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제국 미국 로마 반만 닮았더라도...

제국 형성기 로마와 미국의 대 야만정책 비교

등록 2007.06.29 18:11수정 2007.07.01 09:20
0
원고료로 응원
문명을 잉태한 로마의 동화정책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사에 첫 손에 거론될 만한 나라를 꼽으라면 그리 간단치도 않을뿐더러 사람마다 내놓는 기준도 다를 것이다. 중국 역사상 문화적으로 가장 번성한 당나라나 막강한 전투력을 가졌던 몽골제국을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비잔틴을 멸망시킨 오스만투르크나 헬레니즘의 기원 알렉산더 제국을 최고로 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근대를 더듬어 대영제국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분분한 의견 속에서도 누구나 공감하는 대제국이 있다면 로마 제국일 것이다. 로마는 유럽과 서아시아를 넘어 북아프리카까지 이르는 드넓은 영토를 가졌음은 물론 1천년이 넘게 존속했다. 동로마까지 포함하면 2천년을 유지한 나라다. 로마가 진정한 제국인 것은 그들이 만든 문명의 결과인데 후에 예술, 철학, 언어 등 서양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뿌리로 작용했다. 그리스 로마 문명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는 그리스의 뛰어난 문명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유럽 형성의 근간이 된 것이다.

오늘날 유럽은 로마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건국왕 로물루스 시대의 로마인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로마의 조상들은 야만족과 피정복 부족을 관용으로 대하며 차츰 세력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가장 자주 언급한 말 가운데 하나가 "패자조차도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이 방식만큼 로마의 강대화에 이바지한 것은 없다"고 한 플루타르코스의 말이다. 비록 저자는 로마인의 그런 방식이 패자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기질적인 측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로마인 자신은 타고 난 기질이 인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는 없었으리라.

사비니족 여인을 강탈해서 아내로 삼고 여인들을 구출하러 온 그녀들의 아비, 오빠들과 종국에는 장인, 처남 관계를 맺으며 강력한 결속력을 다진 경험이 로마 동화정책의 시작이라면 좀 지나친 상상일까? 어쨌든 로마는 강력한 에트루리아 부족과도 맞서며 주변의 야만 부족을 제압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동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피정복 부족과 동맹관계를 맺거나 시민권을 제공하는 것을 주축으로 한 동화정책은 왕정 후반에는 에트루리아계 왕이 나올 정도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왕정이 끝나고 브루투스로부터 시작한 공화정 시대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실시되었다.

진정한 동화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로마의 동화정책은 기질에서 출발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으로 정책에 반영되었다. <로마인 이야기>에 따르면 카이사르에 의해 정복된 갈리아 사람들은 본토 로마인보다 더 로마인다운 시민이 되었고, 3차 포에니 전쟁의 결과 대국이었지만 카르타고 역시 로마의 속국이 되어 로마식 문명의 수혜를 즐길 수 있었다. 여러 부족으로 갈라져 있던 야만족 게르마니아 역시 저항과 패배를 거듭하며 로마화되었고, 브리타니아는 영국인 스스로도 '로마 정복 이후에 진정한 영국이 시작되었다'고 인정할 만큼 로마의 문명화에 힘입은 바 크다.

로마의 동화정책은 복속 주민의 자치와 가치관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관용은 존중과 우월적 존재의식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로마인의 인내는 결국 피정복민 스스로 변화되도록 만들어 문명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유럽을 만든 원형이었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동화는 없다, 미국의 인디언 말살

로마의 역사가 정복의 역사라는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복은 자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방위선을 넘어 침입해 들어오는 야만족을 경계선 바깥으로 몰아내고 무력화 시킨 뒤 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수탈이나 적군의 멸족이 목적은 아니었다. 동맹조약을 맺거나 전비 배상금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전후 처리를 하고 평화를 보장해 준 사실을 보면 로마가 일으킨 정복 전쟁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전문가들에 의하면 유럽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1600년대 초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적게 잡아도 백만 명, 많게는 5백만 명의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경악스럽게도 1900년경에 이르러서는 미국 땅에 단지 20만 명의 인디언만이 남았다. 300년 동안 인구가 늘지 않았다 해도 놀랄만한 일인데 원래 인구의 10분의 1 이하로 줄어 든 것이다. 그 모든 원인은 백인에 의한 전쟁과 질병, 기근에 있었다. 1607년 지금의 네바다에 900명의 유럽인이 첫발을 내디딘 결과는 원주민들에게 참혹한 출발을 알리는 신호였다.

처음에는 오히려 약자인 유럽인을 인디언들이 보호해 주었고 소규모의 물물 교환도 있었다. 하지만 대륙간 물질문명의 발전 속도는 다른 것이었다. 백인들은 금을 캤고 인디언들의 사냥터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그 땅을 경작지와 농장으로 만들었다. 차츰 그들의 수가 늘어났고 선진 무기를 앞세운 정복자들에게 인디언들은 밀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백인들조차 의도하지 않았던 무시무시한 살상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그들이 몸에 실어 옮겨 온 각종 질병이었다. 말라리아, 홍역, 결핵, 천연두에 저항력이 없던 수많은 인디언들이 죽거나 쓰러져 갔다. 세균은 리볼버 총알보다 더욱 높은 치사율로 인디언 부족 전체를 몰살하기도 했다. 그나마 살아남았다 해도 이미 그들의 몸은 병균도 들러붙어 있기 민망할 정도였다.

또 하나의 재앙은 들소사냥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들소는 인디언들의 중요한 식량원이자 부족에 따라서는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으며, 소의 힘줄은 활시위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이기도 했다. 그런데 백인 사냥꾼들의 무차별 사냥으로 한때 4천만 마리였던 들소가 1883년에는 천여 마리로 줄어있었다. 그들 중에도 현명한 지도자가 있어 들소 사냥을 원주민에게만 한정하고 로마의 10분의 1세처럼 열 마리를 잡으면 한 마리의 모피를 세금으로 내라는 법을 만들기를 기대했다면 지나친 일일까. 어쨌든 백인은 모든 인디언을 척박한 보호구역으로 몰아넣은 뒤에도 그에 따른 삶의 대책은 세워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메리카 인디언의 생명은 꺼져가고 있었다.

미국이 독립한 지 백여 년이 지난 1890년 어느 날, 파이우트족의 예언가 워보카의 신비한 유령 춤으로 촉발된 인디언 봉기가 있었다. 그 날의 전투는 쇼니족, 소크족, 세미놀족과 함께 미국 커스터 장군의 군대를 전멸시킨 수족의 추장 '앉은 황소'가 이끈 영웅적 전투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의 마지막 무장 저항으로 기록되었다. 뒤이어 얼마 전부터 시작된 강제 동화정책이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미국도 로마와 같은 개혁적 동화정책을 시도했다는 것은 놀랍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늘 시의적절해야 한다. 선진 문명은 이류 문명의 질투와 선망의식의 모세혈관을 타고 전파되는 법인데 궤멸 직전까지 몰린 인디언들에게 그런 여력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로마인처럼 태생적 기질이 없다면 의도된 정책을 통해서라도 첫 대면부터 관용의 미덕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인의 선택은 너무 늦었다. 늦었을 뿐더러 동화의 진정한 의미도 알지 못했다. 미국인의 눈에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단순한 미개인, 그러니까 교화와 개종의 대상일 뿐이었다. 미국인의 동화정책은 인디언들을 자신들처럼 선량하고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인으로 바꾸는 것, 다시 말하면 인종적 우월주의와 종교적 선민주의가 뒤섞인 오만한 정책일 뿐이었다.

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을 해체하고 학교와 기숙사를 지어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어린 아이들을 강제로 가두었다. 아이들은 자기 부족 언어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방학 중에는 백인 가정에서 하인이나 가정부 노릇을 해야 했다. 분명 개혁적인 어떤 미국인에 의해 시도된 정책이겠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종종 언급한 풀브라이트 장학제도를 닮은 로마식 정책은 아니었다. 때도 놓쳤고 의도도 미숙한 미국의 아메리카 인디언 동화정책은 아쉽게도 카이사르의 유명한 명구 하나를 실증하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

미국은 수탈의 흔적 외에 무엇을 남겼는가

결국 동화정책은 인디언의 나머지 땅마저 수탈하려는 사람들의 이익과도 맞아 떨어져 보호구역의 땅은, 여전히 늘어가고 있는 백인 이주민들에게 선물로 넘겨졌다. 1887년 '도스 일반할당법'이라는 교묘한 법을 통해, 그나마 남아있던 인디언 부족의 공동재산을 사유지화해 버리고 그중 가장 기름진 땅을 헐값에 백인들에게 넘긴 것이다. 그 후에도 간헐적인 동화정책이 시도되었지만, 사람은 경제적 토대와 함께 문화적 정체성까지 말살되면 백약이 무효하다.

자신들의 신과 삶의 방식, 심지어 언어까지 잃은 인디언들은 회생의지를 잃고 말았다. 현재 미국에는 약 240만 명의 인디언계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아마 400년 전 북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한때 대륙의 주인이었던 그들이 현재 미국 인구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인디언 정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반증할 뿐이다.

로마제국과 아메리카 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로마는 정치적 가치가 앞선 시대를, 미국은 경제적 가치가 본질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어찌 보면 통찰력 깊은 전쟁 영웅쯤으로 부르면 딱 어울릴 로마 제국의 황제나 사령관들이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시작한 미 제국 아래서도 똑같이 관용적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반대로 미국의 대통령이나 지도자들 역시 자국의 방위나 안전을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좀 더 순수한 시대에 태어났다면 세간의 평가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쨌든 북아메리카 인디언을 완전 정복한 후 미국은 제국의 기운을 서서히 만들어 가는데 남아메리카는 훌륭한 물적 토대가 되었다.

1776년의 미국 혁명은 아메리카가 유럽 제국주의에 맞설 것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822년 라틴아메리카 전역이 스페인 정부에 반기를 들어 독립을 쟁취했고 이듬 해 미국은 먼로 독트린을 통해 아메리카 전체를 지배하며 세계 제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잡게 된다. 하지만 제국 성립 초기부터 로마와는 다른 원형질을 잉태한 미국은 그 산물 역시 로마와는 달랐다. 로마의 소키나 무니키피아(동맹국)에 비견될 만한 지역인 남아메리카에 대한 정책은 군사력과 공작에 의한 수탈이 목적이었고 방법적으로도 철저하고 잔인하게 수행되었다.

이윤 추구의 발톱을 숨긴 대외 정책은 무자비한 것이었다. 미국은 원래 멕시코 땅이었던 현재의 미 서부지역을 전쟁으로 빼앗는 것을 시작으로 남미의 많은 나라들을 침략했다. 1900년대 중반까지 나카라과, 파나마, 쿠바,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남미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에 의한 전쟁과 정치지도자 암살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미국의 목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는 유럽을 만들었고 브리타니아로부터 갈리아 전역에,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에 커다란 문명을 남겼지만 미국은 수탈의 흔적 외에 무엇을 남겼다고 기록될 지 궁금하다.

진정한 평화를 기대하며

남겨진 과제는 팍스 아메리카나와 함께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어떤 제국도 흥망성쇠의 길을 피해갈 수는 없지만 우려할 일은 미 제국주의의 쇠망의 과정이나 이후의 혼란은 과거의 제국들에 비해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로주의를 폐기하고 미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나서는 발판이 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약 6천만 명이 죽었다. 초급 원자폭탄 두 발과 재래식 무기만으로 만든 규모다. 전쟁용 살상 무기만큼 빠른 진화를 이루어 낸 것도 없는 이 마당에 무기 에너지의 총량을 계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운명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색과 자각을 통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가 인류 보편의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도 그런 가치의 하나로 이해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팍스 아메리카나 이후의 현명한 대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 동시에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자세로 평화(팍스)의 기능을 강화하는 미 제국으로 나아가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짧은 글 속에 로마의 역사를 거울삼아 팍스 아메리카나의 앞날을 제대로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 미국은 로마 제국이 보여주었던 관용과 동화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제국다운 품위와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관용은 다름과 차이에 대한 인정이고 동화는 스스로 남보다 고결할 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에 따른 노력이 따라야 한다.

정신적 가치가 우월하면 많은 사람들이 심취하고 동경한다. 힘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며 진정한 통치와 국제평화는 통치자와 국민의 진정성에 달려 있음을 미국인들이 알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가치를 미 제국주의에 기대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미국이 그럴 생각이 없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구제국의 쇠망과 신제국의 탄생은 온 인류가 짊어져야 할 동시대적 과제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로마인 이야기 글쓰기 대회에 응모하는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로마인 이야기 글쓰기 대회에 응모하는 글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유독 그곳에 많은 동성간 성폭력... 법원은 관대하기만
  2. 2 부메랑이 된 박근혜 말...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3. 3 1분 만에 진술 번복한 정경심 증인... "본 적 있다", "직접 본 건 아니다"
  4. 4 존재 자체로 '국보급' 물고기, 금강서 찾았다
  5. 5 부산 유니클로 범일점 뜻밖의 첫손님... "NO일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