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떼에 무방비, 얼굴은 멍게가 되고...

복숭아 서리, 주인은 피했지만

등록 2007.07.22 18:34수정 2007.07.2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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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고? 야 이눔들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이 번쩍했다. 깜짝 놀라 냅다 뛰었다. 깜깜해서 천지가 보이지 않았지만 무조건 앞으로만 내달렸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학교도 가지 않는데다 객지에 나가 공부하던 아이들도 돌아와 마을은 늘 분주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그날도 밤이 되자 아이들은 집안의 더위를 피해 우리나라 3대 정원의 하나인 서석지(瑞石池) 정자로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모기도 없고 연못이 있어 유난히 시원한 곳이다.

바로 이웃인 우리 집에서는 떠드는 소리만 들어도 누가 왔는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저녁을 일찍 먹은 나도 삶은 옥수수수 하나를 입에 물고 정자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은 분위가 심상찮다. 약간의 긴장감마저 들었다. 옆에 있던 수남이의 얘기를 들어 보니 낮에 몇몇이 모여서 오늘밤 건너 마을 선바위에 있는 복숭아 과수원을 털기로 했단다.

'아, 그랬었구나.' 그러고 보니 복장도 평소와 달랐다. 좁은 마을에서 특별한 일 없이 지내다보니 모두들 몸이 근질근질 했던 모양이다. 나는 약간의 흥분도 되었지만 덜컥 겁이 났다. 원래 성정이 소심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결벽증까지 있는 모범생(?)인 내가 남이 애써 지은 1년 농사를 서리해서야 되겠는가? 잠시 갈등하다가 또래에서 빠질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나도 기꺼이 동참하기로 하였다. 그래 봤자 가면 어차피 망이나 볼 것이니.

어느덧 시간은 흘러 정자의 널따란 대청마루 여기저기서 떠들며 놀던 조무래기 아이들이 깊은 잠에 빠진 으슥한 시간 우리는 하나둘씩 일어났다. 나도 대청마루 아래에서 발에 대충 맞는 고무신을 꿰어 신고 말없이 마을을 빠져 나와 느티나무 아래 강변으로 모였다. 잘그락거리는 자갈돌 소리가 오늘 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수남이 용선이 원기 상태 도이 희섭이 그리고 나 일곱 명이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복숭아를 따 담을 소쿠리와 이것을 담아 올 비료포대는 물론 탱자나무 울타리를 타고 넘어갈 가마니까지 가져다 놓았다.

'짜식들 제법인데...' 속으로 감탄하면서 이제 강을 건넌다. 각자 임무도 대충 정해졌다. 이런 일은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상태가 주도하고 서툰 나는 예상대로 밖에서 복숭아를 받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역할이다. 어제 내린 비로 강물은 불어 있었지만 바지를 걷고 건널 정도는 되었다. 저 멀리 선바위 하류 쪽에서 낚시를 하는 모양이다. 남포등 불빛이 반짝인다.

담배 밭고랑에 납작 엎드려 과수원 안 동태를 살핀다. 원두막 불빛도 보이지 않고 밤이 깊어 풀벌레도 울지 않아 주위는 쥐 죽은 듯 고요하고 복숭아 특유의 단내가 바람에 확 풍겨 왔다.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이때 누군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 그동안 동네 형들을 자주 따라다니며 이런 일에 이력이 난 상태가 앞으로 나아가 탱자나무 울타리에 가마니를 척 걸치면서 얼른 넘어 갔다. 뒤이어 두어 명이 넘어 갔을까 싶었는데 갑자기 고함 소리와 함께 손전등 불빛이 밤하늘에 서치라이트로 휙휙 돌아갔다. 너무 놀라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다들 우르르 흩어져 달아났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내 뒤에 누군가가 따라 오고 있었다. '잡히면 낭패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다가 아뿔싸! 그만 발을 헛디뎌 언덕 아래로 굴렀다.

"괜찮나?"

정신을 차려 보니 뒤 따라 오던 사람은 수남이었다.

"응, 그런데 신발이..." "왜? 신발 잃어버렸나?"

내가 대답 대신 더듬대고 있으니 급하다며 그냥 가자고 했다. 돌아보니 손전등 불빛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한쪽 신발만 신은 채 뛰었다. 걱정이 된 수남이가 앞에서 길안내를 했지만 발바닥이 아파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나를 두고 혼자 갈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수남이가 근처 수리조합(여름철 가뭄을 대비하여 천수답에 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를 설치한 가건물)으로 나를 재촉했다.

장마로 인해 가동을 하지 않아 건물은 비어 있었다. 수남이가 먼저 들어갔다. 뒤 따르던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곳에 들어갔다가는 과수원 주인이 들이 닥치면 독안에 든 쥐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안 된다고 나직이 수남이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부를 수도 없었다. 손전등 불빛은 다가오고 나는 급한 나머지 물을 퍼 올리기 위해 강에 연결된 커다란 파이프를 타고 내려가 강가의 작은 버들가지 숲에 몸을 숨겼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측대로 손전등을 든 과수원 주인이 올라와 수리조합 건물 안을 살폈다. 큰일났다. 수남이는 잡히고 말 것인가? 나는 가슴이 콩닥거리고 다리고 후들거렸다. 한참 후 손전등 불빛은 그냥 나왔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수남이는...? 그때 저 멀리서 또 하나의 불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낚시를 하던 사람이 과수원 주인의 고함소리와 불빛을 보고 무슨 일이냐며 올라왔다. 아이들이 복숭아 서리를 왔다가 달아나는 걸 보고 쫓아 왔는데 며칠 전에도 어느 놈들이 복숭아를 엄청 따 갔다며 그래서 아예 울타리 밑에서 잠복을 한다며 흥분하여 설명하니 낚시꾼도 그런 애들은 반드시 붙잡아 모든 걸 변상 시켜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아, 그래서 울타리를 넘자마자 바로 들켰구나!)

그나저나 내가 숨어 있는 바로 눈앞에서 두 사람은 가지 않고 담배까지 피우면서 이제는 집안의 안부를 묻고 누군가의 흉을 보느라 두런두런 자꾸만 얘기가 길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모기가 엄청 달려들었다. 그때서야 다리가 아파 가만히 살펴보니 도망 오다 넘어져 다친 무릎에서 피가 나고 얼굴과 팔이 나뭇가지에 긁혀있었다. 모기들이 피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또한 올봄 모내기 때 비가 오지 않아 수리조합에서 물 퍼 올리는 기계를 돌보던 사람들이 숙식하면서 음식물 찌꺼기를 이곳에 모아 놓아 모기가 서식하기 좋은 곳이었다. 눈앞에 과수원 주인이 있어 옴짝 달싹 못하는 내가 모기를 맘대로 쫓을 수도 없어 무차별 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견디다 못해 아예 옷을 입은 채 가만히 물속에 몸을 담갔다. 그러나 내어 놓은 얼굴에는 무더기로 달라붙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추웠다. 그리고 물에 잠긴 상처 난 다리는 쓰리다 못해 쥐가 날 지경이었다.

좀처럼 가지 않을 것 같던 과수원 주인과 낚시꾼이 드디어 돌아갔다. 그래도 혹시나 들킬까봐 한참을 기다려 나도 그곳을 빠져나와 강을 건넜다. 그제야 같이 간 아이들이 궁금했다. 모기에 뜯긴 얼굴은 멍게가 되어 눈도 뜨지 못하고 옷은 물에 흠뻑 젖었고 한쪽만 신발을 신은 채 절름거리며 정자로 돌아 왔다.

다들 무사히 왔구나. 걱정했던 수남이도 있었다. 그는 그때 수리공사 건물에 들어갔는데 모기가 엄청 많아서 바로 뒷문으로 나왔으나 나를 찾지 못해 산길로 멀리 돌아 왔단다. 처참한 내 모습을 본 친구들이 깜짝 놀라서 어떻게 된 거야 면서 물었고 내 자초지종을 듣고는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 다들 멀쩡했다. 거기다가 희한하게 복숭아 파티까지 벌이고 있었다.

조무래기 아이들까지 깨어나 복숭아를 먹으면서 형들의 오늘밤의 무용담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에 흠뻑 젖어 떨고 있는 나에게 복숭아 하나를 쥐어 주면서 상태가 하는 얘기는 이랬다.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자마자 고함소리가 나 얼른 깨밭으로 들어가 메고 간 다래끼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숨어 있다가 주인이 우리를 잡으러 간 새 마음껏(?) 복숭아를 따 왔단다.

내가 그의 대담함이 어이가 없어 "너 병원에 가 봐라" 라고 하니 그가 "왜"라며 쳐다봤다.
"간뎅이가 부었구나"해서 또 한바탕 웃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방에 들어가 누웠다. 모기에 물린 퉁퉁 부은 얼굴이 화끈 거렸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잃어버린 신발을 찾을 일이 태산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심한 열병으로 병원신세를 졌다.

덧붙이는 글 |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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