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만년 거슬러 올라, 곶자왈을 만난다

오름과 곶자왈과 제주인들의 삶을 느끼는 제주생태기행

등록 2007.10.08 10:17수정 2007.10.0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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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빈사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 ⓒ 고평열


10월은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여행의 계절이다. 마지막 태양빛이 대지에 스러지며 익어가는 과일에 단맛을 배이게 하는 릴케의 계절. 소문난 관광지를 떠나 제주생태기행코스를 하기에 가을은 더할 수 없이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생태기행의 첫 코스로는 단연 제주 오름이 좋다. 오름에서 내려온 다음 점심을 먹은 뒤 찾는, 한낮 햇살이 뜨거운 시간의 곶자왈은 산림욕을 겸한 트래킹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오후, 일찍 들어가기 아쉬우면 곶자왈을 나와 가까운 해변가에서 시원한 바다를 마주하고  바닷내음을 맡으며 일몰의 시간까지 머문다면 꽉 찬 하루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제주’하면 한라산과 바다를 떠올렸지만 요즘은 단연 오름과 곶자왈이 이슈화 되어지고 있을 것이다. 한라산의 웅장함에 가려 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땅, 한라산의 기생화산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온 제주의 오름이 이제 그 그늘을 벗어나 제 본연의 가치를 찾고 사람들 앞에 우뚝 서 있다. 불모지로 인식되어져 온 곶자왈은 지하수를 머금은 보배의 땅으로 새삼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구좌읍 송당리의 민오름과 선흘곶자왈, 김녕 덩개해안을 잇는 하루 생태기행 코스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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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오름에서 보는 한라산 전경 민오름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진다. ⓒ 고평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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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곶 전경 서검은이오름에서 흘러나온 파호이호이(빌레)용암이 흘러 이루어진 땅 ⓒ 고평열


제주시에서 출발한다. 대천동 사거리까지는 30여분이 소요되는 자동차 길이다. 다시 대천동 사거리에서 비자림 방향으로 2km 남짓 이동하면 20~30년생은 되었음직한 팽나무와 붓순나무가 심어진 소공원이 있는 송당목장 입구가 나타난다. 오름 자락을 맞대듯이 칡오름과 붙어있는 민오름은 이 송당목장 내로 들어가야 쉽게 오를 수 있다.

목장 길은 삼나무가 울울창창하게 심어진 소로여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삼나무 내음새를 맡으며 그림 같은 전원속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밀식된 삼나무와 측백나무 숲은 나무 아래에 다른 나무가 자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타감작용을 하는 물질을 분비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견딜 수 있는 몇몇 잎 넓은 식물만이 간간이 목격된다. 목장의 입구 바로 옆에 왼쪽으로 난 오솔길은 목장내 건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곳으로는 눈길을 주지 말고 곧장 앞으로만 10여분 걸어서, 작은 사거리를 다시 지나고 직진하면 왼쪽으로 난 작은 길에 철문이 서 있다. 사람 하나 드나들 만한 공간이 옆에 마련되어 있고, 이곳을 들어서면 낡은 고옥이 하나 보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이었다고 하는 ‘귀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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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곶 내부 산책로 곶자왈 생태기행을 위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 고평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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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짜개덩굴 착생식물들은 곶자왈의 습기를 보여준다. ⓒ 고평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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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의 나무 이차 맹아림이 주를 이룬다. ⓒ 고평열


수십 년 생 팽나무에 가려져 보일 듯 말듯 모습을 드러내는 폐가. 주인이었던 자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치 않음을 외양에서부터 건물은 말하고 있다. 목장 관리인들에 의해 정원의 풀은 베어지지만 누옥은 버려진 채 부서지고 있다. 건물의 뒤편으로 자귀나무가 부챗살처럼 아름다운 꽃을 소담스럽게 피우고 있고, 건물의 동쪽으로 난 창을 열면  한눈에 들어오게끔 비자나무가 심겨져 거목으로 자라고 있어서 비자향이 은은했다. 주인 없는 뜰엔 심어졌을 법한 참나물의 향기가 아직도 진동하고 돌미나리며 곰취 등의 나물들이 자생하듯 나고 지고 있었다. 참나물 잎사귀 하나를 뜯어 입에 베어 물어 보았다. 향기가 입안에 가득히 차오른다.


대통령의 별장으로는 초라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그 시절에는 운치 있게 짓느라고 지어졌을 건물이다. 굴뚝이며 걸물의 본체를 이루는 건 제주도의 자연석으로 구멍 숭숭 뚫린 다공질현무암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세 개의 계단은 아(亞)자형문양을 그리며 바닷가의 조약돌이 촘촘히 박혀있고, 계단을 올라선 현관엔 부와 힘을 상징한다는 황소문양이 돌조각으로 그려져 있다. 안방으로 쓰였음직한 동쪽의 큰방 앞엔 희(囍)자 모양의 길상문이 역시 돌조각으로 그려 넣어져 있다.

이제 주인이었던 고인의 덕이나 유업을 떠나 역사 속의 한 장으로 자리 매김해 가는 공간이자, 건축물이 되어지고 있는 ‘귀빈사’. 깨어진 유리창, 떨어져가는 지붕의 파편들을 그대로 방치만 할 것이 아니라, 손질하고 가꾸어서 지난날의 역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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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물깍 동백동산 깊숙히 고여있는 습지. 선흘곶엔 이런 습지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 고평열


귀빈사 뜰의 팽나무가 있는 왼쪽으로 민오름 올라가는 오솔길이 삼나무 숲 사이로 나 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발길에 만들어진 길이므로 유의해서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길이다. 삼나무 숲길은 그다지 길지 않고 곧 소나무 숲으로 연결된다. 청미래덩굴과 찔레, 국수나무 등이 어우러진 것으로 보아 최근에 숲 화 되어가고 있음을 할 수 있게 한다. 표고는 약 360m, 비고는 100여m 밖에 되지 않는 높지 않은 오름이나, 오름을 오르는 사면은 제법 가파르다. 

정상에 오르면 나무 없이 미끈한 오름 능선을 둥글게 그리며 말굽형 분화구가 동쪽을 입을 벌리고 들어앉아 있다. 나무가 없어서 민오름이라고 이름 붙었다고 하는데, 십수 년 전만해도 방목을 위해 해마다 불을 놓아 진드기 유충이며 가시가 달린 잡목 등의 발생을 억제 시켜 해마다 새로운 풀이 곱게 자라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젠 불을 놓지 못하게 되어 잡목들이 들어서고 숲으로 진화되고 있는 과정에 있는 오름이다.

아직 한낮은 무덥고 햇살이 따갑지만 그래도 오름 정상엔 바람이 있어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훔치게 해 준다. 날씨가 좋은 날은 동쪽으로 성산일출봉과 우도, 지미봉까지 내다보이고 민오름 가장 가까이 아부오름이 합죽하게 엎드려 있어 원형 경기장 같은 아부오름의 전경을 적나라하게 관망할 수 있다.

점심 식사 후 송당마을로 들어서서 16번 도로를 따라 상덕천으로 이동하고, 다시 만장굴 가는 길로 들어서서 2~3km를 달리면 선흘을 알리는 삼거리의 교통표지판이 나타난다.
이 도로에서 선흘리 까지 이르는 길 양옆으로 넓게 펼쳐진 숲이 바다에 까지 닿아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서검은이오름에서 흘러내린 것으로 추정하는 파호이호이 용암이 흘러내려 김녕 표선 해안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하는 빌레 곶자왈을 형성했다. 속칭 선흘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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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대광대버섯 선흘곶의 동백동산에는 풍부한 부식질 속에서 온갖 버섯들이 나고 진다. ⓒ 고평열


온도가 높아서 점성이 낮아진 용암이 약 40만년에서 60만년 전으로 짐작되는 시기에 서검은이에서 분출하였다. 용암은 얇고 넓게 대지를 덮어 이 일대를 온통 바위로 덮인 매우 잔인한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파호이호이’란 하와이 원주민어로 ‘매우 잔인한’이란 뜻이라고 한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골짜기를 메웠으나 대기와 만나는 곳만 굳히고, 골짜기에 채워진 뜨거운 용암은 계속 흘러나가 선흘곶 여기저기에 동굴을 형성 시켰다. 굳어가던 용암의 바다에서 모아진 가스를 분출하며 튜물러스를 발달시켰으며, 새끼줄구조, 압축능구, 용암발톱 등을 만드는 특이한 구조를 나타낸다. 

인간이 살기 훨씬 이전, 수십 만 년을 헤아리는 그 오랜 시간의 이전에 흐른 용암이 식은 바위는 비와 바람과 풍상을 겪으며 깨어지고 이끼가 자랐다. 그 이끼가 자라는 틈을 비집고 작은 식물들이 싹을 틔웠다. 빌레와 깨진 암괴상 바위들만 있는 그 터에 나고 지는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유기물에 의지하여 숲이 이루어졌다. 세월의 힘이 느껴진다.

우리 조상들은 곶자왈을 이용하며 슬기롭게 살아왔다. 집을 지으며, 혹은 가제도구를 만들며 큰 나무들을 하나씩 잘라서 사용하고 작은 나무들은 다시 키워졌다. 고사리 등의 산나물을 캐고, 소와 말을 방복하며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왔던 조상들의 숨결을 곶자왈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바위만으로 이루어진 대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무들의 숲은 깊고, 숲은 습기로 충만해 있어서 콩짜개덩굴이나 일엽초, 석위 등의 착생식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특히 곶자왈 지역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별 반 다를 바 없이 항상 푸르른 모습을 유지한다.
그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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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리현무암층 선흘곶을 이룬 파호이호이(빌레)용암류가 굳어서 이루어진 땅 ⓒ 고평열


곶자왈을 이루는 암반 대지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서귀포층이라는 두꺼운 퇴적층이 분포하고 있음이 지질학자들의 연구 결과 밝혀졌다. 모래와 진흙 등으로 이루어진 무른 이 퇴적층에 물이 흠뻑 스며들고, 현제의 사람들은 이 퇴적층에 담긴 물을 지하수라 하며 뽑아 먹고 있다.

지하에 머금고 있는 습기는 깨어진 암괴상 바위사이로 늘 일정하게 지상으로 뿜어져 올라온다. 가뭄이 들어도 곶자왈에서 바위에 뿌리를 감고 살아가는 나무들이 말라 죽지 않는 이유다. 제주 지하에는 서귀포층이라는 큰 물허벅이 있는 셈인데, 이 물허벅에 물이 담기는 주둥이 또한 오름과 곶자왈이다.

선흘곶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서 해발 고도가 매우 낮다. 선흘곶 중에서도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탐방로가 설치되어 있는 동백동산 일대에는, 상록활엽수림지대가 발달되어 있어서 남한 최대를 자랑하며, 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생달나무 등의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1년 내내 우거진 녹음은 숲에서 습기가 빠져 나가지 않게 보호하는 막이 되어지고, 떨어지는 노엽은 숲에 두텁게 쌓여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의 생활공간 내에 있었던 곶자왈 속엔 아름드리 거목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생활용구, 가구재로 늘 사용되어져 왔기 때문에 곶자왈의 나무들 중 거목은 대개 못생긴 나무들이다.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된 20~30년 이내의 기간 동안 자란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어린 시절 겨울동안의 난방을 위한 나무를 얻기 위해 곶자왈을 자주 찾았던 기억도 여기에서 맞물린다.

나무열매를 따고, 소를 모는 목동의 역할도 늘 당번삼아 해 왔으며 도끼 들고 나서는 아버지를 따라 땔깜을 구하는 곳도 곶자왈이었다. 가을 내내 건조한 기후에 잘 마른 소똥은 나무보다 더 좋은 연료였다. 제주인에게 곶자왈은 예나 지금이나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본이 되는 삶터이다.

곶자왈에서의 기행은 환경을 모르면 그저 숲길을 걸을 뿐이다. 돌 위에 난 나무들을 키워내는 힘은 결국 100여만년 전 이루어진 서귀포층에 담긴 지하수, 수십 만년 전에 흘렀던 용암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땅, 그 땅에서 이어져온 인간과 동물과 곤충들의 생명력… 가능한 많은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야 흥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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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럭산 가마우지 한 마리가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고평열


트래킹 코스의 백미는 이 먼물깍을 찾아가는 재미에 있다. 선흘곶을 이룬 파호이호이 용암류의 특징 중 하나로 형성되는 소규모 습지, 파상으로 물결을 치며 흘렀다는 용암이 굳은 후, 낮은 곳에 모인 물이다. 선흘곶의 곳곳에 이런 습지들이 산재한다. 우마들의 타는 목을 축였을 습지에 아름다운 자생식물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어리연이 군락을 이룬 먼물깍은 한 여름이면 어리연의 꽃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환경부 보호식물인 물부추와 흑삼릉이 자라고 있고, 희귀 수서곤충들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이 못의 물은 바닥이 바위로 되어 있어서 지하로 스며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만 가뭄이 심할 경우 자연증발량 만큼 줄어들었다가 비가 오면 다시 채워지는 봉천수인 셈이다.

모든 죽어있는 유기물에는 생명이 있다. 죽은 나무, 일 년에 10여cm나 쌓인다는 썩어가는 나뭇잎들, 죽은 동물, 곤충의 사체 등  그 유기체들을 분해시키며 유기물을 영양분으로 삼고, 남은 무기물을 자연으로 환원시켜 다시 나무나 풀이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균들이 담당한다. 균사체들이 적당한 시기에 번식을 위해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 버섯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어디에나 유기체가 존재하는 곳이면 버섯이라는 형태로 균의 모습을 확인 할 수가 있다. 선흘곶의 동백동산은 야생버섯의 관찰지로 아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노란대광대버섯과 같이 대와 갓이 있는, 우리 눈에 익숙한 버섯류는 담자균류로 분류되며, 버섯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주발버섯과 같은 자낭균의 일부가 자실체를 형성하며 버섯에 포함된다. 

버섯이 없다면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군이 살아 갈 수가 있을까? 만약 농약이나 화학약품 등을 과다 사용할 경우 균의 생태계에도 많은 지장을 줄 것이다. 오름과 곶자왈 기행이 끝나면 오후 3시경이 된다. 시내로 들어가면 4시경이 되어질 것이다. 하루 종일을 자연 속에서 보내고 싶은 경우라면 곶자왈을 나온 후 김녕 바닷가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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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대지 위의 땅 도로공사중 드러난 김녕리 일대의 땅. 용암이 흐르면서 굳은 암반이 엷은 흙층 아래 있다. ⓒ 고평열


바닷물 아래에 쌓인 흰 모래가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에머랄드 빛깔과 검은 색의 현무암이 만들어 내는 색의 조화, 잘 달구어진 편평한 현무암은 선흘곶자왈을 이룬 파호이호이 용암류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암반이다. 가운데 보이는 벌어진 틈은 압축된 가스가 새어나오면서 용암 표층이 갈라져 생긴 현상으로 프레셔리찌라고 한다.

이곳에서 용암의 흐른 방향을 알려주는 표시가 되는 새끼줄 구조가 관찰되며, 나무가 자라지 않아 원형 그대로 나타나는 튜물러스 현상이 또한 관찰되는 지역이다. 곶자왈에서는 피부로 느낄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곳에 오면 왜 잔인한(파호이호이) 용암이라 했는지, 한국명으로 빌레 용암이라 한 이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암반 위에 식물이 나고 자라고 암반이 풍화되어져 여북하나마 흙이 만들어져 농사를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의 흐름이 여기에 머물렀을까.

용암은 바다 저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 굳어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해안선은 약 6000년 전에 이루어 졌다고 하고, 이 용암이 흘렀던 시기는 그 보다 아주 아주 오랜 옛날인 40~60만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까. 서해안과 제주도가 중국의 본토와 연결되어 있던 빙하기 저 이전의 이야기를 우리는 여기서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녕리 빌레 앞바다에 두럭산이라는 산이 있다. 제주도의 한라산과 368개라고 하는 오름 중에 ‘오름’이라는 이명을 가지지 않은 산이 5개 있다. 제주도의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선 한라산이 그 첫째이고, 서쪽으로 가면 산방산, 동쪽 해가 뜨는 성산 혹은 청산 (일출봉은 마을이름과 구분하기 위해 붙었다고 한다.), 납읍리의 수호산인 영주산과 그리고 마지막 한 곳이 김녕리 앞바다에 있는 이 자그마한 돌산인 두럭산이 있다. 다른 산들은 산으로 칭송되어지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 여겨지지만 유독 두럭산은 얼핏 보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럭산은 그 크기의 웅장함 보다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신앙의 크기에 그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물질을 하던 해녀가 두럭산에 앉아 쉬려고 하면 큰 파도가 덮치곤 하였다. 두럭산 일대의 해산물을 채취할라치면 어김없이 사고가 생기곤 했다 한다. 두럭산에 깃든 신령님을 노하게 결과라고 생각하여 해마다 영등제를 지내고 어로작업을 다니는 배들도 두럭산 근처는 피하여 오고 갔다. 두럭산은 김녕리 일대의 마을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신이나 신화라고만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이 있다. 썰물이 되어서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바닷가 근처의 암초가 두럭산이다. 밀물인 경우는 물속에 숨어있는 복병이 되어 배가 난파하기도 했을 테고, 물 깊은 곳에 자리한 암초 때문에 조류는 바위를 돌아 흐르며 빠른 물살을 만들어서 해녀들의 어로작업에 위해가 되었을 수가 있을 것이다. 조심하라는 말 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유혹이 두럭산 인근에 풍부한 해산물이 있었다고 하니, 신화를 빙자해서 사람들의 안전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결국 산이 못 되면서 산의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마을사람들의 안녕을 구하고픈 절실한 그 마음의 크기 때문이 아니었을 까 한다. 김녕리 마을 안, 일주도로 공사를 하며 드러난 땅이다. 이 한 컷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처음 본 순간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흘곶자왈을 보았고, 김녕 덩개 해안을 이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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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수 제주인들의 삶이 고단했음을 온 몸으로 말하는 한 그루의 팽나무 ⓒ 고평열


서검은이 오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파호이호이 용암이 마을을 비껴나가 덩개 해안을 이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곡식을 심고 야채를 심어 먹고 살아온 밭이 공사하면서 한 귀퉁이 베어내니 그 속살을 드러낸 모양이 이러하다.

수십 만년 풍화 되어온 빌레는 겨우 10cm남짓한 흙을 이루었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바람에 날려 온 모래로 이루어져 땅은 비옥하지 못하다. 쟁기질을 하다가 조금만 깊이 넣어도 바위에 걸린다는 동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떤 곳은 채 5cm도 되지 못하여 호미 농사를 하신다고 했다.

땅이 이러하니 그 마을 사람들의 삶이 오죽했으랴 하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 땅위에서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먹이고 입혀야 했던 어머니들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닳아 무디어졌을 터이다. 억척을 떨지 않으면 살수 없었던 잔인한 땅에서 어머니들은 북풍한설 마다않고 바다로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 지역엔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다에 가서 감태 한 짐 져 오지 않으면 밥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늘 했다고 한다.

생태 기행은 그 땅이 전하는 이야기와 그 곳에 사는 식물과 동물의 이야기는 물론 그 일대에 삶의 터를 일구어 온 이 땅의 사람들의 삶까지 가슴에 담고 갈 수 있어야 진정으로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 소중한 마음이 절로 우러날 것이다. 사랑은 알고져, 이해하고져 하는 마음에서 비로소 비롯됨을 알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제가 운영하는 카페(제주야생화)에 같이 싣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가 운영하는 카페(제주야생화)에 같이 싣습니다.
#선흘곶 #곶자왈 #김녕리 #민오름 #두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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