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악수 한 번 할까요?"

말로만 듣던 직장상사 스트레스를 경험하며...

등록 2007.07.19 14:02수정 2007.07.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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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열정과 아쉬움의 끝

잡지사 첫 출근을 앞둔 나는 입이 바짝 마르는 현상까지 보이며 긴장했었다. 인턴 생활이 녹록치 않으리라 말하며 그 마음가짐을 몇 번이나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며 스스로 다독거렸다. 첫 출근을 하고 한 고비는 넘겼다는 생각에 뿌듯해 하며 온갖 멋진 상상들을 싣고 퇴근을 했었는데 불과 이주일 후 나는 출입카드를 반납하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뒤돌아서야 했다.

참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풀리던 순간 웃음이나 울음 따위의 감정이 뒤섞일 줄 알았는데 정작 제일 먼저 느꼈던 것은 배고픔이었다. 본능에 충실한 나를 느끼며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바늘을 보며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정확한 것이 한 가지는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일이 힘들어서 나왔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이해해 줄지 모른다. 하지만 힘든 일은 없었다. 첫 취재를 나가던 날의 긴장과 설렘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인터뷰를 따내고 받아 적은 수첩을 보며 나도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성취감에 빠져 있었다.

몇 안 되는 사람들

행복한 일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웃으며 일 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내가 이 두 가지 물음에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취재 다음날 나는 모든 짐을 챙겨서 나왔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나 불쾌한 직장 상사는 있기 마련이다. 또 그런 상사 밑에서 잘 참고 일하는 것이 사회에 적응하는 첫 단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첫 단계는 완전히 무시하고 두 번째 단계부터 가고 있었던 것이다. 27살의 나이 어린 여자 팀장의 이유 없는 무시와 질타 속에서 나는 살아남지 못 한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설명 할 수는 없지만 단 한 가지 말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는 너무 '척'이 심했다는 것이었다. 모두의 의견을 듣기 위해 모인 회의 때도 들리는 목소리는 오로지 그녀 목소리뿐이었다. 그녀에게는 사장도 편집장도 없었다. 경력있는 자신만이 이 모든 것을 진행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었던 모양이다.

인턴인 나와 취재 일정을 비교하며 업무량이 많다고 매일같이 한탄하던 그녀였다. 일할 때는 초보이고 싶고 말할 때는 팀장이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자’ 라며 이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더 했다. 일을 못 해서 꾸중을 듣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별 다른 감정이 없었지만 내가 정작 ‘이건 아니야’ 라고 정신을 차렸던 이유는 바로 명함사건 때문이었다.

소심한 마음 혹은 인격무시

기자라는 직책으로 명함이 나오던 날 명함에 찍힌 이름을 보면서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은 엄마와 아빠였다. 그 찰나 많은 것이 생각나고 또 지나갔다. ‘이제 다 잘 될 거야’라는 부질없는 마음이 그때에도 가득했었다. 팀장의 명함도 같이 왔었기에 나는 서로의 명함을 교환하자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며 사진기자한테 명함을 건네는 팀장에게 “저도 팀장님 명함 갖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 그 자체였다. “내 번호 알고 있잖아요”, “우리 그냥 그런 쓸데없는 거는 생략하죠” 순간 나와 사진기자님은 어색한 웃음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호의와 배려를 준 적 없는 사람은 받는 것도 못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날 사진기자의 위로가 없었다면 나는 한강에 가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한강에 괴물도 없어!!”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주정을 부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못 다한 이야기

명함 사건 이후 나 또한 급냉랭해졌고 더 이상 일 외적인 것에 지적 받는 것도 스트레스 받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얼마 전 <상사로부터 듣는 고마운 충고와 불쾌한 충고>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1346명을 대상으로 '직장 상사로부터 들어본 가장 고마운 충고'를 설문한 결과, 35.3%가 '업무 노하우를 알려주는 충고'라고 대답했다. 그 뒤는 26.2% 의 ‘업무상 실수를 지적해 주고 수정해주는 충고’였다. 대부분의 아랫사람들은 상사의 지적과 충고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나의 발전을 위해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직장상사에게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반면, 가장 불쾌했던 충고로는 직장인 28.5%가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충고'를 꼽았으며 '자존심을 뭉개는 충고'가 19.7% 였다.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인격적으로 무시당하고 자존심 뭉개지며 사회라는 곳을 배웠다. 실은 나의 퇴사 1시간 전 이미 사진기자가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추후에 편집장과의 이야기에서 알게 된 사실은 팀장이 사장과 편집장에게 사진기자가 노력도 안하고 열정적이지 않다는 말을 전했다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움과 함께 첫 직장을 잡았다며 좋아하던 사진기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스쳐지나갔다. 순간 '팀장과는 말 잘 안 하고 나하고만 잘 맞아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직급을 괜히 주는 게 아니니까. 나는 마지막 나오는 길 꼭 하고 싶던 말들을 편집장에게 전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편집장이 내게 “우리 악수 한번 할까요?” 라며 악수를 청했다.

순간 아쉬움과 시원함이 교차했다. 내가 편집장과 나눈 악수는 아마도 그곳에서의 가장 좋은 추억이리라 속으로 말하며 좋은 모습으로 이곳에서 꼭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편집장의 말에 적어도 내가 이 사람한테 만큼은 인정받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급한 마음에 이렇게 변명을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지만 결론은 참지 못한 내가 제일 문제라는 걸 알고 있다. 이렇게 값진 경험을 안겨준 미운정 든 그들에게 한편으로는 고맙다. 나의 못난 실력을 채우고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아직 젊다는 것에 또 한 번 감사하다.
#기자 #명함 #인턴 #직장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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