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노 대통령의 '언론자유'도 보장하라

참평포럼 강연, 과도한 비난 자제해야

등록 2007.06.04 14:44수정 2007.06.0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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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작심한 듯 보이는 이 날의 연설은 여러 정치적 노림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그간 공개적으로 꽉 막힌 지지자들과의 소통을 겸한 자리이니 자화자찬의 잔치판이라는 점을 타박할 필요는 없겠다.

물론 대통령의 공개적인 정치연설이 범여권의 대선주자 확립에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열린우리당이 노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내놓은 '과유불급'이란 논평으로 반증된다. 상대인 한나라당 후보들의 경선소식이 여론의 초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범여권 주자가 아닌 현직 대통령이 여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이 지나치게 설치다보면 관중들의 눈에 선수가 제대로 안 보이는 이치와 같다.

그리고 대통령이 특정 대선주자들을 겨냥해 평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숨겨 둔 대선후보를 띄우기 위한 책략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인물들을 하나하나 '찍어내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대통령이 마음에 드는 후보만 남기 때문이다. 굳이 이 사실을 부정하려는 몸짓도 별로 정직한 태도는 아니다.

또 대통령 스스로 '자화자찬'이라고 한 연설내용에 대한 이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가 치적으로 내세운 각종 경제지표들과 정치사회적 진보, 그리고 참평포럼이 새로운 정치의 핵심이라는 등의 발언은 사실 따져볼 필요가 있는 내용들이다. 대통령 스스로도 자화자찬이 다소 민망했던지 "전문가들이 따져든다면 다르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전제를 단 것도 다 꺼림칙한 공적의 이면 때문이다.

선진국 대통령·수상도 자유롭게 선거운동 한다

그런데 이 날의 연설이 다시 한나라당에 의해 정치 쟁점화 될 모양이다. 일부에서는 제2의 탄핵감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대통령의 발언내용이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을 겨냥하고 있으니 속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는 데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흔적이 많다고 생각하니 날선 대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또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제2의 탄핵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지난 번 탄핵으로 재미를 본 대통령이 한나라당 등을 비롯한 반노 세력을 또 다시 노무현프레임에 옭아 넣기 위해 도발적 행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물론 이 분석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도가 지나친 분석이다. 한번 정치적으로 재미를 본 프레임과 전술이 실효성면에서 하책에 불과하다는 점을 모를 청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있을 수 있는 분석과 주장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공학적 해설과 분석은 각 진영의 논객들에게 맡기자. 유능한 논객과 나팔수들은 너무 많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대신 선량한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된 정치적 공방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소비자들이 현명한 구매태도를 가져야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치열한 경쟁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전제로 이번 논란을 보면 여전히 한국민주주의의 미성숙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정치적 중립의무 시비다.

대통령은 정치인이지만 동시에 선거를 관장하는 최고권력자라는 이중적인 성격으로 인해 정치적 중립이란 헌법규정을 적용받고 있다. 이런 헌법전통은 오랜 권위주의 정권질서를 극복하려는 국민의 여망이 반영된 조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비상한다는 지금, 정무직 대통령의 발언을 기계적 중립의 틀에 언제까지 가둬둘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토론은 불가피하다. 이는 단지 선진 민주정치국에서 대통령이나 수상이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례에 비춰 볼 뿐만 아니라 정치와 법치의 성숙한 관계설정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지적했듯이 정치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재임 중에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선거를 관장하지 않는 대통령이라거나 수상이 아닌 것도 아니다. 중립적 선관위가 존재하지만 엄연히 선거를 행정적으로 집행하는 최고권력자다. 그런데 왜 그들은 최고권력자의 정치적 발언과 선거에 영향을 미칠 발언들을 처벌하지 않을까. 심지어 왜 정치쟁점화 시키지도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민주주의의 성숙도와 연결지어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민주정치란 무엇보다도 인간의 기본권으로부터 출발한 정치제도다.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집회와 결사, 언론의 자유는 뭇 백성과 민간단체는 물론 정치인들에게도 폭넓게 주어지는 기본권이다. 특히 정치인의 언론의 자유는 유권자인 국민의 판단을 돕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권장해야 할 덕목이지 배격할 요소는 아니다.

따라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보다 구체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춰 다루는 것이 옳다. 특히 정무직 공무원의 주의주장은 그것이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적으로 판단할 자료이지 처벌의 근거는 아니다. 처벌해야 본다고 하는 것은 정치수준이 낮은 사회의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바라보는 솥뚜껑'일 뿐이다.

정치를 법치로 해결... 정치인들 무능 부끄러워해야

문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다.

대통령이 정치적 발언과 선거에 영향을 미칠 언행을 한다고 해서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관점도 문제다. 하지만 그 언행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행정집행, 즉 선거관리를 특정 정파 특정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편파적으로 실시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았는데도 문제를 삼는 것은 법치의 과도한 개입이다. '과잉법치'가 초래한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걸핏하면 정치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영역으로 끌고 간 한국정치인들의 무능이 정치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법치가 대신하게 되는 과잉법치의 나라를 만들고 있다. 국민의 최고대표성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이 그보다 낮은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법관들에게 정치적 판단을 구하는 아이러니가 일상화된 정치후진국, 그것을 질 낮은 정치인과 정당들이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국민은 현명하다. 특히 정치적으로 현명하다. 어느 누가 불편부당한 짓을 하는지, 혹은 정당한 주의주장을 하는지 다 판단하고 선거 때 심판한다. 정치인들의 언행을 또 다른 정치인이나 세력들이 굳이 사법적으로 그 책임을 묻지 않아도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한다. 지난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을 국민들이 탄핵했다는 점을 되새겨보면 이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번 대통령의 연설의 대상은 일반 유권자가 아니라 열혈 지지자들이다. 생중계를 통해서 하는 연설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한 호소다. 정치인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 앞에서 오버를 하든, 진정성을 보여주든 어디까지나 당사자주의 관점에서 볼 일이다. 대통령의 발언과 지지자들의 반응이 옳든 그르든 관계없이 정치세력의 집회와 언론의 자유는 폭넓게 보장되는 것이 선진민주정치의 요체다.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못하게 틀어막는 헌법이라면, 비록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의 정치적 언론의 자유를 봉쇄하는 헌법이라면 '그 놈의 헌법'이란 발언조차 정당화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필요한 때다.

대통령의 발언과 그의 지지자들의 반응을 모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통령과 반대진영에 서 있는 한나라당과 민노당은 물론 열린우리당의 비노진영까지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의 주장을 존중하는 18세기 자유주의자 볼테르의 근대정신이 아직도 한국 땅에서 구현해야 할 가치라고 한다면 우리가 너무 세상을 뒤처져 사는 것은 아닌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대통령과 자신이 가진 권력을 부당하게 선거에 행사하는 대통령을 구분 못할 정도의 국민수준도 아닌 마당에.

이제는 정치와 법치의 정당한 관계설정이 필요한 때다. 법치보다 앞선 정치의 원리를 확립하고 최고권력자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마저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선진 민주정치문화를 꽃피우는 것이 정치문화개혁의 과제라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송고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송고된 글입니다.
#노무현 #참평포럼 #한나라당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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