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는 '삐끼' 전문학교가 있다?

[세계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⑪] 이집트 아스완의 삐끼들

등록 2007.10.02 15:55수정 2007.10.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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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여인 룩소르 카르낙 신전에서. 그녀는 길바닥에 앉아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 양학용


여행자에겐 숙명 같은 만남이 있다. 여행지에서 가장 먼저 만나고 가장 자주 부딪히는 사람들인 이들은 때론 나그네를 화나게 만들고 때론 인생을 살아가는 벌거숭이 지혜를 설핏 보여주기도 한다. 세상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들의 이름은, '삐끼'(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다. 가끔 그 만남이 악연이 되기도 하지만.

“헤이, 프렌드!”


카이로 공항에 내리자 역시 가장 먼저 맞아주는 이들은 그들이었다. 까만 콧수염을 달고 우르르 달려들어 “안녕, 친구들!”이라고 와글거렸다. 세계 삐끼들의 공통 인사법인 셈이다. 그런데 언제 내가 그들의 친구였나? 하기야 학생이나 선생님 아니면 사장님밖에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보다 훨씬 인간적이긴 하다.

“하우 머치? 굿 프라이스!”

그들이 제시하는 택시요금에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럼 넌 얼마를 원하는데?” “이 정도면 좋은 가격이야!” 하면서 어르고 달래며 무대 위의 배우처럼 극적인 표정연기를 선보인다. 이 정도에서 적절히 타협해야 서로 편해진다. 그건 오랜 여행에서 배운 길바닥 지혜다.   

그런데… 이집트 삐끼는 그렇지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가격에서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협상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짜증이 난다. 결국 바가지 요금인 걸 알면서도 장시간 비행으로 지친 우리가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다. 우린 공항에서부터 기분을 망친다.

사실 우리들은(아내와 나, 아프리카 여행에 결합한 누이와 조카) 이집트 여행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피라미드에 얽힌 비밀과 미이라의 복수, 스핑크스가 내는 죽음의 수수께끼와 ‘왕들의 계곡’에 묻힌 보물들. 굳이 어린 시절의 이런 환상이 아니더라도 이집트는 동경을 심어줄 만한 것들로 넘쳐나는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이 아니던가!


게다가 하늘에서 본 사하라 사막과 나일강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나이로비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5시간 내내 나일강을 따라 날았는데 지평선 끝까지 사막이 펼쳐졌다. 아프리카 적도에서 지중해까지 8천 킬로미터를 달려온 나일강은 세상에서 가장 긴 뱀이 되어 사막을 좌우로 갈라놓고 있었다. 숭고한 대장정이었다.

아라비아 숫자를 정작 아랍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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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피라미드 무려 5,000년의 세월을 이겨냈다지만, 사막의 막막함 앞엔 그저 사각뿔의 장난감마냥 애처롭다. 모래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처럼.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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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사막에서 파라프라 오아시스에서 1박2일 사막투어를 했다. ⓒ 양학용


우리들은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라는 헤로도토스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이집트 여행에 대한 기대는 빵빵한 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지상에 내려앉는 순간,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상의 카이로는 근원적이고 낭만적이고 평화롭기까지 했던 우리의 상상을 마구 흔들었다. 카이로(Cairo)가 카오스(Chaos)로 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건물은 낡고 우중충하고 스산했으며, 거리는 매연과 소음과 무질서와 쓰레기로 넘쳐났고, 수크(시장)에서는 삐끼와 상인들의 바가지 요금과 거짓말이 무진장 날아다녔다. 같은 가게에서 생수 한 병을 사더라도 어제 오늘의 가격이 달라졌다.

왜 여행자들이 이집트를 ‘아프리카의 인도’라고 부르는지 이해하는 데 단 하루도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인도와는 뭔가 달랐다. 여행자를 당혹스럽게 하면서도 인도를 매력적이게 만드는 ‘어떤 것’이 빠져있었다. 그랬다. 이집트는 ‘2%’가 부족해 보였다.

아스완에서의 일이었다. 이집트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난 여전히 그 ‘2%’에 연연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아부심벨 투어에 도시락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짓말로 우릴 쫄쫄 굶긴 여행사에 쳐들어가서 한 판 싸우고 나오는 길이었다. 수크에 들러 과일을 좀 사기로 했다.

바나나 더미 위에 ‘2파운드(400원)’라고 적힌 큼직한 팻말이 꽂혀있었다. 10파운드를 지불했는데도 이집트 상인은 잔돈을 거슬러 줄 생각을 안 했다. 

“왜 거스름 돈을 안 주니?”
“바나나가 10파운든데!”

혹시 알지 모르겠다. 아라비아 숫자를 정작 아랍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들은 약간 비슷하긴 하지만 미리 익혀두지 않으면 절대 알아볼 수 없는 특수문자처럼 생긴 기호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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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룩소르 하셉수트 여왕 장제전에서, 삐끼) ⓒ 양학용



역시 이집트 상인은 달랐다


하지만 오늘 그는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 아내와 난 이미 이란 여행을 통해 아랍 숫자를 외워두었던 터였다. 내가 싱긋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귀띔했다.

“미안한데, 나 아랍 숫자 읽을 줄 알거든!”

그가 크게 당황하며 미안하다, 사실은 이렇다, 라며 사과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이집트 상인은 달랐다. 그는 더욱 뻔뻔한 얼굴로 눙치고 나왔다. 

“아~, 이 팻말에 적힌 숫자! 이건 누비아 돈이야. 이집트 돈으로는 10파운드지!” 

기가 막혀. 아무리 수단 국경이 가까운 지역이라 누비아족이 많이 산다고는 하지만 옛날 옛적에 사라진 누비아 돈이라니! 게다가 그는 10파운드를 다 준다 해도 내게는 바나나를 팔지 않겠다고 허세까지 부렸다. 물론 내가 그 돈을 내고 살 리도 없지만.

“내 참, 바나나 한 송이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원.”

난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저 웃어버리는 것 말고는 별 도리가 없었다. 수크를 빠져나오는데 조카 대한이가 투덜대며 말했다.

“삼촌! 이집트에는 삐끼 양성 전문학교가 있는 거 아냐? 그렇지 않으면, ‘헤이 프렌드!’ ‘하우 머치?’ ‘굿 프라이스!’ 어떻게 말하는 게 다 똑같을 수가 있어?”

“푸하하!”

우리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나일강을 따라 걸었다.

이집트 문명을 풍요롭게 해준 나일강이 코발트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파라오의 무덤 속 벽화에서도 보았던 펠루카가 하얀 돛대를 달고 생명의 강을 오르내렸다. 수천 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펠루카는 바람의 힘만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참 평화로웠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 문명과 오늘날 이집트 사이에 어떤 연속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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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무덤 속 벽화 룩소르 '왕들의 계곡'에 있는 투트모시스 3세의 무덤 ⓒ 양학용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삐끼

나는 또 그 부족한 2%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도 해독하지 못하고 있는 이집트 상형문자와 함께 파라오의 무덤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아니면 다만 관광산업으로만 살아남은 걸까.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한 이후 무려 2,300년 동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그 긴 세월을 이겨낼 순 없었던 것일까.’ 

그때였다. 삐끼 한명이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펠루카를 타라고 호객할 모양이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내가 너희들에게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심호흡을 하고 나서, 내가 먼저 과장된 몸짓으로 녀석의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그들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

“헤이, 프렌드! 하 와이 유?”

그는 ‘뭐야 이거?’ 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계속해서 그들의 말투를 흉내 냈다.

“쓰리 아우어, 텐 파운드!”

보통의 경우 세 시간이면 30~40파운드 정도가 적정 가격이다. 눈이 똥그래진 그는 어깨에서 내 손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나는 더욱 꽉 껴안으며 천천히 혀를 굴리듯이 말했다.

“헤이, 프렌드! 돈 워리! 하우 머치? 굿 프라이스!”

이제 당황한 빛이 역력한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한 쪽 눈으로 질끈 윙크하며 싱긋이 웃어주었다. 마침내 그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소탈하게 웃었다.

“오케이, 내가 졌다! 친구, 가격은 너 마음대로 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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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루카 바람을 힘만으로 가는 나일강의 하얀 돛단 배(아스완)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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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나일강에 밤이 내리면 가로등 불빛을 가르며 펠루카가 달린다. ⓒ 양학용


난 여행자일 뿐, 푸하하!

그는 자신들의 어법을 똑같이 구사하는 외국인을 처음 만난 모양이었다. 우리는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의 푸른 바람을 만끽했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배에서 내릴 때 나는 그에게 30파운드를 지불했다.

이제 한껏 자신감에 찬 나는 대한을 데리고 다시 수크로 갔다. 오렌지 1킬로를 샀다. 이집트 상인은 오렌지를 까만 봉지에 담아주며 케냐에서 구입한 대한이의 코끼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가리키며 말을 붙였다.

“이 티셔츠 어디서 샀어?”

내가 시선을 돌리는 사이에 녀석은 슬그머니 오렌지 하나를 봉지에서 빼낸다. 다음 순간, 나는 오히려 오렌지 두 개를 능청스럽게 다시 까만 봉지에 담으며 딴청을 피웠다.

“야, 어제 이집트 축구팀이 결승전에 진출했더라! 젊은 애들이 빵빵거리고 몰려다니는 통에 밤새 잠을 못 잤다니까!”

흠칫 놀란 녀석이 이미 까만 봉지 속으로 골인한 오렌지를 쳐다보면서 떠듬거렸다.

“너… 너, 혹시, 여기 살고 있니?”
“아니, 난 여행자일 뿐! 그런데 너 혹시 ‘2%’가 뭔지 아니?”

그는 내 말뜻을 헤아리느라 눈알을 굴렸다. 우리는 오렌지 까만 봉지를 들고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수크를 빠져나왔다. 그때서야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덧붙이는 글 | 양학용 & 김향미 (wetravelin2003@yahoo.co.kr)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덧붙이는 글 양학용 & 김향미 (wetravelin2003@yahoo.co.kr)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이집트 #세계여행 #아스완 #삐끼 #나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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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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