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소리, 속목과 겉목의 현란한 뒤바뀜

[음반평] 서도명창 유지숙의 북녘소리 <토리>

등록 2007.06.21 15:41수정 2007.06.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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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명창 유지숙의 북녘소리 <토리> 음반 표지 ⓒ 신나라

"구부러졌다 활나물이요 펄럭펄럭 나비나물
이나물 저나물 바삐펴서 채광우리를 채와가지구
해지기전에만 집에 가자
(후렴)끔대끔대 끔대끔 놀아라 끔대끔대 끔대끔 놀아라."


위는 서도민요의 하나인 '나물타령(끔대타령)'의 사설이다. 연배가 좀 된 사람들이라면 이은관의 배뱅이굿을 기억한다. 그의 익살스러운 재담은 많은 사람을 웃기고 울렸다. 그 이은관의 배뱅이굿은 서도소리의 하나인데, 서도(西道)소리는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된 평안도·황해도 등 관서지방의 향토민요이다.

서도소리의 선율은 흔히 '수심가토리'라 하여 위의 음은 흘러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가락으로 되어 있는데,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준다. 서도소리는 크게 수심가, 엮음수심가, 긴아리, 안주애원성 따위의 평안도민요와 긴난봉가, 산염불, 자진염불, 몽금포타령 등의 황해도민요가 있다.

우리나라 민요를 보면 경기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 제주민요, 서도민요가 있는데 이 가운데 서도민요는 북녘의 것이어선지 별로 불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계승하여 부르는 소리꾼도 많지 않는 실정이다. 하여 서도민요는 숨이 끊어질 직전까지 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기 서도소리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가운데에 서도소리계 최정상급 여류 명창으로 손꼽히는 유지숙이 있다. 유지숙은 지난해 11월 중국 후난성 츠비시 난핑산(湖南省 赤壁市 南屛山)에서 우리 서도소리 '공명가(孔明歌)'를 소리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곤 최근 신나라(회장 김기순)를 통해 <서도명창 유지숙의 붘녁소리-토리>란 이름의 시디를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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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명창 유지숙 ⓒ 신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관산융마(關山戎馬) 분야 기능보유자 인 고 오복녀 명인에게 서도소리를 배운 유지숙은 1990년 제12회 국립국악원 전국 국악경연대회 성악부 금상을 받았고, 1998년 한국방송(KBS) 국악대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유시엘에이(UCLA)대학 초청 공연 등 많은 외국 공연도 했다. 또 유지숙은 '한국서도연희극보존회'를 만들어 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음반에 오른 노래들은 대부분 지난 해 4월 이미 잊히고 사라진 전통의 서도소리들을 되살려 '유지숙의 북녘소리 토리'라는 이름으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발표해 청중들에게 큰 손뼉을 받았던 것들이다. 공연 때는 몇 개의 악기로 노래를 따라가는 수성(隨聲)가락의 반주였지만 음반에서는 풍부한 음향을 위해 대규모의 국악관현악단과 호흡을 맞추었다.

음반에는 서도의 신민요로 1960년대 이후 크게 유행했던 '굼베타령', 북한의 유명한 소리꾼 김진명이 작곡한 노래로 농촌의 농사일을 경쾌하게 노래하는 '산천가', 사설을 곁들인 익살스러운 노래 '풍구타령'과 함께 함경도의 애원성, '농부가', '아스랑가', '전갑섬 타령'의 민요가락들이 퉁소반주에 얹혀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있는 점도 이 음반에서 맛 볼 수 있는 또 다른 정취일 것이다.

특히 '끔대타령' 일명 '나물타령'은 2박 계통의 빠른 장단으로 여러 종류의 나물을 열거해 나가는 재미있는 민요이며, "이슬비가 네 술비냐 / 지상중에두 술비로다"로 시작하는 '술비타령', "일자도 모르는 건 판무식이로다 떨떨레 관창이지 / 남으로 흥 뻗은 길이라"로 시작하는 '투전풀이'도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노래이다.

현란한 기교가 노래 전체를 꿰뚫는 '청사초롱'

하지만, 노래들 가운데 가장 관심을 가는 것은 '청사초롱'이다. 이 노래는 원래 함경도 민요 '편지가 왔다네'인데 지난 해 공연 때 아이들에 맞춰 개사하고 몇 소절을 덧붙인 다음 불러 좋은 반응을 얻었던 노래이다.

청사초롱은 다른 노래에서 보지 못했던 기교가 돋보인다. 보통 경기민요에서는 속목(세청)으로 한참을 노래하다 겉목으로 돌아오지만 이 노래는 속목과 겉목을 바로바로 뒤집는 현란한 기교가 노래 전체를 꿰뚫는다. 깊은 내공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대단한 소리이다. 사실 이 노래의 녹음은 다른 곡이 다 끝난 뒤에 다시 녹음실에서 하루를 고생한 끝에 완성한 것이라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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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중인 서도명창 유지숙 ⓒ 신나라

예술은 남이 해낼 수 없는 분명한 차별화가 있어야 성공한다던가? 유지숙 명창은 이 음반에서 특히 '청사초롱'에서 이것을 이루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지숙은 오는 7월 4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에서 음반에 오른 소리들을 부른다. 또 특별한 계획으로 오는 11월 2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서도소리극인 '향두계노리'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서한범 단국대 교수는 유지숙을 이렇게 평가한다. "유지숙은 묻혔거나, 잊혔던 서도지방의 소리들을 되찾고자 하는 그녀의 학구적 자세가 남다른 것은 물론 발굴·채집된 노래들을 가다듬고 매만져 나가는 과정이 매우 진지하고 치밀하며, 새로운 소리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여 검증을 받으려 노력하고, 검증된 노래들을 보급하기 위하여 음반을 제작하거나 후진들을 가르치는 일에 진력하는 뛰어난 소리꾼이다."

소리꾼들은 각자 특성이 있다. 어떤 사람은 힘이 있고, 어떤 사람은 뛰어난 기교가 있으며, 어떤 이는 타고난 청이 좋고, 어떤 이는 감칠맛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유지숙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른 능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또 어떤 소리꾼은 쉽게 안주하여 소리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저 스승의 노래에만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세는 예술의 퇴보를 불러오기에 제자가 스승에게 청출어람을 바쳐야 함은 절대 필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유지숙은 잊힌 노래를 다시 찾아내고 이 노래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물론 이를 세상에 널리 펴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진정한 명창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서도소리는 나의 운명"
[대담] <서도명창 유지숙의 북녘소리> 음반을 낸 유지숙

▲ 대담을 하는 유지숙 명창
ⓒ김영조
- 서도소리를 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는 호적을 부셨고, 새끼를 꼬시면서 늘 서도소리를 하셨다. 작은아버지도 소리를 무척 잘하셨는데 자연스럽게 나는 어렸을 때 서도소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특히 서도소리 가운데 '수심가'가 그렇게 좋았는데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소리를 배우고 싶었지만, 배울 확률은 1%도 안 되는 듯했다.

그런데 마침 직장 앞 건물의 단소·민요 학원 선생님께서 서도소리를 하시는 오복녀 선생님을 소개해주셨고, 거기서 서도소리와의 운명은 시작되었다. 토막토막 알았던 소리를 선생님께서 연결시켜 주시는 것이 정말 좋았고, 연습할 곳도 시간도 없던 나는 도곡동 선생님 댁에서 인천 집에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흥얼거리며 다녔는데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선생님은 날 끔찍하게 아껴주셨다. 3년을 선생님 좋아하시는 냉면 한 그릇 사가지고 가면 하루 종일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 선생님이 돌아가시자 난 오랫동안 선생님을 잊지 못해 맘고생을 했다. 그러다 이춘희 선생님의 도움으로 국악원 시험에 합격해 들어가게 되었다. 이로써 나는 서도소리와 함께 하는 삶이 되었다. 돌아보니 '서도소리는 나의 운명'이었다."

- 서도소리는 다른 민요와 어떻게 다르고 어떤 특색이 있는가?
"서도소리는 기본 구조나 발성으로 볼 때 장난이나 눈가림으로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며, 배에서 나오는 깊은 소리가 기본이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서도소리는 정직하고 굳센 소리, 소리의 색깔이 무겁고 남성적인 힘을 느끼게 하는 소리이다. 나는 그게 서도소리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서도소리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은관 명창은 높은 소리를 가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유지숙은 그는 원래 높은 음역을 가진 분이지만 대다수의 옛 명창들은 무겁고 힘 있는 소리였다고 말한다. 또 유지숙이 무겁게 소리하는 것에 한 지인이 본래의 청이 맑은데 무겁게 할 까닭이 없다고 하여 지금의 제 소리를 내게 되었다고 귀띔해 준다.

- 대중에게 다가서지 않으면 어떤 훌륭한 장르도 잊힐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서도소리를 대중에게 더욱 친숙한 소리로 만들어가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1집 음반은 전통 서도소리로만 녹음했다. 하지만,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2집에는 대중에게 익숙한 경기소리와 섞어서 '경서도소리'라는 이름으로 냈으며, 이번 3집은 한발 더 나아가 쉽고 재미있는 그러면서 가볍고 산뜻한 소리들로만 엮었다. 앞으로 판소리 가루지기전 같은 것을 활용해서 예전의 인기소리인 배뱅이굿 같은 꺼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북녘에선 서도소리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애정이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서도소리를 그들에게 이해시키고 널리 알린다면 통일로 가는데 주춧돌의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음반은 봉죽타령, 나물타령, 풍구타령 등 북녘에서 부르던 소리를 담았고, 힘있는 북녘 장단을 썼다. 처음엔 연변의 제자가 가져다준 녹음테이프를 들었는데 가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북녘 김진명 명창의 자료를 받아 밤새 들으며 공부했다.

그동안 북녘은 서도소리가 혁명에 어울리지 않는다하여 외면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도소리는 원래 북녘의 노래들이며, 북녘의 생각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기에 좀 더 그들에게 알리고 소리를 들려준다면 그들도 결국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남북이 함께 부른다면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도 든다."

- 그동안 우리 민요는 일제에 의해 기생소리로 폄하되었다. 그런데 어떤 공연을 보면 소리를 쓸 데 없이 간드러지게 한다든지, 옷을 기생처럼 입고 출연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청중이 모를 것 같아도 소리꾼이 거만스러운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면 거만하게 보며, 위축된 생각으로 오르면 왜소하게 보고 기생처럼 오르면 기생처럼 보게 마련이다. 예술은 도의 길이라고 했던가? 예술은 늘 자신을 닦고 성찰하면서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때가 되면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올 줄도 알고 최선을 다해 제자들을 무대에 올릴 줄도 알아야 한다."

유지숙은 대담 내내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깊은 내공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정악에 비해 민속악을 소홀히 하는 분위기가 보일 때도 있다며,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이는 정악에 비해 민속악은 오랫동안 더 많은 민중들의 삶과 함께 한 우리의 문화라는 점에서 홀대하면 안 될 일이다. / 김영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대자보, 수도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대자보, 수도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서도소리 #유지숙 #토리 #신나라 #북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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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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