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은 참된 비전이 아니다

양형주의 <내 인생에 비전이 보인다>를 읽고서

등록 2007.09.30 18:32수정 2007.09.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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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내 인생에 비전이 보인다〉 ⓒ 홍성사

▲ 책 겉그림 〈내 인생에 비전이 보인다〉 ⓒ 홍성사

젊은이들은 원대한 꿈을 품고 산다. 자기 생애에 크나큰 성공을 이루길 원한다. 그래서 불철주야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는 크리스천 청년들도 예외이지 않다. 교회에 다니는 젊은이들도 우리나라와 세계를 무대로 성공하길 꿈꾼다.

 

그 꿈을 흔히 크리스천 세계에서는 ‘비전’이라 명명한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이 경전으로 삼고 있는 성경에서 비전이란 말은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단지 ‘묵시’나 ‘꿈’,  ‘계시’나 ‘환상’ 그리고 ‘이상’ 정도로만 해석돼 있을 뿐이다. 비전이란 말 자체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그것이 성공이나 부를 뜻하지 않는다.

 

양형주의 〈내 인생에 비전이 보인다〉는 그와 같이 비전에 대한 어긋난 관점을 성경적으로 바로잡고 있다.

 

“분명 비전은, 오늘날 일반 리더십과 경영학에서 말하는 개념과 혼돈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막연히 비전을 외칠 것이 아니라 성격적 비전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이고 진지한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다.”(프롤로그)

 

사실 많은 크리스천 청년들이 비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거기에는 아메리칸 드림이 가장 큰 작용을 했다. 이른바 기독교계에서 모델로 삼아 왔던 강철왕 카네기와 석유왕 록펠러가 그 중심을 차지했다. 그들처럼 원대한 꿈과 포부를 가졌던 사람이 없었고, 그들처럼 십일조와 헌금을 하나님께 많이 바친 인물도 드물다는 자화자찬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부를 이룬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기인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해당 업계에 독점권을 행사했고, 기업합병에도 능수능란한 솜씨를 발휘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기독교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떠벌리며 찬사를 보내왔다. 귀가 닳도록 그것을 들었던 젊은이들은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 즉, 야망을 비전으로 착각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비전은 무엇인가? 비전이란 말이 딱히 없지만 그럼에도 비전에 부합할 수 있는 정의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통찰력’이다. 그것은 결코 초월적인 계시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선하게 추구하는 자신의 소원 그 자체이다. 그런 소원과 통찰력에는 현재의 지식과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창의성까지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욕망에 매달려 정도를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앞이 불투명할지라도 언제 어디서나 바른 정도를 걷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젊은 크리스천들이 정도와는 상관없는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고지에 안달이고, 사람과의 관계보다 남이야 피해를 보든 말든 독립적인 행동에만 빠르게 대응한다면 어긋난 비전일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살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인생에서 정복해야 할 정상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 산을 차례로 하나씩 정복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드넓은 사막이 펼쳐진다. 인적도 없고, 사람들이 찾지도 않고, 불확실성 투성이인 곳에 내던져진다.”(64쪽)

 

그야말로 바른 비전은 산의 정상만을 향해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사막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사막의 지형은 수시로 변한다. 그 때문에 목표물에 도달하려는 지도보다 좌우를 보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산의 정상 한 곳에만 몰두하기보다 사막을 건너는 과정 자체에 중심을 둬야 한다. 그만큼 사막 전체를 품는 관점과 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더욱이 그 비전은 완성된 그림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다. 현재 주어진 인생은 모든 게 조각일 뿐 인생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뭐든 성급하게 맞추려고 하기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바른 퍼즐 조각들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 인생의 참된 비전은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어긋난 퍼즐 맞추는 데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정도를 걷는 퍼즐 맞추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대에 주어진 그림을 그리고 나서, 30대에 주어진 그림을 그리고, 그 후 40대에 주어진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 그림은 일평생 계속해서 채워가야 할 그림 조각들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소명은 인생 전 영역으로 확대된다.”(227쪽)

2007.09.30 18:32 ⓒ 2007 OhmyNews

내 인생에 비전이 보인다 - 왜곡된 비전 공식 깨기

양형주 지음,
홍성사, 2007


#비전 #양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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