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의 배움터, 남한산성을 마주하다

[서평] 김훈의 <남한산성>

등록 2007.06.10 19:09수정 2007.06.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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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처럼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보통 이와 같은 표현은 가수와 같은 연예인에게 쓰이고 있는데, 예전에는 신인작가에게 통용되었다.

그런데 20대도 아닌 기자생활을 오래하여 뒤늦게 소설의 길에 접어든 50대의 늘그막한 사람이 등장했는데 혜성은 혜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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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 학고재

김훈. 이순신 장군을 인간 이순신으로 그려서 화제를 낳았던 김훈을 만나는 순간, 밤을 지새우며 책장을 넘기게 하는 그 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매력

김훈의 소설에는 매력이 느껴진다. 'attraction' 독자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는 말일 게다.

근데,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본인의 마음은 그렇다치고 독자의 마음을 끄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남한산성

4백여 년의 역사의 상처를 보듬으려는 저자의 마음은 나로 하여금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을 김상헌처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그 고민이란 이런 것이다. 치욕 앞에 죽을 것인가 아니면 죽다 살아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새로운 삶을 모색할 것인가

김훈이 그토록 추구하는 이 이항대립적인 삶과 죽음의 인생길 앞에 왕과 왜적 사이에 갇혀 고민하는 이순신처럼 밀려드는 청의 공격 앞에 남한산성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조처럼 인간이라면 마땅히 겪게 되는 선택의 갈림길.

김훈은 그 많은 갈림길의 사람들 중에서도 감히 민족의 성웅 이순신을 감히 민족의 수난 삼전도 치욕의 원흉 인조를 소설로 되살려 우리들과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인조가 남한산성을 떠나서 청의 칸 앞에 당도했을때의 대목은 결코 후손인 우리를 부끄럽게도 치욕스럽게도 만들지 않는다.

민족의 배신자 최명길은 그렇다치고 충신 김상헌은 조카들이 밖에서 절하는 가운데 목 매달고 죽으려다가 느닷없는 생의 손길에 살아남고 만다.

어쩔 수 없음

그렇다. 어쩔 수 없음이다. 왕이라고, 충신이라고 그 상황을 얼만큼 이겨냈겠는가. 이런 황당한 설정 앞에 냉소가 아니라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우리네 삶이 결코 이 황당함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조와 그의 신하들이 남한산성에 갇혀서 백성들과 더불어 배고픔과 절망감에 나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남한산성의 경험은 왕 자신이 스스로 신하와 백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의 우리에게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신하와 백성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인조의 모습이 아닐는지.

책장을 덮고 나서 떠오르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한산성은 우리의 삶 어느 곳에나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이자 배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학고재, 2017


#김훈 #남한산성 #이순신 #매력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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