쏟아져 나올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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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세트르 병원. 19세기에는 광인들, 장애자들을 가두는 호스피스였다. ⓒ 최미숙

필립 모노-브로카는 외증조 할아버지의 업적이 당시 의학계와 인류학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또 어떻게 적대시됐는지 자세하게 기술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그에게 브로카 작업의 철학적 함의를 끌어낼 능력은 없어 보인다.

19세기 후반 두뇌 영역 이론을 둘러싼 논쟁은 다층적이었다. 우선, 두뇌 영역 이론은 두뇌 통합 이론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다. 영역 이론이 두뇌의 활동이 영역별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데 비해서, 통합 이론은 두뇌 전체가 특정 기능을 위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이 과학 논쟁은 철학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영역 이론을 주장하는 의사들은 대개 열렬한 물질주의자들이었고, 따라서 정신 활동(현상)은 두뇌 작용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 화두로 붙들고 있던 '정신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심각하게 공격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브로카의 제자였던 신경학자 삐에르 마리는 브로카의 실어증을 둘러싼 논의의 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과거 세대에 속하는 의사들은 대개 영역주의자들이었다. 새로운 세대에도 영역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학생들은 이 이론이 진보적이고, 유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역주의가 번성을 한데는) 또 다른 철학적 이유가 있다. 물질주의와 정신주의 사이의 투쟁이 격렬해졌다. … 순수 정신주의자들이 보기에, 두뇌의 특정 지점에 이러저러한 정신적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영역 이론에는, 인간 혼의 가치를 부정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실어증 문제 고찰'·의학주간·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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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세트르 병원 입구, 18세기 왕가의 문장이 있다. ⓒ 최미숙

정신주의와 물질주의의 대립도 흥미롭지만, 이제 <폴 브로카>라는 책이 내게 흥미로웠던 이유를 적어야 하겠다.

이 책은 사적인 기억들이 역사적(과학사적) 사실들과 만나, 어떻게 그것을 풍성하고 기름지게 만드는지 잘 보여준다. 외증조부의 업적에 가문의 기억을 보태면서, 필립 모노-브로카는 화석처럼 굳어진 사실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다. 저자는 기억을 복원하면서 가문의 정체성을 찾았을 테고, 독자는 복원된 기억을 감상하면서 19세기로 생생한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남김 없이 기억하는 자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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