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DJ 만나서 조언 들어라

[정치 톺아보기 159] 남북정상회담 성공의 '첫 걸음'

등록 2007.08.22 10:43수정 2007.08.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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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8월 11일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도쿄납치 생환 34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해 미사를 보고 있다. 맨오른쪽에 손학규 정동영 김두관 후보의 얼굴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김당


이재정 장관이 동교동을 다녀간 지 30분쯤 뒤에 김 전 대통령 자택과 연결된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으로 통하는 골목길은 고급 승용차들로 가득 찼다. 이날 11시 30분부터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도쿄납치 생환 34주년 기념미사'에 초청받은 참석자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73년 8월 8일 당시 망명중이던 일본 도쿄의 한 호텔서 중앙정보부요원 6명에게 납치된 지 5일만에 동교동 자택으로 생환한 것을 계기로 이날을 '제2의 생일'로 삼아 해마다 가족, 비서들과 함께 서교성당이나 자택에서 기념미사를 지내왔다.

그러나 이날의 풍경이 다른 때와 달랐다. 이른바 '동교동계' 혹은 '동교동 가신'으로 통하는 DJ 비서 출신 정치인들이 '총출동'한 탓인지, 다른 해의 생환 기념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초대받지 않은 정치인들'이 대거 출현한 것이 눈에 띄었다. 범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군인 '손·정·이'(손학규·정동영·이해찬)와 김두관 전 장관이 그들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권노갑, 김옥두, 한화갑 등 동교동 가신 3인방이 앉아 있는 곳을 찾아가 '좌장'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한때 권 고문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정동영 전 의원도 만면에 미소를 짓고서 이들을 찾았다. 권 고문은 이들의 어깨를 가볍게 쳐서 친근감을 과시했다.

가신 3인방의 맞은편에는 권 고문의 '골프 멤버'인 이해찬 전 총리가 김상현, 한광옥 등 범동교동계 정치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이들과 별로 친분이 없는 김두관 전 장관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1시 반쯤 되자 자택과 연결돼 있는 도서관 지하 1층 강당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와 함께 등장했다. 그러자 '손정이'와 가신 3인방은 물론 모든 참석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 전 대통령을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노 대통령이 만사를 제쳐두고 DJ를 만나야 할 세 가지 '명분과 실리'

1시간 간격으로 동교동 자택과 김대중도서관에서 벌어진 두 광경은 집권 말기에 어렵사리 성사시킨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대사'를 앞둔 노무현 정부와, 오랜 산고와 진통 끝에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만든 '원조 민주당'의 모습으로 돌아온 대통합민주신당(이하 민주신당)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상회담 준비와 대선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 왜 1주일에 세 번씩이나 신장투석을 해야 하는 쇠약해진 노(老) 대통령을 찾아간 것일까. 다음날 <한겨레> 신문의 장봉군 화백은 이 같은 우화적인 풍경을 '정상회담 완전정복' 책을 쥔 노무현 수험생과 '대선해법 총정리' 책자를 쥔 통합신당 학생이 '김대중 선생' 앞에서 '족집게 과외'를 받는 장면으로 희화했다.

이처럼 언론이 관심법(觀心法)으로 본질을 꿰뚫고 있어 기분이 상한 것일까.

청와대는 16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조언을 받는 방안이 청와대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으나 아직 일정이 잡히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회동 여부에 대해 "검토중이지만, 아직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천 대변인도 김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 "괜한 오해나 시비가 있지 않을까 걱정한다"면서 "(면담) 계획이 잡히더라도 확대해석은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즉, 청와대 내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회동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정치적 오해'가 부담스러워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천 대변인은 10일 오후 정례브리핑 때만 해도 "김 전 대통령이 북한과 관련해 가장 경험이 많고 식견도 높기 때문에 당연히 조언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서도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노 대통령께서 직접 만나실지, 백종천 안보실장을 보낼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민은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노 대통령이 직접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 어떤 표정과 제스처로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정상회담 분위기와 성과가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은둔의 지도자' 김정일을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이끌어낸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경험과 노하우는 매뉴얼(지침서)과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상회담 준비기획단장을 맡은 이재정 장관도 "2000년에 매뉴얼을 워낙 잘 만들어 놓았더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게다가 속독을 즐기는 노 대통령은 보고서 이해와 흡수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무리 매뉴얼이 좋아도 보고서를 읽고 이해하는 것과, 당사자의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를 직접 대면 청취하는 것은 다르다. 더구나 1차 정상회담 때는 합의후 두 달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이번 회담은 비록 한 달 늦춰지긴 했지만 시일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이럴 때는 <한겨레> 만평처럼 '벼락치기'일망정 '족집게 과외'만한 게 없다. 또 비서실장(문재인-박지원)이나 안보실장(백종천-임동원)끼리 나눌 대화가 있고 대통령(노무현-김대중)끼리 나눌 대화가 있다.

결국 DJ를 만나는 것은 노 대통령이 만사를 제쳐두고 해야 할 일이다. 다음의 '세 가지 명분' 때문이다. 그것은 노 대통령에게 '일석삼조의 실리'이기도 하다.

DJ는 김정일 위원장을 가장 잘 아는 정치 지도자이자 국가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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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두 손을 맞잡고 있다. ⓒ 청와대


첫째, 청와대도 인정하지만, DJ는 김정일 위원장을 가장 잘 아는 정치 지도자이자 국가 원로다. 민족의 운명이 달린 국가의 대사를 앞두고 젊은 현직 대통령이 고령의 전직 대통령을 찾아 조언을 청하는 것은 귀감이 되는 미풍양속이지 '정치적 오해나 시비'를 걱정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5년마다 정권이 바뀌지만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정치군사외교의 전 분야에서 전권을 행사라는 최고 지도자이자 사실상의 '종신 국가수반'이다. 박지원 전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우리와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이고 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최고지도자를 통해서 북한 체제의 변화와 미래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정상회담이 실질적으로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는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해외 석학들을 두루 접촉했다. 심지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까지 면담했다. 이후락 전 부장은 바로 DJ를 도쿄에서 납치해 살해하려 했던 장본인이다.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람까지 만나서 김정일에 대해 철저히 연구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DJ는 김정일을 충분히 스터디한 뒤에는 그를 만나 어떤 표정과 제스처로 무슨 말을 할지, 이른바 가게무샤(影武者)를 동원해 '가상회담'까지 했다.

가게무샤는 일본말로 '가짜 무사'란 뜻이다. DJ는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두고 청와대 집무실에서, 평소에 북한 노동신문과 텔레비전 그리고 북한 사적을 보며 김정일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김정일 대역'을 앉혀두고 가상회담을 했다.

국정원은 처음 김 대통령이 가게무샤와의 리허설을 수락할지 걱정했으나 김 대통령은 "이렇게 좋은 제도가 있는데 왜 안 하느냐"며 가상회담을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게는 가게무샤가 필요 없다. 김정일과 대적했던 DJ가 있는데 '가짜 무사'가 필요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DJ 만남 자체가 민주평화 세력의 결집과 양당 대결구도의 복원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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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2002년 12월 20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박지원 청와대비서실장으로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축하난을 전달받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둘째,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과 만나는 것 자체가 민주평화 세력의 결집과 대동단결을 상징한다. DJ는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민주평화 세력의 대동단결과 범여권의 대통합을 통해 한나라당과의 전통적인 양당 대결구도를 복원할 것을 주장해왔다.

때 마침 범여권은 오랜 산고와 진통 끝에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민주신당의 창당으로 일단 통합의 틀을 마련했다. 국민의 외면으로 거의 소멸 단계까지 갔던 민주평화 세력이 이제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계기를 겨우 마련한 것이다.

우리나라 민주평화 세력은 '원조 민주당'의 전통과 함께 해온 40년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민주신당(143석)과 민주당(9석)이 정통성과 본류 다툼을 하고 있지만,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인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대북정책에 비추어 의석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민주신당이 민주평화 노선을 걸어온 정치세력의 본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켰던 '원조 민주당'의 모습으로 복귀한 '민주신당'이 창당의 걸음마를 막 떼는 이 시점에 노 대통령이 DJ를 만나는 것은 정당정치의 기본이자 그의 '의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노 대통령 스스로가 '원조 민주당' 분당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두 사람의 만남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대의'보다는 범여권의 대선구도 같은 '현상'에 함몰되는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DJ)의 사저를 방문했을 때 '대북특사 요청'이니 '호남 구애 행보'니 하는 구구한 억측이 난무했던 것에 비추어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은 크다.

노 대통령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경고를 무릅쓰고 '할 말은 하는' 대통령이 아니던가. 그런 노 대통령이 '정치적 오해와 시비'가 무서워 DJ를 못 만난다는 것은 논거가 약하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 5월 광주를 방문했을 때 열린우리당의 통합 움직임과 관련 "대의와 대세가 상충될 때는 대세에 따르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어떤 '대의'에도 불구하고 이제 열린우리당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노 대통령이 DJ를 만나는 것은 '원조 민주당'으로 복귀한 민주신당의 '대세'를 따르는 것이자 '분당의 빚 갚기'를 의미한다.

1차 회담 빗장 연 DJ 만나는 것은 2차 회담 성공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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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민족대축전 북측 당국대표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임동옥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2005년 8월 16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중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리문병'을 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셋째, 노 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빗장을 연 DJ를 만나는 것은 회담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DJ는 남북한 양쪽에서 존경받는 몇 안 되는 현존 인물이다. 그는 북측에도 30년 넘게 반독재민주화 투쟁과 평화통일 노선을 걸어온 정치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DJ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유일한 남한 대통령이자, 남북한이 체결한 4대 합의문서 가운데서 유일하게 북측 최고 지도자가 수표(서명)한 6·15 공동선언의 당사자이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2차 회담은 1차 회담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만나고 평양에 가는 것은 그와 회담을 가졌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예의'이다. 즉, 노 대통령-DJ의 면담은 DJ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넘어서 2차 정상회담의 성공에 힘을 싣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만나서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4년 전의 대북송금 특검 수용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다. 그것은 DJ에 대한 '예의'일 뿐 아니라 상봉을 앞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예의'이다.

북측은 최고 지도자가 수표한 6·15 공동선언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이는 지난해 5월 법원이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해 무죄를 확정판결하면서도 병합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을 이유로 박지원 전 장관을 법정구속했을 때 보인 북한의 반응에서 잘 알 수 있다.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는 지난해 6월 특별담화를 내 "(박씨에 대한 법정구속은) 화해와 단합, 통일에로 나가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민족적 처사로 낙인하면서 이를 단호히 규탄한다"고 비난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6월 17일 논평에서 "평양상봉의 민족사적 의의를 훼손하고 6·15 지지세력에게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면서 "민족 화해와 협력, 통일에 이바지한 사람들은 통일 운동사의 페이지에 남아 빛나게 될 것이지만 그에 해를 주는 자들은 두고두고 규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금강산을 방문한 이희호 여사와 박 전 장관 일행을 영접한 전금률 아태평화위 서기장 은 대북송금 특검으로 옥고를 치른 박 전 장관에게 "지난 4년동안 남쪽의 보도를 보면서 우리도 옥(교도소)에 있다는 느낌으로 지내왔다"면서 "우리 인민들은 물론 역사도 통일과업에 기여한 분들은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 또한 지난해 10월초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승계한다 해놓고 대북송금 특검을 했는데 특검만 하더라도 무리하게 강행해 수많은 희생을 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노 대통령이) 표 찍어준 사람들한테 승인받지 않고 분당했다. 그것에 여당의 비극이 있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을 만나서 조언을 듣고 지금이라도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특검으로 손상된 DJ와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결자해지'이자 제2차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첫 걸음'이다. 그것은 DJ 개인에 대한 사과가 아니고 역사의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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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의 미 거둘까? 지난 200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얘기를 나누며 행사장을 나오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 2007 OhmyNews
#노무현 #김대중 #박지원 #대북송금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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