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노조원을 수사하는 한 경찰관의 소회

[반론] <서울신문> "이례적 지문채취 파문" 보도

등록 2007.08.03 14:36수정 2007.08.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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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의 오이석 기자는 8월 3일자 10면에 "경찰, 이랜드 노조원 33명 묵비권 행사 신원확인 거부에 이례적 '지문채취 영장' 파문"이라는 제하로 민주노동당 윤현식 정책연구원 등의 말을 빌려 경찰의 지문채취 영장 집행이 '논란'이 일고 있고, 그래서 인권단체와 노동계에서 '반발'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필자는 이 보도와 관련된 연행자 중 10명을 분산 호송하여 조사한 경찰서의 수사과장이다. 보도한 오 기자와 그 기자에 의해 인용된 민주노동당 윤현식 정책연구원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바로잡고자 한다. 일반 범죄자나 시민들이 자칫 잘못 알고 인식하게 되면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영장발부를 통한 지문채취의 배경과 필요성

최근 몇 년간 시민들의 인권의식은 신장되었다. 따라서 경찰에서 조사를 받게 되는 범법자들도 '묵비권'과 '변호인 등 접견교통권'에 대해서 강력하게 요구하고 실천하고 있는 추세다. 당연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인권보장과 수사효율을 위한 상호 투쟁이 어떤 균형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과거 강제 지문채취는 영장 없이 시행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반발을 샀고, 수사기관은 적정절차 위반과 인권침해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인적사항 등 인정신문조차 묵비할 경우 형소법에 규정된 '검증영장'을 신청, 청구하여 지문채취를 하고 있다.

결국 기사의 '이례적'이란 표현은 기자가 폭넓고 심도 있는 취재가 부족하여 저지른 잘못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사간 마찰로 업무방해 등 범법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연행자들은 목적을 달성하고 난 뒤 경찰조사에서는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 묵비한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33명의 묵비권 행사가 '이례적'이었다.

자기 신원의 인정신문에 대한 묵비권 행사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나 판례상으로도 일치된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이랜드노조원 중 우리 경찰서로 연행돼 온 10명 중 4명은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일체 진술을 거부했고 수사관들은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연행돼 온 첫날, 민주노총 변호사가 연행자 10명과 접견을 하는 자리에서도 그 4명은 변호사에게 조차도 자신의 신분을 말하지 않아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유치장에 입감된 이후에 다시 변호사가 요청하여 접견이 이루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다른 범죄도 아니고 확신범인데, 자기 신분을 굳이 안 밝힐 이유가 없으니 신분정도는 말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했으나 그 4명은 끝내 거부했다.

그 4명은 같이 연행된 다른 6명에게도 '모르는 게 차라리 낫다'며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체포시한까지 실랑이만 벌이다가 석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법원에 검증영장을 신청, 청구한 것이다.

논란이 되거나 반발감이 된다고 생각하는 인권단체나 노동계에서는 자기 신원조차 밝히지 않는 범법자에 대해서 어떠한 대안이 있는지 수사기관으로서 가르침을 받고 싶다.

현장에서 압수, 수색, 검증? 또 다른 인권침해 불러올 것

오 기자가 밝힌 "현장에서 함께 연행된 노조원들로부터 충분히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윤현식 정책연구원의 주장은 바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실이 아니고 그 연구원의 주장일 뿐이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보면 이해가 간다. 언론보도에는 노조원 197명으로 되어 있지만, 이번 업무방해 시위에서는 해당 노조원이 아닌 사람이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끝까지 인적사항을 숨겨야 했는지도 모른다.

윤현식 정책연구원의 주장에 따르자면, 검증영장을 발부받지 않고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다. 그것은 바로 현행범 체포현장에서 압수, 수색, 검증을 해버리는 방법이다. 현행범 체포현장에서는 영장 없이 압수, 수색, 검증을 할 수 있음을 윤현식 정책연구원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현식 정책연구원도 안다. 혼란스러운 체포현장과 분산, 호송 현장에서 연행자들의 소지품에 대해 압수, 수색, 검증할 수 없고, 또 그러한 과정에서 인권침해 시비가 크게 불거질 것이란 것을. 결국 윤현식 정책연구원의 주장은 인권침해의 시빗거리가 되지 못하는 법원 발부 검증영장의 집행에 대한 아쉬움으로 읽혀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장이란 굳이 '합법화된 강제력'으로 풀어 쓸 필요가 없음을 말씀드린다. 영장은 수사의 효율성 보장과 인권보호의 상호 투쟁으로 법치국가에서 정해진 '합법화된 강제력'인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합법화된 강제력도 쓰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진 않겠다.

이랜드 조합원 연행 유감이지만, 왜 신분 못 밝히나

일단 이런 시위사범이 연행되는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이 무척 유감이다. 사측과 정부에 대해서도 원망스럽다. 또 본질의 해결보다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단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사 경찰로서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고소·고발사건 등 민생범죄를 처리하는데도 손발이 모자란 수사 현실 때문이다. 정말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대부업 관련 범죄, 환경 범죄 등등을 수사해야 할 수사관들이 시위사범이 연행되면 모든 업무가 정지되어 버린다.

그 뿐 아니다. 연행에 항의하거나 집단 면회를 이유로 몰려온 시위자들로 인해 경찰서는 그 기간동안 뒤숭숭해진다. 유치장에서도 소란 및 항의로 보통의 몇 배가 넘는 혹독한 근무를 치러야 한다.

이럴 땐 노사분쟁에 있어 그 압박과 투쟁수단이 경찰과 수사기관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묵비권과 함께, 상관없는 사람의 면회 및 접견 절차도 다수의 힘으로 공권력을 무시하고, 일반 유치인과는 평등하지 않는 특혜를 요구하기도 한다.

다른 범죄인은 몰라도 시위를 하겠다고 참가한 사람들이 현행범으로 체포되고도 자신을 떳떳이 밝히지 않는 것은 시위의 목적을 생각할 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직 경찰관입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현직 경찰관입니다.
#이랜드 #경찰관 #묵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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