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공들 사라진 구로공단, 떡볶이맛은 그대로

그녀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구로시장 떡볶이, 추석을 지키다

등록 2007.09.25 12:02수정 2007.09.25 15:3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옛 구로공단의 중심엔 다국적 커피 체인점이 들어섰다. ⓒ 나영준


a

왼쪽은 옛 가리봉역인 가산 디지털 단지역. 지금 옛 구로 공단의 분위기를 찾을 순 없다. ⓒ 나영준




"여러분, 여기는 구로 3공단 대운동장입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여섯시.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의 산업역군들을 고향으로 실어 나를 버스 수백여 대가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켠 채 탑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을 직접 만나 귀향을 앞둔 현재의 심정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70·80년대 매년 되풀이되던 아니 명절이면 빠질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어찌 됐건 한편의 장관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탑승 행렬. 버스는 출발 신호만을 기다리는 듯 뭉게뭉게 회색 구름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 설레는 발간 얼굴의 누나들.    

"이들은 각 회사에서 정성껏 마련해 준 귀향선물을 가슴 한 아름씩 안고 있습니다."

현장의 기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묘사는 틀리지 않았다. 내용이 부실했다. 선물 꾸러미에 뒤뚱이는 발걸음들. 하지만 가슴에 소중히 껴안은 것은 단지 회사에서 건네준 '명절용 선물세트'만이 아닌, 그녀들이 직접 준비한 정성이었다.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예전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추석 선물 사기 위해 몰리던 여공 누나들       


a

한 때는 서울의 3대 시장이란 이야기를 듣기도 했던 구로시장. 구로공단에 일하던 여공들의 중요한 소비처 였다. ⓒ 나영준



a

지금은 한산해진 구로시장의 옷가게 거리. 옛 추석 때면 길을 지나기가 힘들 정도 였다. ⓒ 나영준


각종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앞다투어 자리 잡은 가산디지털단지역(옛 가리봉역) 부근. 상전벽해다. 우뚝하고 번듯한 최신 건물들. 점심식사를 마친 이들이 다국적 커피업체 앞 분수대에서 느긋한 여유를 즐긴다.

"꼬마야, 이리 와. 누나들이 아스께끼 사줄게."

문득 그녀들의 포근한 손길이, 투명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잡힐 듯 하다. 70년대, 짧은 점심을 마친 여공들은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수백 명이 공장 입구에 모여 '아이차'를 빠는 것이 고작. 그래도 누나들은… 웃었다.

가리봉역에서 구로시장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거리. 버스를 타도 된다. 많은 이들은 걸었다. 추석을 앞둔 구로시장 입구. 그야말로 인산인해, 사람의 물결이었다. 입구에는 모자나 신발·허리띠 등을 팔았다. 흥정이 시작된다. 그 곳을 지나 좌회전하면 최종 목표, 옷가게 들이 기다린다.

"그 때 대단했지. 돈을 펴거나 셀 틈이 없어서 그냥 궤짝에다가 처박았다니까. 70년대 후반 우리 가게 매상이 명절 때면 200만원 이상이었지. 한 때는 남대문·동대문 다음 구로시장이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다 고향에 선물 사가려는 여공들 덕분이었지."

어린 시절 집이 구로시장에서 옷가게를 했다던 친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혀를 내두른다. 그녀들은 가족을 위해선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어머니를 위해 두툼한 겨울점퍼를, 오빠를 위해 멋들어진 코트를, 동생에겐 실용적인 '추리닝'을 고르곤 했다.

"야야, 니는 뭘 그래 많이 사는데? 가스나, 핑소엔 그래 짠순이 짓 해쌓더니."
"옴마, 넘 말하네. 그라는 니는 고향에 숨겨놓은 서방 있는 거 아녀? 이거 죄다 남자 옷 아닌가?"


화장기 없이 질끈 동여맨 머리. '처녀'라기보단 '소녀'에 가까운 그들. 하지만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이들도 많았다. 세상살이의 노곤함과 처연함에 지친 일상. 그래도 명절을 앞두곤 모처럼 활짝 웃었다.

그녀들의 고픈 배를 채워주던 구로시장 떡볶이

a

여섯 개의 작은 좌판이 오여 있는 구로시장 떡볶이 가게. 30년이 지났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 나영준


a

옛 맛 그대로인 '구로시장표 밀가루 떡볶이'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 사무실에 포장해 왔다. 반응은..."어! 이거 옛날에 먹던 맛이잖아." ⓒ 나영준


'쇼핑'을 마치면 한창 배가 고플 나이, 하지만 누나들은 비싼 외식에 익숙하지 않았다. 50여 미터 남짓한 '구로동 로데오' 거리를 지나면, 작은 좌판 여섯 개가 머리를 맞대고 기다린다. 메뉴는 동일했다. 값싸고 맛있는 떡볶이다.

30여년이 지났는데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가격 역시 한없이 '착하다'. 계란과 어묵을 함께 넣어주면서도 단돈 천원이다. 맛은 어떨까? 깜짝 놀랄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옛 맛이 그대로 전해온다.

사람은 한없이 간사하다. 입맛은 변했는데 기억을 왜곡시키고 그 맛이 나지 않는다며 불평을 해댄다. 그렇지만 이 곳의 떡볶이는 빼문 입을 쏙 들어가게 만든다. 구하기 힘든 밀가루 떡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비법 중 하나다. 한낮인데도 맛을 찾아온 손님들이 심심치 않게 붐빈다. 다시 기억을 더듬는다.

추석 전이면 동네 코흘리개들과 함께 떡볶이 좌판 옆을 어슬렁거리곤 했다. "애들 버릇 나빠진다"는 아주머니의 만류에도 한가득 시켜주던 착한 누나들. 거기다 운이 좋으면 동전몇 닢을 얻는 행운도 생기곤 했다.

"얘, 체하겠다. 더 시켜 줄 테니까 천천히 먹으렴."

아귀처럼 입을 채우는 악동들을 말간 눈빛으로 쓸어보던 누나. "고향에 막내 동생 생각나서 그러는구먼"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누나는 입술을 깨문 채, 봉긋한 보름달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니 우나? 너무 상심 말거래이. 일이 바쁘다카이 밸 수 있나. 다음 달에 보내준다 캤으니 쪼매만 더 참자."

모든 누나들이 큰 공장에 다니는 게 아니었고, 그들 모두가 명절 때 집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걸 깨달은 건 10여 년 후였다.

a

천원의 행복, 맛있는 옛날 떡볶이. 작은 '스뎅' 그릇에 끓인 어묵 국물은 늘 신선하다. 깨와 각종 야채를 첨가한 간장은 맛깔지고, 이 곳에선 정수기 물이 아닌 깊게 우려 낸 보리차를 준비해 둔다. ⓒ 나영준


시간은 빠르다. 누나들도 코흘리개들도 세월을 비켜서진 못했고 가리봉과 구로공단은 이름마저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구로시장의 떡볶이와 추억들….

알싸한 미각은 과거를 불러일으키고, 누나들의 순박한 미소를 기억케 한다. 그리고 작은 떡볶이 좌판은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 말을 건넬 것만 같다.

"누나, 추석 잘 보내고 계신가요. 다음엔 구로시장에 떡볶이 드시러 오세요."
#추석 #구로공단 #가리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