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삼팔선과 노무현의 군사분계선

베고 죽으려 하지 말고 소풍 가듯이 즐겁게 걸어 넘어야

등록 2007.09.29 12:12수정 2007.09.29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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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팔선을 베고 죽더라도 민족의 분단을 막겠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김구 선생이, 60년 전 삼팔선을 걸어서 넘으며 남긴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국민에게 회자하였다. 물론 이 말에는 민족 분단을 막아 보고자 하는 우국 지도자의 염원과 각오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우리에게 몹시 비장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허전하게도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여기에는 실패의 예감이 벌써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이런 말에는 논리가 아닌 격정이 지나치게 앞서 있다. 아니, 어쩌면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시대였기에 이런 말이 풍미하게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김구 선생은 격정적으로 삼팔선을 넘어 북으로 갔고, 며칠 후 노을이 지는 삼팔선을 허허로이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흉탄에 맞아 저세상으로 떠나야 했다. 말 그대로 삼팔선을 베고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통일에의 격정은 끝내 그를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오호!
여기 발 구르는 소리
지금 저기 아우성치며 우는 소리
하늘도 땅도 울고 바다조차 우는 소리
끝없이 우는 소리
임이여 가십니까?

국민장으로 치러진 김구 선생의 추도사는 이렇게 하냥 슬프기만 했다. 아니, 격정적이었다. 연일 통일의 염원을 담은 혈서들이 경교장으로 답지했다. 그의 죽음을 따라 할복과 음독을 기도하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문상객 중에는 거지도 있었고 비구니도 있었다. 고구마 장수 할머니도 그의 영정 앞에서 오열했다. 경향 각지에서 밀려든 조객들은 1분당 100명꼴로 그의 빈소에서 분향 배례했다. 그런데 이런 격정의 뒤끝은 무엇이었나?

마침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김구 선생처럼 걸어서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김구 선생의 삼팔선 통과는 '격정'이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군사분계선 통과는 '연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격정적인 김구 선생의 거사에는 실패가 예감된 반면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연출에는 희망이 있어 보인다.


김구 선생의 북행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반대 세력의 저지 노력도 매우 거칠었다. 무엇보다도 미군정이 반대했으며 각종 우익 단체와 기독교 단체 그리고 월남동포 단체들도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때 평양에서는 이미 '전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미·소 양군의 즉시 철수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가 결의되었다.

김일성과 김두봉(연안독립동맹 주석)이 김구 선생과 김규식 일행을 맞이했다. 이어 남쪽 대표 11인과 북쪽 대표 4인이 모여 15인 연석회의를 열었다. 여기에서는 외국군 즉시 철수와 조선정치회의 구성, 그리고 조선정치회의 주도의 남북한 총선거 실시와 정부 수립 등이 합의되었다.

남북 대표는 합의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그들은 소련과 미국군 사령부를 찾아가 철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소련은 미군이 철수하면 자기들도 철수하겠다고 응대했다. 미국은 유엔의 결의대로 정부 수립 후 철수하겠다고 대응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전혀 실효성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미국과 소련은 8·15 이전에 남북한 분할 점령을 합의해 놓고 있었다. 그러니 남북 합작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미·소의 동의 없이는 성과를 낼 수가 없도록 되어 있었다.

결국 민족의 무서운 결별을 예감하며 김구 선생 일행은 노을이 지고 있는 삼팔선을 걸어 내려온 것이다. 김구 선생이 실패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치를 해야 되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도 통일운동을 하려 하지 말고 정치를 해려고 해야 성공할 수 있을 터이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북행은 김구 선생 때와는 아주 다르다. 남북의 만남은 미국과 합의되었으며 6자회담의 당사국들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 조금 어깃장을 놓을 수도 있었던 일본의 수상이 후꾸다로 바뀐 것도 여러 청신호 중의 하나다.

남한 내 분위기도 김구 선생의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조갑제 같은 골수 수구 인사가 아니고서는 드러내 놓고 반대를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미 7년 전에 남북의 정상이 한 번 만난 것이 크게 도움을 주리라고 본다. 그동안 남과 북의 민간 교류와 경제 협력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60년 전에 비하면 미국은 한국을 잘 알고 있으며, 한국의 동의 없이 분단을 결정해 버리는 짓 따위를 다시 할 수는 없도록 되어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민족의 축제이자 세계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은 김구 선생처럼 비장하게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아도 된다. 세계인에게 여유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여유야말로 평화의 제1 요건이기 때문이다.

또 여유야말로 강한 자만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유유히, 타박타박, 사위를 돌아보기도 하며, 산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며, 남북 하늘을 오가는 구름을 고즈넉이 쳐다보기도 하며, 건들건들, 소풍 가듯이 걸어 넘어가는 연기력을 과시해 주기 바란다.
#군사분계선 #삼팔선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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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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