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세상에서 산소처럼 살 수 있어요?

[TV야 뭐하니?] 케이블방송 tvN <막돼먹은 영애씨>

등록 2007.07.20 16:56수정 2007.07.2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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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막돼먹은 영애씨가 드디어 단식원을 뛰쳐나왔다. 케이블방송 tvN이 제작하는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주인공 이영애(김현숙 출연)가 지난 13일 방송분에서 지긋지긋한 회사를 그만두고 오랜 숙원이었던 다이어트를 위해 단식원에 들어갔다가 식욕을 참지 못하고 도중에 도망을 나온 것이다.

<막돼먹은 영애씨>라니, '친절한 금자씨'와 '산소 같은 이영애'를 종합적으로 연상시키는 이 제목은 얼핏 성의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출산드라' 김현숙이라는 개그우먼의 존재를 아꼈던 나로서는 그녀가 이렇듯 이영애의 이미지를 소비하려는 의도가 대번에 보이는 듯한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못마땅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라며 날씬하고 예쁜 친구들의 자랑거리를 우습게 만들어버리던 그녀가, 축복받지 못한 비쩍 마른 몸매를 불쌍히 여기던 '출산드라' 그녀가, 왜 결점 하나 없이 예쁘고 하늘하늘하며 잘 나가는 이영애에 편승하려는 것일까?

왜 '막돼먹은' 것이 과연 영애씨인가

이 오해는 '막돼먹은' 것이 과연 영애씨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면 풀린다. 이 드라마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화도 좀처럼 내지 않을 것 같은 이영애씨의 이미지를 뒤집어 비꼬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스타들이 구축한 이미지의 세계와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목은 이영애를 연상시키도록 지었지만 이영애의 이미지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틀고 있다. 그리고 다른 방송국의 여타 드라마들이 스타들의 이미지를 이리저리 꿰어맞추며 현실감 떨어지는 세계의 재연에 몰두하는 것과 명확히 차별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매회 붙는 소제목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할까?"나 "웃으며 안녕… 은 개뿔"이라는 소제목은 드라마의 로망은 현실에서 그리 효력이 없음을, 그리고 이 드라마가 로망이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려는 의지를 공표하는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정말로 숫자에 불과했던 적이 있었나요?

뚱뚱한 노처녀들이 자기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일과 사랑의 고군분투를 그린 대표적인 드라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 있다. 이 두 드라마를 비교해 보면 비교적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긴 했지만 드라마의 로망에 충실한 것과 그 로망을 강단 있게 깨어버리려는 것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다큐드라마'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붙이고 있는데, 다큐멘터리의 개념이나 제작 기법 등을 빌어다 쓴다든가 하는 직접적인 연관보다는 현실의 진실성에 접근하려는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촬영 장소도 세트장이 아니라 굳이 촬영 진행이 불편한 현실 공간을 고집하는 것도 그 태도에서 비롯된다.

영애씨는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되어가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 내 옆의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가위로 오려다가 움직이게 만든 것 같다. 그런데 막돼먹지 못한 인생들이 볼 때 영애씨는 좀 더 과감한 면이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것이 '막돼먹었다'는 평가를 받을만한 언행들인데, 이를테면 영애씨의 육중한 몸매를 비웃고 성희롱을 일삼는 남자 상사들에게 일부러 커피를 타주겠다며 가래를 터억 뱉어서 섞어준다든가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불끈불끈 성질 치밀게 만드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막돼먹은 영애씨의 대처법은 비록 의연하고 정의롭지 못하지만, 막돼먹은 세상을 살아가는 자잘하고 치사해서 오히려 지혜로운 방법일 수 있다.

결국 막돼먹은 것은 영애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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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결국 막돼먹은 것은 영애씨가 아니라 영애씨를 이영애의 이미지와 자꾸만 비교하고 비웃는 사회다. 영애씨가 분노를 일으키는 지점은 주로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에서 비롯된다. 서른 살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도 못하고, 회사의 연하 후배에게 연정을 품지만 표현하는데 두려움이 앞서고, 회사의 상사들은 뚱뚱한 여자는 감정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이 낄낄대며 놀려대고, 예쁜 동생은 언니 눈앞에서 연애질로 고민하며 부아를 돋우고, 결혼 못한 딸이 창피한 엄마는 거짓말을 일삼으며 영애를 실망시킨다.

그렇다고 영애씨 VS 영애씨 이외의 인물들이 재수 있는 캐릭터와 없는 캐릭터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구분이 뚜렷했다면 이 드라마는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대머리 사장은 외로움에 찌든 기러기 아빠이고, 절친한 회사 동료는 예쁘고 날씬해도 이혼녀로 퍽퍽하게 살아가고 있고, 바람피우는 남편 때문에 고생했던 엄마는 이제야 가정 밖의 삶을 알아나가고, 대비되는 자매로 영애씨를 주눅들게 하는 동생 영채는 외모와 상관없는 감정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많은 인물들의 재수 없는 면과 애틋한 면을 균형 있게 배치하면서 산다는 것은 비슷비슷하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영애씨의 고군분투는 자칫 막돼먹은 세상인데도 인간적인 애틋한 정 때문에 "다 그렇지 뭐" 하며 무기력하게 인정하지 않게끔 중심을 잡아 준다.

초반에 영애씨는 자기비하하는 영애씨였다. 비록 막돼먹었지만, 살을 빼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괴로운 영애씨였다. 회사 후배인 꽃미남 원준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런 욕망은 더욱 커졌다. 혹 이런 욕망을 끝끝내 실현하는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처럼) 혹은 계속 실현을 꿈꾸는 영애씨였다면 그 인물은 음지의 루저(LOOSER)형 캐릭터에 불과했을 것이다.

영애씨, 단식원을 뛰쳐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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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그러나 영애씨는 단식원을 뛰쳐나왔다. 짝사랑하던 원준 앞에서 삼사 인분의 식사를 시켜놓고 쩝쩝거리며 맛나게 먹었고, 온갖 종류의 과자에 파묻혀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난 이렇게 살아야 할까봐"라고 말했다.

루저가 아니라 자기 긍정의 힘을 가진 진취적 캐릭터로 확고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배우 김현숙도 "먹다 지쳐 잠이 들면 축복을 주리라"면서 복음을 전하던 '출산드라' 이미지로 돌아왔다.

그 회 마지막에 원준은 드디어 영애에게 사귀자고 말을 꺼냈다. 얼굴은 조금 빤질하지만 능력이 딱히 출중해 보이지 않는 원준은 현빈처럼 노처녀들의 로망을 건드릴 캐릭터는 아니다. 그러나 영애씨가 뚱뚱하고 못생긴 채로 계속 살겠다고 하는 순간 사귀자고 한 것이다. 다음 회가 기다려지지 않을 수가 없다.

막돼먹은 세상에는 막돼먹은 뻔뻔함으로, 치사할지언정 주눅이 들지 않는 자기 긍정의 힘으로 세상에 맞장 뜨면서 살아갈 배포가 필요하다. 막돼먹은 세상에서 산소처럼 살아가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방송 #드라마 #다큐드라마 #TVN #막돼먹은 영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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