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기에게 물리기로 했다

파리·모기도 한 목숨, 나도 한 목숨...

등록 2007.07.23 09:55수정 2007.07.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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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월든>을 읽고 나서 모기에 물리기로 했다. <월든>에 나오는 말을 보자.

"이른 새벽에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앉아 있노라면 모기 한 마리가 들릴 듯 말 듯 잉잉거리며 집 안을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나는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이 날고 있는 모기 울음소리에 어떤 이름난 사람이 만든 교향곡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우주가 내는 소리였다."

누구나 더운 여름이 오면 모기 때문에 몸 마음이 다 힘들 것이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모기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모기에 물리자고 하니 미친 소리 듣기 딱 알맞다.

나는 지지난해 봄에 <월든>을 읽었다. 좋은 책 하나가 삶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월든>을 읽고 나서 알았다.

아무튼 나는 그 책을 읽고 나서 내 피를 빨아먹는 모기를 죽이지 않는다. 나는 서울에서 책방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 여름이면 내 책상 밑으로 모기가 한두 마리 산다. 윙윙거리다가 소리가 나지 않으면 내 몸 어딘가에 살포시 앉아 피를 빨아먹고 있다. 나는 <월든>을 읽고 나서 모기가 내 피를 빨아 먹도록 가만히 놔둔다. 한 세 번쯤 물리고 나면 모기에게 다소곳하게 말을 건다.

"애야! 내가 지금 아프다. 네가 내 피를 빨아먹어서 내 몸이 간지럽고 힘들어! 이제 그만 먹으면 안 되겠니?"하고.

그러면 모기는 그만 내 피를 빨아먹고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간절하게 말을 했는데도 자꾸 물면 한 번 더 간절하게 말을 하고 자리를 옮긴다. 나는 이런 일에 기쁨을 느낀다. 내가 모기와 말을 나눈다는 것이 기쁘다.

사람 피를 먹는 모기는 암컷이다. 그것도 뱃속에 알을 품고 있는 암컷. 사람 피를 먹어서 자기 새끼를 잘 낳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모기가 알을 잘 낳으라고 사람 피를 주어야겠느냐고.

사실 내가 아프리카에 산다면 모기에게 피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곳에 있는 모기는 말라리아를 잘 퍼뜨려서 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으니.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있는 모기는 말라리아를 많이 퍼뜨리진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편하게 살려고 온갖 기계들을 만들면서 지구가 더워지고 우리나라도 사람 목숨을 없애는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러면 나도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할 것이다. 모기가 내 몸에 붙으면 손으로 저어 쫓아내거나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땅에서 목숨 있는 모든 것은 제 목숨대로 살아야 한다고. 그러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사람 목숨이 귀하냐, 모기 목숨이 귀하냐? 물론 사람 목숨이 귀하다. 하지만 모기 몇 방 물린다고 사람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모기는 사람이 때린 손에 목숨을 잃는다.

물론 말라리아나 뇌염을 퍼뜨리는 모기가 많이 나와서 나를 문다면 나도 물리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나는 지난 몇 해 동안 모기에 물렸지만 죽지 않았다. 이러다가 진짜 모기에 물려서 죽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나를 문 모기를 죽이고 싶지 않다. 모기를 죽이는 일을 할 수 없다. 나는 살면서 꽃을 한 번도 꺾어본 적이 없다. 아름다운 꽃 모가지를 댕강 자를 마음이 나지 않는다. 내가 모기를 죽이지 않으려는 것도 그런 마음이다. 소로우가 쓴 <월든>을 읽고 이런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또 몇 해 앞서 책 하나를 읽고 나서 파리를 잡지 않는다. 나는 책방 일을 하면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닌다. 밥을 먹고 있으면 파리가 날아든다. 내 밥에 파리가 붙어서 밥을 먹어도 그대로 놔둔다. 아니 파리가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밥뚜껑에 밥풀을 한두 개 담아 두고 이렇게 말한다. "파리야! 네가 내 밥에 앉아 밥을 먹으니 내가 싫구나. 여기에 네가 먹을 수 있는 밥이 있으니 이것을 먹으면 좋겠다"하고 마음 속으로 파리를 보고 말을 한다. 그러면 파리는 내 밥 위를 날아오르다가 내가 준 밥풀에 앉아 밥을 먹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밥을 다 먹고 나면 반찬 그릇은 치우지만 밥그릇은 잠시 그대로 둔다. 밥찌꺼기를 파리가 먹을 수 있도록 벌려 놓는다. 파리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책을 읽고 나서다. 하이타니 겐지로가 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읽고 나서다. 데쓰조라는 아이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를 잃고 할아버지랑 같이 산다. 데쓰조는 언제나 외톨이로 지냈는데 그 아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동무는 바로 '파리'다. 데쓰조가 사는 동네는 쓰레기더미가 많은 곳이어서 파리가 많다. 데쓰조는 수십 가지 파리를 모은다. 파리를 죽이지 않고 모은다.

사람들은 파리가 더럽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모든 파리가 똥을 먹거나 나쁜 병균을 옮기는 것은 아니다. 데쓰조는 파리 공부를 하면서 이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그 책을 읽으며 파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파리를 잡아 죽이지 않는다. 파리가 내 먹을거리를 먹으려고 하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조금 떼어 주면 된다.

아무튼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모기와 파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 좋아하기보다 그들을 잡아 죽이지 않는다. 모기가 많은 밤에는 모기장을 치고 자고 파리가 많이 날아와서 내 밥을 먹으려고 하면 밥뚜껑에 좀 더 많은 밥풀을 남긴다.

하기야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할지 모른다. 모기와 파리가 극성을 부려 사람을 마구 죽이거나 사람이 살 수 없도록 귀찮게 한다면 나도 그들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기 한 마리도 한 목숨을 갖고 있고 파리 한 마리도 한 목숨 갖고 있다. 나도 한 목숨 갖고 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 목숨이나 내 목숨이나 똑같이 귀한 목숨 아닐까. 이런 생각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내 손으로 모기와 파리를 죽이면 내가 읽었던 <월든>을 쓴 소로우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 나오는 외로운 아이 데쓰조가 자꾸 눈에 밟혀서 그럴 수 없다. 다른 이들이 모기를 잡고 파리를 죽이는 것이 편하듯이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내 마음 밭에 평화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모기와 파리에게 말을 걸다 보니 그들이 말은 못하지만 내 느낌을 받고서 내 피를 덜 빨아먹고, 내 먹을거리를 덜 더럽힌다는 것 같다.

<데미안>을 쓴 헤르만 헤세는 숲에 들어가서 숲에 사는 것들과 말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고 그 꿈을 이루었다고 한다. 혹시 나도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아닌가. 더운 여름날 모기에 뜯기고 파리에게 내 먹을거리를 나눠주면서 말을 하다 보면 다른 풀벌레들과 말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모기 목숨, 파리 목숨을 귀하게 여기다 보면 사람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까.

미국에 있는 어느 대통령처럼 자기 배를 불리자고 가난한 나라 아이들 목숨을 죽이는 일은 벌이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대통령은 아침마다 하나님에게 기도를 한다니 그가 모시는 하나님은 사람 죽이는 일을 시키는 하나님인가 보다. 그런 하나님을 모시는 그 대통령은 모기 목숨보다 나을 것이 없다.

- 2007년 7월 22일 더운 여름,
모기와 파리가 내 가까이 있는 날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덧붙이는 글 | <여름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에 내는 글

덧붙이는 글 <여름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에 내는 글
#모기 #파리 #윌든 #조지 데이빗 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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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019년 6월 11일까지 26년 동안 꾸렸어요. 그 자리는 젊은 분들에게 물려 주었어요. 제주시 구좌읍 세화에 2019년 7월 25일 '제주풀무질' 이름으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새로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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