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의 6월

노병은 꿈꾼다, 평화로운 조국에서의 안식의 밤을

등록 2007.06.20 21:31수정 2007.06.2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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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 물들어가는 현충일 저녁, 동작동 국립묘지(현충원) 위편에서 심상치 않은 통곡 소리가 들린다. 현충원 정문을 향해 돌아 나오던 발길을 돌려 통곡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올라가다 발길을 멈추게 하는 영화 같은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노병이 군모를 눌러 쓰고 탄띠에 수통을 찬 완전군장 차림으로 저물어 가는 저녁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죽고 싶어, 정말 죽고 싶어... 이놈의 세상 정말 끝내고 싶어...”

오른손에 소총 대신 목발(크러치)을 짚고 서서 흐느끼는 노병의 절규는 주위가 어두워지건만 그칠 줄 모른다. 누가 저 노병을 절규하게 만들었는가. 노병의 눈물을 닦아줘야할, 아니 노병의 눈에서 피눈물 대신에 미소를 머금게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노병의 조국’이리라.

국가의 부름을 받고 청춘의 날들을 포화 빗발치는 전장에서 보내다, 전사한 전우들을 가슴에 안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 왔을 때, 조국은 그를 어떻게 대했는가. 부상으로 불구가 된 그에게 낙인처럼 남아 있는 무공훈장과 쥐꼬리만한 ‘참전수당’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슬픔과 비애를 오히려 가중시켰을 뿐이었다.

비가 오거나 날이 궂은 날이면 뼛속으로 스미며 더욱 심해지는 통증을 참으며 몸부림치듯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으리라. 남보다 잘 먹이지도 가르치지도 못한 자식들에 대한 안쓰러움에 숨죽여 울며 곤히 잠든 아이들을 애처로운 마음으로 망연히 바라보아야 했으리라.

그렇게 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오다 현충원 언덕 위에서 저는 다리 목발에 의지하여 선 노병에게 조국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국가 존립의 근간이자 모든 법 규범의 모태라 할 수 있는 헌법이 헌법수호의 첨병이라 할 통치권으로부터 짓밟히고 있지 않은가.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정치권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오십보백보’의 싸움을 하며, 사회적 명사라 하는 자들은 아들의 병역의무를 기피하게 하거나 교묘히 회피하는 등 지도층의 총체적 난국 상황이 아닌가.

무릇 민주주의와 변증법적 시너지 효과를 내고자 하는 법치주의란 ‘사회적 안정성을 기초로 국민의 행복을 담보함’에 그 존립 의의가 있건만, 자고 나면 부정부패와 정치 싸움이 끊일 줄 모르고, 부정부패를 바로 잡고 정치판을 안정시켜 국민을 편안케 할 위치에 있는 자들이 오히려 총체적 난국의 선봉에 서 있는 조국의 현실.

그런 조국이 어떻게 노병과 같은 역사적 희생양들과 한반도 도처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늘진 인생들의 고초를 보듬어 낼 수 있겠는가. 역사는 결국 발전해 가는 것임을 확인시켜 준 '6·29 선언'에 이어 7년여 전부터 현충일과 함께 ‘6월의 행사’로 자리 잡은 '6·15 공동선언' 기념행사 또한 노병의 6월을 슬프게 채색되게 하였으리라.

기아에 허덕이는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에게 국민들이 의약품을 보내고, 집 없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이나 기업인들이 집을 지어 마을을 조성해 주는 것이 미담으로 뉴스가 되는 오늘.

한 피를 나눈 동족과의 화합을 위한 행사나 동포애적 지원을 기를 써서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나, 국민적 동의와 국민적 개방 속에서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특정 세력들만의 정치 행사처럼 치러지는데다가 화합의 축제가 아니라 분열과 반목의 장으로 변질되곤 하는 남북공동행사가 있을 때마다 노병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둠에 싸인 현충원 언덕에서 눈물을 훔쳐내며 내려오는 노병은 꿈꾼다. 백범이 유언 하였듯이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 가며 오늘의 조국이 있게 한 애국자들”이 근심 없이 황혼의 낙조를 벗 삼아 지내다 평안한 안식의 밤을 맞이할 수 있기를.

-한·베트남고엽제전우후원회 법률자문단장/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인일보 6월 20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인일보 6월 20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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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법(통일헌법) 박사학위 소지자로서의 전문성 활용 * 남북회담(민족평화축전, 민주평통 업무 등)차 10 여 차례 방북 경험과 학자적 전문성을 결합한 민족문제 현안파악과 대안제시 * 관심분야(박사학위 전공 활용분야) - 사회통합, 민족통합, 통일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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