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돌뱅이가 된 지호, 정선 5일장 가다

[체험! 대한민국] 정선 여행... 정선 5일장, 아라리촌, 레일바이크

등록 2007.06.27 12:16수정 2007.06.2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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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가 (동행인의 허락 하에) 취재에 동행해준 시각장애인의 시점에서 쓴 기사입니다. <기자 주>

친구가 정선 5일장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정선아리랑은 물론 각종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정선이지만, 그 순간 나는 레일바이크를 떠올렸다.

"정선? 나 정선의 레일바이크 꼭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기찻길 위를 달리는 네발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 언젠가 꼭 한번 타보리라 생각했던 터였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생긴 것이다.

5일장이 열리는 날 서울역에서 정선 5일장 관광기차가 출발한다는데, 예약자가 많아서 벌써 정원이 다 찬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의 승용차로 가기로 했다. 아침에 출발해 정선 5일장을 둘러보고 레일바이크를 탄 후 집으로 돌아오는 당일치기 일정의 여행이다.

잊을 수 없는 곤드레밥

정선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채비를 마쳤다. 내 귀에는 벌써부터 정선아리랑이 들려오는 듯했다. 친구를 만나 차에 올랐다. 햇살은 따사롭고 차창으로 흘러드는 바람은 시원했다. 내 친구이자 길동무인 안내견 '호수' 또한 오랜만의 나들이가 기분 좋은 듯 바람을 즐겼다.

4시간 만에 정선에 도착했다. 정선 5일장 주차장이라 표시된 곳에 차를 세우고 시장으로 향했다. 12시를 알리는 시계소리와 함께 내 뱃속에서도 신호가 왔다. 근처 식당에서 먼저 점심을 먹고 시장구경에 나서기로 했다.

장날인지라 식당 역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정선 토속 음식 중 하나인 곤드레밥을 먹기로 했다. 각종 찌개와 탕, 산채비빔밥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흔히 맛볼 수 없는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곤드레 나물을 넣고 지은 밥에 깨가 듬뿍 올려 나왔다. 콩나물밥을 먹을 때처럼 양념간장을 넣고 쓱쓱 비벼 한 입 먹었는데 나물이 질기지 않으면서 적당히 씹혔다. 깨와 들기름이 들어가서인지 훨씬 더 고소하고 맛있었다. 반찬으로 나온 고사리, 콩나물,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물들도 함께 넣어 비벼도 될 것 같았지만, 곤드레 나물밥 고유의 맛을 즐겨보기로 했다.

곤드레의 원래 명칭은 고려엉겅퀴라는데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봄철에 어린순을 따서 나물로 먹는다. 5월이 제철인 셈이다. 가난했던 지난 시절 강원도 사람들이 부족한 끼니를 보충하기 위해 꽁보리밥이나 죽에 넣어 먹었던 나물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곤드레 나물인데,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은 건강 음식으로 소문이 나서 타지역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인 장터 탐험이다. 친구의 팔을 잡고 이동하려 했으나 북적대는 장터의 좁은 길은 한걸음 내딛기도 힘겨웠다. 그래서 친구를 앞서 보내고 호수와 함께 뒤따라가기로 했다. 멈출 줄 모르는 '호수'의 인기.

"엇!"
"어이쿠, 깜짝 놀랐네!"
"와! 저 개 좀 봐."
"안내견이래∼"

판매되고 있는 물건에 눈을 주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와 함께 걷고 있는 호수를 뒤늦게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피하곤 했다. 시장에 나타난 커다란 개가 신기한 모양인지 상인들도 관심을 보이며 감탄을 연발한다. 시골동네이긴 하지만 안내견에 대한 사전지식은 있는 듯 꽤 점잖은 반응들이다. 그러나 예쁘다며 만져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호수가 아마 꽤 귀찮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나물을 산처럼 쌓아놓고 파네. 근데 나물 이름은 모르겠어."
"더덕 한 바구니에 만 원."
"생선가게에 문어도 있어."
"생고사리도 판다."
"모종도 있네. 저건 고추 모종이고, 옆에 것은 뭐지?"

시장골목을 지나며 사이사이 친구가 시장에서 어떤 것들을 파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지푸라기로 짜서 만든 그릇과 화병, 그리고 새집도 만져보았다. 점심으로 먹은 곤드레도 생나물로 팔고 있다기에 한번 만져보고 싶었으나, 주인이 다른 아주머니에게 "자꾸 만지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나니 만져보는 것이 꺼려졌다.

장터에서는 각종 나물에서부터 생선과 건어물, 과일 등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었는데, 더덕과 산나물, 모종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우리 동네 재래시장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동네보다 시장골목이 더 짧고 시장 규모도 작은 것 같았다.

시장 중앙에는 묵사발과 메밀전병, 전 등을 파는 곳도 있었다. 그곳을 지나는 찰나에 친구가 물었다.

"강원도에서는 배춧잎으로 전 부쳐 먹는 거 알아?"

잘 달군 솥뚜껑에 배춧잎을 깔고 밀가루 반죽을 부어서 마치 파전을 부치듯이 그렇게 배추전을 부쳐낸다고 한다. 맛이 어떤가 물었더니, 배추 맛이라는 평범한 대답이 돌아왔다. 한번 먹어봐야 알 수 있는 맛인 모양이다.

그 외에도 콧등치기국수와 묵사발, 메밀국수 등을 팔고 있었으나, 점심을 막 먹은 터라 다른 음식을 맛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아라리촌으로 이동∼!

시장 근처에 아라리촌 표지판이 보였다. 차를 타고 이동하니 아라리촌에 금방 도착했다. 아라리촌은 정선의 옛 주거문화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전통와가와 굴피집, 너와집, 저릅집, 돌집, 귀틀집의 전통가옥과 주막 등이 조성돼 있는 곳이다.

아라리촌에 들어서니 멍석이 깔려있고 나뭇가지로 만든 윷이 놓여있었다. 친구와 함께 윷놀이 한 판을 벌였다.

개야, 걸이야, 모야…. 나는 개와 걸, 모와 윷까지를 넘나들며 부지런히 윷놀이판 위를 누볐고, 친구는 '개와 도, 백 도'를 거듭하며 제자리걸음이었다. 결국 나의 승리!

아라리촌에는 전통가옥들뿐 아니라 느릿느릿 걷는 양반, 남의 소로 밭을 가는 양반 등 양반전을 소재로 만든 동상들도 곳곳에 있어 관람 재미를 더했다. 사실 전통가옥은 지붕을 참나무로 했는가, 소나무로 했는가, 아니면 돌기와를 올렸는가 등으로 구분되는데, 지붕은 만져볼 수 없기에 그 차이를 알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어 꽤 더운 날이었는데도, 전통가옥 안에 들어서니 매우 시원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고로 이런 곳에서 살아야 좋은 건데…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또 이곳에서는 물레방아와 통방아, 서낭당, 농기구공방 등도 볼 수 있었다. 물레방아는 많이 들어보았던 것이나 통방아는 무엇일까? 친구의 안내에 따라 통방아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모양을 만져보려던 찰나에 아라리촌 입구에서 만났던 문화재해설가 아저씨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팔을 통나무 삼아서 통방아의 모양과 움직임을 설명해주었다.

커다란 통나무에 시소처럼 지렛대가 설치돼 있다. 통나무의 한쪽은 보트 모양으로 속을 파내고 반대편에는 공이를 단다. 그리고 속을 파낸 통나무 위로 물이 떨어지게 하면 통나무에 물이 고이게 되고, 그 물의 무게로 인해 통나무가 아래로 기울면서 물을 아래에 버리고 다시 올라온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반대편 공이가 상하운동을 하여 곡식을 찧게 되는 것이다. 통나무로 만든 것이라 해서 통방아라 이름을 지은 모양이다.

주막의 평상에 앉아 음료를 하나씩 마시며 잠시 쉬었다. 장터에 이어 아라리촌까지 둘러보고 나니 꽤 피곤하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내가 정말 타보고 싶던 레일바이크를 타러 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꿈에 그리던 '레일바이크'

차를 타고 30분가량 달리니 구절리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km를 레일바이크를 타고 가게 된다. 기대감에 살짝 흥분되었다. 평소에도 한강에 나가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곤 하는데, 자전거를 탈 때는 앞사람의 흐릿한 윤곽을 보며 따라가야 해서 맘껏 달려보지 못했다. 그러나 레일 위를 달리는 자전거는 맘껏 속도를 내어도 길을 이탈할 위험은 없지 않겠는가?

드디어 레일바이크에 승차했다. 2인승 레일바이크는 마치 승용차 뒷좌석처럼 2개의 의자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등받이가 있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자전거 페달을 밟게 돼 있는데, 앞에는 손잡이도 없고 의자와 의자 사이에 자전거 브레이크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꼭 착용하게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자전거 손잡이가 없는 것이 어색했으나 오히려 손이 자유로우니 사진도 찍고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레일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는 기대 이상이었다. 앞에 출발한 사람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달리다가 살짝 속도를 늦추었다. 친구가 앞사람과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며 좀 더 속도를 내자고 하기에 이때다 싶어 힘껏 페달을 밟았다. 맘껏 속도를 내어 달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곧 앞사람과 가까워져 속도를 다시 줄여야 했다.

왼쪽에는 산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송천이 흐르고 있었다. 논과 밭을 지나고 다리와 터널도 지났다. 레일 위를 달리며 풀냄새, 물냄새에 흠뻑 빠졌다. 시원한 바람에 머리도 상쾌해졌다. 보통 오후 시간 즈음이면 눈이 뻑뻑하고 피곤해지는데, 이날은 종일 자연 속에 있어서였는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중간에 레일바이크 휴게소에 잠시 내려 따뜻한 어묵으로 속을 데운 후, 조금 더 달려 아우라지역 도착! 아우라지역에서 사진 찍으며 잠시 기다렸다가 미니열차를 타고 구절리역으로 돌아왔다.

다음엔 아내랑 함께 레일바이크를 타러 와야겠다 싶어서 4인용 레일바이크의 모양을 살펴보았다. 4인용은 2인용과 달리 자전거 2대를 나란히 붙여놓은 듯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고 그 앞으로 아이들이 앉을 수 있는 2인용 의자가 설치돼 있었다. 아이들용 의자에 안내견을 앉혀 안전벨트를 해주고 아내와 내가 함께 페달을 밟으면 되겠지? 돌아오는 내내 아내와 함께 다시 정선여행을 하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한국점자도서관 점자교정사 양지호
동행취재 김수현 기자
여행일자 : 2007년 5월 22일.

덧붙이는 글 | 시각장애인용 잡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한국점자도서관 기획홍보팀 기자로서 취재/작성한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시각장애인용 잡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한국점자도서관 기획홍보팀 기자로서 취재/작성한 기사입니다.
#시각장애 #안내견 #정선 #정선 5일장 #아라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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