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로마인 이야기]참여정부가 고대로마의 개혁에서 배울 점

등록 2007.06.30 08:43수정 2007.07.0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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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도서출판 한길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대회 응모작입니다. 지은이가 아우구스투스 입장이 돼 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지난 6월 27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회의 조속한 입법 처리를 주장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원로원을 상대로 제정이행의 개혁을 완성한 내(아우구스투스) 경험을 통해, 임기 말 국회와의 관계로 고민하는 당신에게 유용한 조언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한국과 2천여 년 전의 로마를 비교하기에는 정치체제, 국토와 인구의 규모, 시민사회의 발달정도 등 많은 무리가 있겠지요. 하지만, 개혁을 필요로 하고 지도자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은 시대를 초월해 국가가 가지는 공통점이지요.

150여 년 전의 미국 대통령 링컨을 만나 당신이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되었듯이 2천여 년 전 로마의 프린켑스를 통해서도 임기말 개혁의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혁의 전제조건 - 지지세 확보와 아젠다 설정

개혁의 전제조건은 지지세 확보입니다. 나도 당신처럼 로마 정치의 비주류였으나, 나와 당신의 통치에서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지지세를 끌어모으는 방법일 것입니다.

당선 직후 당신은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반영된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고대 로마에서도 모든 황제가 취임 초기에는 국민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은 것을 떠올려 보면, 고무적이기만 한 사실은 아닙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심리에서 나온 인기와 지도자에 대한 지지가 다른 것임을 간파했던 카이사르와 달리 당신은 급속도로 꺾이는 인기에 실망해 취임 석 달이 되기도 전에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국회를 개혁의 파트너로 배려하지 못해 집권당의 분당으로 이어지고, 심지어는 탄핵의결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나의 수완은 노련했지요. 결국 원로원 주도의 공화정 해체를 위해 달려가면서, 신중하게 적절한 시기를 골라 원로원이 반대하기 어려운 형태로 법안을 제출했죠. 도덕적 정당성이 아닌 합리적 실리성을 기준으로, 보수적 개혁 아젠다를 설정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내가 다른 로마 지도자들을 제치고 이렇게 당신께 편지를 쓰는 것은, 원로원과 대립하며 성급히 추진한 농지개혁으로 개혁의 좌절을 가져온 그라쿠스 형제나 천재적인 능력으로 개혁을 추구했으나 원로원으로부터 제정이행의 의심을 사 암살된 카이사르와는 다른 구세력 끌어안기의 모범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개혁의 과정 - 개혁과정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들

우선, 국가는 이념이 아니라 실재라는 카이사르의 생각을 당신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친일파 청산, 민주화 운동자 복권과 같은 일은 중요하지만 시대적 요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이념적 요인이었습니다. 용산기지 이전이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자주국방의 이념을 위해 당장의 억제력이나 국가경제를 일정 부분 희생시키는 걸 감수해야 했지요.

다음은 당신의 언론개혁 과정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카이사르가 상대에 따라 다른 말투를 구사하는 것처럼, 노동자 앞에서 하는 말과 국회에서 하는 말을 달리해 설득력이 높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카이사르와 달리 당신의 비극은 엄청나게 발달해 버린 현대의 언론에 있습니다.

언론의 중요성이라든가, 언론종사자의 위신을 한층 깎아내리는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하는 구조가 있다"는 발언을 염두해 두고 있는 언론은 당신의 '현장의 논리'를 십분 활용하여 그 설득력의 모순을 지적하게 된 것입니다.

언론은 부분부분 편집되거나 순간포착된 영상으로, 칼럼이나 사설로 당신을 압박해왔죠. 언론분야도 당신의 도덕적 양분성과 현장논리의 경솔함이 낳은 성공하지 못한 개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 정책에서 한 가지 지적할 게 있습니다. 나를 비롯해 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하고, 민심을 잘 추스린 로마의 황제들을 보면, 세금인상에 얼마나 민감하고 소극적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세금은 평판이 좋지 않을 뿐더러, 무거운 세금은 통치상, 정치경제학상 가장 어리석은 해결법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빈부격차 해소, 경제정의 실현을 명분으로 내건 종합보유세 등의 부동산세는 큰 저항에 부딪혔으며, 부동산 가격 상승의 책임을 전가시킨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지요.

남은 8개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득 내 통치의 마지막 해가 생각이 나는군요. 그 전 해에 티베리우스를 명실공히 공동 통치자로 격상시켜 후계구도를 마무리하고, <업적록> 집필에 들어갔었지요. 어찌 보면, 8개월여 임기가 남은 당신이 지지할 차기 대선 후보를 고르고, 참여정부 평가포럼 일을 독려하는 것과 비슷한 지도 모르겠군요.

안토니우스에게 승리하고서도 43년 이상 통치기간을 가졌던 나에 비하면 5년은 너무나 짧은 임기이기 때문에 그 8개월의 의미가 더 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한계는 존재합니다. 내가 핏줄에 집착해 후계자를 고르려 했던 부분은 아직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티베리우스의 통치수업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진정 로마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당신도 친노후보에 집착해선 안 됩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지적했듯이 정치지도자가 행한 일이 국가에 이로운가는 후임자들의 정책계승 여부로 판단되는데, 당신의 정책이 옳다면 누가 되든 후임자가 계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권언유착, 정경유착, 친인척비리를 과감히 청산한 대통령이고, 따라서 퇴임후에도 떳떳할 수 있으므로 친노후보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 비록 국회의 탄핵 의결도 겪었고, 국민의 20% 남짓만 지지하는 대통령일지라도, 티베리우스, 도미티아누스, 하드리아누스처럼 당대 치세 말에는 혹평을 받았다가 기나긴 역사의 관점에서 재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8개월 동안 실천가능한 민생개혁 아젠다를 제한적으로 공표하고, 과반수의석을 잃고 표류하는 범여권 분열의 책임을 솔직히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의무 방기라 몰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국민을 위한 길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아우구스투스 #노무현 #로마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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