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속에 꽃핀 예술, 이중섭

김광림이 쓴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을 읽고

등록 2007.05.20 12:09수정 2007.05.2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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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림,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표지 ⓒ 다시

화가 이중섭의 삶을 본다. 바라봄의 끝에서 시대를 잘못 태어난 화가의 아픔을 함께 하게 된다.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에 대해 따뜻한 평가 한번 받지 못한 사람, 그렇기에 가여웠던 사람, 이중섭의 삶은 슬픔이란 이름으로 내게 다가온다.

살아생전 대접 한번 못 받은 이중섭,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중섭의 작품은 그의 죽음이후에 빛이 났다. 그의 천재성, 예술성에 관한 세간의 관심은 그의 죽음 이후 더해갔다. 그가 가난을 토하며 그린 그림들은 한국 미술계의 최고의 가치를 지니며 우뚝 서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저 세상에서 잠시나마 행복했을 이중섭, 하지만 뒤늦게 붉어진 이중섭 작품의 진위 여부 논란으로 그 행복은 다시금 이중섭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이중섭 작품의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하니 어떤 것이 진짜고 가짠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진위논란의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중섭 작품의 실체를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말은 신빙성은 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고 이중섭 작품의 진위는 그저 추측으로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울부짖고 있을 이중섭을 생각하며 이런 세태가 아쉬운 한 시인이 있었다. 그는 시인 김광림이었다. 이중섭과 오래도록 함께 한 지기였기에 전문가들보다도 그의 작품을 더 잘 알고 있고, 그의 삶에 대해 작은 부분까지 알고 있는 사람, 그렇기에 그는 썼다. 화가 이중섭을 생각하며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를,

그의 이중섭 이야기는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해 나갔기에 어떤 미술 전문가나 평론가의 그것보다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광림의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는 진실에 가까운 이중섭의 삶과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중섭은 말수가 거의 없었고 친구에게도 혼자말로 중얼거리듯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런 내성적인 면을 지닌 이중섭이었지만 친구들을 워낙 좋아해서 밤을 새며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중섭의 아틀리에에 한번 찾아들면 좀처럼 물러나기 어려웠다. 그는 만사 제쳐놓고 술판부터 벌였다. 밤이고 낮이고 아랑곳하지 않았다. 친구가 좋아 놓치길 싫어했다. 부인은 그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응대했다. 그가 제일 싫어한 것은 인사의 말이었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겉치레뿐인 사교적인 말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인사치레로 여겼던지 못마땅해 했다.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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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림<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내용 중, ⓒ 다시

여기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다. 그 인간적인 면은 하지만 그의 개인 생활사에서 오는 충격으로 그를 미치게 만든 원인도 된 것 같다. 그는 일본인 아내 마사코(김남덕)와 결혼해 아주 짧은 기간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그 후 아내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녀와 함께 일본으로 떠나고 만다.

혼자 남은 씁쓸함, 고독, 그리고 가난, 결국 이중섭은 정신이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죽음 앞에 화가 이중섭의 인간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느끼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이중섭의 생애는 분명 행복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난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는 행복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의 작품을 가지고 가 놓고 돈을 떼먹지 않았다면, 일본인 아내가 지원해준 돈을 중도에서 떼먹은 사람만 없었더라면 그는 그래도 행복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했고 그는 끊임없이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던 하루는 도움을 받아 일본인 아내가 있는 일본으로 밀항선을 타고 간다. 여기서 그는 또 한번 행복할 수 있었다.그리고 아내를 만나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면 적어도 한 인간으로서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국내로 돌아오고 말았다. 왜였을까? 민족적 의식? 아니면 작가로서의 고뇌? 저자는 이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고민했던 이중섭을 끄집어내준다.

...이런 사정을 지켜보다 못해 구상 시인은 일본에 있는 부인한테 가라며 이중섭 화백을 밀항선에 태워 보냈다. 천만다행한 일이었지만 열흘도 안 되어 되돌아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일 관계가 풀리지 않아 오가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왔느냐?"고 처가에서 묻는 걸 "어째서 왔느냐"로 잘못 알아듣고 괄시받는 것 같아 쉬 돌아섰다는 것이다. -101쪽-

그의 아내 김남덕은 후에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법적인 문제로 이중섭을 돌려보냈다고 말했지만 분명 이중섭에게는 이런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이중섭의 그런 서운한 감정, 하지만 애틋한 마음은 고스란히 그림으로 승화되었다. 비록 찢어지는 가난에 그림 그릴 재료 사기도 쉽지 않았지만 책 표지에, 장판지에, 급기야 담뱃갑 은박지까지 그린 이중섭의 열정은 우리에게 '비운의 천재 화가'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 화가의 작품을, 그 삶을 본 시인 친구가 쓴 책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다.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 화가 이중섭 생각

김광림 지음,
도서출판 다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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