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과 제갈량, 카이사르와 조조...비슷하네

<로마인 이야기>에 등장한 대가들, 동양의 대가들과 통하다

등록 2007.06.30 10:59수정 2007.06.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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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이어집니다. 그리고 통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하죠. 옛 일을 잘 익혀서,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일에 대한 해답도 찾는다 뜻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주름잡던 인물들을 지켜보면, 동양의 역사를 주름잡던 인물들이 자주 떠오릅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상시켰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주장하기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제가 주목한 관점은, "대가(大家)들은 시공간을 막론하고 통한다"는 것입니다. 영웅이 영웅인 이유가 있고, 영웅이기에 가졌던 남다른 생각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그 '남다른 생각'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재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후감'이기에 편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의견과 생각의 교환이라는 차원에서 즐겁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한니발'과 '제갈량',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던 천재 전략가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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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권, "한니발 전쟁" ⓒ 한길사

한니발과 제갈량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국을 압박하는 대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니발의 카르타고는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의 패배로 굴욕을 맛봤으며, 제갈량의 촉한은 위(魏,) 오(吳)와 더불어 솥발처럼 견제하는 삼국정립 시대에서 각각 위(촉한의 명분을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하며 관우 살해에 간접적 개입)와 오(형주 상실, 유비의 복수전 패배)로부터 굴욕을 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국의 군사적 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정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로마와 위를 타개해야만 자국의 생존권이 보장됐으며, 각각 '로마에 대한 카르타고인의 복수 심리'와 '선주 유비의 유선 위탁 유언'으로부터 그 전권에 대한 명분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최선의 방위는 곧 공격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들이 치른 전쟁에서 이들은 전술가를 넘은,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적국 심장부 공격 불가론', 놀라울 정도로 일치되는 장면입니다.

이들의 휘하 장군들(특히 제갈량 휘하의 위연)은 모두 '심장부 공격'을 주장합니다. 저마다 확신과 자신에 차 있었고, 실제로도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후세에는 위연의 일명 '자오곡 계책'을 지지하는 마니아들도 많지만, 제갈량도, 그리고 한니발에게도 분명한 거부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정치'입니다. 전술가로서는 도시의 함락이 관건이지만, 전략가는 전쟁의 전체적인 틀과 정치를 함께 도모해야 됩니다. 그 심장부를 함락했다 하더라도, 우두머리에게는 사방에 건재한 적군의 포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보급선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로마연합'을 흔들어야 했으며, '위'의 서북방 전체를 흔들어야 했습니다. 심장부를 기습하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할 뿐 아니라, 더 큰 위험을 양산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스키피오'와 '사마의'라는 천재적인 라이벌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보급선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보급은 곧 후방의 정치 및 외교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자칫하면 본국 전체까지 뿌리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전략과 정치의 천재라도, 지원이 없으면 전쟁의 성패는 정해진 것입니다. 로마해군의 제해권 장악, 사마의의 보급선 차단의 움직임은 이것을 파악한 결과입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최후를 맞았다는 점도 그렇지만, 이들의 실패 이후 자국의 국력이 쇠했다는 것도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전쟁과 정치는 역시 한 사람의 재능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와 로마는 일치단결해 그들을 상대했고, 한니발과 제갈량이란 천재는 바로 그 '일치단결'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카이사르'와 '조조', 천재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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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4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 한길사

이들이 천재라는 것, 그리고 그 재능이 다방면에 걸쳐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의 심리를 읽어내는 데 도사였고, 그 허를 찔러내는 점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리고 역시 이들도 전쟁과 정치를 한 번에 시도합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벌, 조조의 원소 토벌 이후의·오환족 토벌도 내정의 일환입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치체제를 뒤엎으려 했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의 비정함과 솔직함을 거리낌없이 드러냅니다.

"내가 이 강을 건너면 인간세계가 비참해지지만,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 카이사르,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찬탈자'라는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쓸 각오까지 다졌을 조조. 뭔가 비슷해보이지 않으십니까?

정치란 결국 비정의 세계. 새로운 체제와 테마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비정함을 인정하고 무릎쓸 필요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새 제국의 기반을 위한 인재 풀을 고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적을 용서하려 노력했고, 특히 조조는 적과 내통한 부하들의 편지를 보면서도 "나조차도 흔들렸는데, 걔들은 말해서 뭣하나"라는 의연한 한 마디를 남긴 것입니다.

나관중의 '유비 띄우기'를 위한 장치 중 하나가 '반(反) 조조 운동'이었던 탓에, <삼국지연의>를 보면 유독 반대파를 척살하는 조조의 움직임이 돋보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가 승상으로서 황제를 대행한 23년간 내부에서 일어났던 '반 조조 운동'은 2번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황실의 장인들이 주도하는 등, 결정적인 명분이 부재했던 경우입니다.

민주주의의 명분, 그리고 유교의 명분 속에서 이들은 수천년 가까이 '제위를 탐하던 자'로 평가절하돼 있다가 최근에야 다시 그 천재적인 재능과 인간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만큼 우리는 세상의 틀을 바꿀 정치인에 목말라 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벗어나 역사 그 자체를 바라보는 눈을 떴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난세에는 이렇듯 압도적인 정치인을 원하기 마련입니다. 대한민국,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정치인을 원하는 난세거든요.

아우구스투스와 손권, 도쿠가와 이에야스... '위선'의 묘를 살린 2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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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6권, "팍스 로마나" ⓒ 한길사

"뻐꾸기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은 2인자가 1인자가 되기까지 견뎌내야만 하는 인내, 순간의 아픔을 참아내고 더 먼 이후를 내다보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도쿠가와는 "삶은 먼 길"이라고도 했죠.

하지만 이런 인내에는 대단히 음흉한 연기력을 동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무서운 것이죠. 겉으로는 웃지만, 속에서는 어떤 야심이 숨겨져 있을지, 어떤 반전을 꿈꾸고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보시죠. 손권은 상황에 따라 유비와 조조를 오가며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으며, 아우구스투스 역시 안토니우스를 참아내고, 키케로를 속여야만 했습니다. 여기서의 결정적인 성과는 '경계를 피할 수 있다는 것',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에 도쿠가와의 이미지가 잘 구현돼 있습니다. 어딘가 둔해보이고 성실해 보이는 이미지, 하지만 그 속에는 먼 이후를 내다보는 대야망이 숨겨져 있으며, 그 대야망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결정을 봅니다.

손권도 결국엔 그토록 원하던 형주를 얻어 제위에 오를 수 있었고, 아우구스투스는 최후의 승자였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아우구스투스에 대해 "카아사르에게는 없던 '위선'의 자질을 갖췄다"고 평했습니다. 이 '위선'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영웅들, 제가 기억하자면 이렇게 언급하고 있는 아우구스투스, 손권, 도쿠가와, 그리고 그 유명한 위선의 상징, 정치적 투쟁 자체가 살기 위한 투쟁이었던 '유비'가 있습니다.

천둥이 무섭다고 천하의 조조 앞에서 벌벌 떨면서 젓가락을 떨어뜨린 홍콩 금장상급 연기를 선보인 중국 역사상 최고의 연기파 정치인입니다.

조조도 속았고, 키케로도 속았습니다. 그리고 도쿠가와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도요토미에게 자신을 숨깁니다. 2인자는 어쩔 수 없는 2인자거든요. 2인자는 1인자의 말 한 마디, 손가락질 한 번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아직 공인받지 못한 상징적인 1인자(카이사르가 지명한 후계자의 자격)도, 위협을 모두 물리쳐야만 공인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살고 봐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특히 아우구스투스는, 시오노 나나미도 이야기했듯이 카이사르의 죽음에서 절대적인 교훈을 얻습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교훈 말이죠. 말 그대로 죽으면 끝입니다.

2인자가 1인자가 되기까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지 말아야 한다'는 것, 죽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입니다. 꿈도 야망도 다 날아갑니다. 포부는 살고 난 다음에, 위협을 모두 제거한 다음에 펼쳐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2인자의 숙명입니다.

정치인이여, 이들에게 배우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입니다. 일상 속에서도 정치가 필요할 때가 많은데, 하물며 정치인들은 어떨까요? 정치란 결국 갈등과 상황에 따른 대처이며, 입장에 따른 대처거든요. 철저하게 나와 남을 알아야 하며, 그에 따란 신념과 이론도 굳건해야 됩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저들만큼의 확고한 매력과 신념을 우리에게 선보인 적은 없습니다. 연기력이 엉성해 어이없는 말 실수를 남발하는 정치인도 있고, 성추행이나 술주정 등의 막 나가는 행동을 벌이는 이들도 있어요.

그래서는 정치를 지탱하기 위한 힘의 축, 숫자의 힘을 모을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위인들은 모두 '숫자의 힘'은 확고하게 지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치적 투쟁은 올곧은 선(善)의 이상만으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권력을 얻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벌어야 하며, 그 투쟁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힘'이라는 추진력도 필요하죠. 이들의 투쟁은 모두, 정치적 명분과 이상을 위해 어떻게 힘을 모았고 어떻게 지켰는지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를 그렇게도 극찬한 이유도 그걸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의 생각이 그럴 것이란 생각 아래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동양의 역사적 인물들을 끌어들였구요. 보세요. 모두가 심지가 깊고 굳센 사람들입니다. 가볍게 말하고 가볍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선을 앞두고 이런 인물들이 자주 생각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통령 하겠다는 분들 중에서는 이런 인물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이야기한 것이며, 그러고 나니 슬퍼집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 이야기> 응모글

덧붙이는 글 <로마인 이야기> 응모글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카이사르 #삼국지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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